조국이 건드린 ‘교육 계급’의 현실
  • 김동인 기자
  • 호수 626
  • 승인 2019.09.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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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후보자의 자녀가 경험한 인턴십은 특목고에서 특별한 기회라는 점에서 논란이 일었다. 입시제도의 맹점과 더불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던 교육 계급의 문제까지 드러냈다.
ⓒ연합뉴스서울 대치동 한 논술학원 앞에서 수강 신청을 위해 줄 선 학부모와 수험생의 모습.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사거리에는 독특한 도넛 가게가 하나 있다. 특별할 것 없는 프랜차이즈 매장이지만 근방에서 가장 좌석이 많고 공간이 넓어 사람들이 몰린다. 테이블을 여럿 붙여 앉은 학부모들이 유독 눈에 띈다. 학부모들은 유명 강사의 근황이나 학원에 대한 품평, 각종 입시 정보를 공유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입시 정보 공유 네트워크’가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보기 드문 공간이다.

네트워크에서 중추가 되는 인물은 ‘성공한 엄마’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낸 ‘성공한 선배’ 가운데 일부는 경험을 바탕으로 제2의 커리어를 이어나간다. 대치동 A학원의 원장과 영업실장은 모두 자녀를 유명 대학에 보낸 중년 여성이다. 경험은 영업력과 직결된다. 원장의 네트워크는 현역 특목고 재학생의 학부모까지 닿는다. 연휴 시즌마다 A학원 원장은 서울의 한 외고와 지방 소재 특목고 특별반을 따로 구성해 관리한다. 지금은 광역자치단체장인 정치인 B의 자녀도 이 학원에서 입시를 준비했다. 당시 A학원 원장은 직원과 강사들에게 B의 자녀를 특별히 신경 써달라는 의사를 전하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은 이런 교육 정보 네트워크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검증을 계기로 수면 위에 올라왔다. 조국 후보자의 자녀 조 아무개씨의 고등학생 시절 이력이 알려지면서다. 조씨는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8년, 단국대 의대 장영표 교수 연구실에서 2주간 인턴을 했고 이때 쓴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되었다. 장 교수는 조씨와 같은 학교 학생의 학부모였다. 장 교수는 8월20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논문) 저자들 중에서 (조 후보자의 자녀가)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 제1저자를 누구로 하는 거냐는 책임 저자(교수 본인)가 결정하는 문제다. 만약 그게 문제가 있다면 제가 책임을 져야지 어떻게 하겠나”라고 말했다.

논문 제1저자 등재 자체가 위법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조 후보자 자녀의 ‘경력’에 사적 네트워크가 동원되었다는 비판만은 피할 수 없었다. 조 후보자 자녀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 교육의 지난 10년 굴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학부모·학생의 제도 공략과 교육 당국의 제도 보완이 해마다 창과 방패처럼 부딪친다. 특히 새 제도가 도입되는 시점, 새로운 룰에서 펼쳐지는 게임에서는 공격보다 수비가 더 불리하다. 공격의 패턴을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로 ‘스펙 강박’ 커진 시기

일부 입시 전문가들이 조국 후보자 자녀의 고등학교 재학 ‘시기’를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고려대를 비롯해 대다수 대학은 2008년부터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다. 입학사정관제는 단순히 내신·수능 점수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연중 입학업무를 수행하는 입학 전문가를 두고 학생의 잠재력을 종합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미국식 입시제도를 일부 가져온 것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낯선 제도였다. 어떤 경력이 도움이 된다는 판단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학생과 학부모 처지에서는 흔히 말하는 ‘스펙’ 강박이 클 수밖에 없었다.

ⓒ시사IN 포토2009년 4월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한 ‘2010 대입 학부모 진학설명회’가 열렸다.

한 입시 전문가는 조씨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당시(2007~2009년)가 일종의 ‘입시 과도기’였다고 설명한다. 이 전문가는 “이즈음 각종 외부 상장이 난립했다. 이후 학생부종합평가 전형이 자리 잡으면서 소논문 등도 교육부가 기재하지 못하게 했다. 최근에는 학교 밖 활동보다 학교 내 순수 활동에 초점을 맞춘다”라고 설명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설 단체의 ‘상장 남발’도 유행했다.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된 2010년대 초반, 청소년에게 멘토를 연결해 대화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한 단체는 이 프로그램에 활발하게 참석한 멘티(청소년)에게 상장을 수여했다. 학생 간에 경쟁하는 행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상장을 제공하는 것이 학생과 단체 모두에게 이익이 되던 시기였다. 특목고 학생 사이에서 AP 점수(고교 재학 중 대학 수준의 과목을 공부하고 나중에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미국 시험 프로그램)가 ‘기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2010년대 초반의 ‘스펙 거품’은 곧 평범해졌다. 외부 상장은 대학에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요소가 되었고, 소논문 작성 경력도 특별할 것 없는 경력으로 치부됐다. 교육 컨설팅 시장에서는 ‘전에 없던 특별한 스펙’이 중요해졌다. 2014년께부터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입시 컨설턴트들이 학생을 책 저자로 만들어주는 기획이 등장했다. ‘스펙 쌓기’의 일환으로 출판까지 동원된다는 얘기다.

당시만 해도 대치동에서 알음알음 번지던 ‘책 쓰기’는 최근 들어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2018년 6월 ‘한국대필작가협회’는 협회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책 쓰기로 대학 간다”라는 안내성 게시물을 올렸다. 이 글에서 협회는 단행본 집필이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책은 나를 나타내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학생 저자가 되면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작가로 등재될 수 있고 명문대는 이미 학생 저자에 대한 입시 어드밴티지를 주고 있다”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마지막에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책 쓰기 강좌를 하고 있으며 출판과 유통까지 진행한다”라면서 개별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연락처를 적어놓았다.

조국 후보자 자녀 문제가 촉발되면서 가장 주목받은 집단은 바로 2030 청년층이다. 일각에서는 조 후보자가 입으로는 정의와 공정을 얘기하지만, 자신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조 후보자는 9월2일 기자간담회 모두 발언에서 “개혁과 진보를 주창했지만 많이 불철저했다. 젊은 세대에게 실망과 상처를 주었다. 법적 논란과 별개로 학생들에게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청년층의 분노와 실망감이 전 사회적으로 확대되는 기류를 정부와 여당이 체감하고 있다는 증거다.

청년층의 분노를 단순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여기는 것은 이번 사안의 본질과 멀어지는 길이다. 핵심에는 ‘정보 불평등’이 존재한다. 경제적 성취를 아직 경험하지 못한 청년층 처지에서는 이제까지 살아온 삶 전반이 경쟁이었다. 그 경쟁에서 성패를 결정짓는 것이 결국은 ‘정보량’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낀 세대가 2030 세대다. 정보와 네트워크의 격차가 입시제도 내에서 제대로 작동한 첫 세대라서다.  

오늘날 대학 입시는 고교 생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입학부터 2학년 때까지, 2년 동안 어떻게 공부하고 어떤 활동을 할 것이며 무엇에 관심을 둘지, 시간 자원을 어떻게 쓸지를 결정한다. 그 ‘증거’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될 수 있어야 한다. 현행 입시제도의 핵심인 학생부종합전형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꽤 높은 수준의 성실성과 다양한 정보가 필수다. 공개된 정보, 사람들이 서로 공유하는 정보는 노력(시간 투자, 비용 투자 등)에 따라 보완이 가능하다.

ⓒ연합뉴스8월31일 청년 노동자단체 ‘청년전태일’이 조국 후보 문제와 관련해 공개 대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사적 네트워크는 다르다. 조국 후보자의 자녀가 경험한 인턴십은 ‘특목고에서도 통상적이지 않은 기회’라는 점에서 더욱 논란이 일었다. 중산층마저 체감하는 ‘벽’의 존재다.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의 학내 촛불집회 구호는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미 한 차례 큰 성취를 이뤄낸 이들이지만, 이들은 조 후보자의 자녀가 평범한 중산층의 돈과 노력으로는 쫓아가보기 어려운 기회를 누렸다고 생각한다. 2030 세대의 반발이 단일한 목소리로 결집되기는 쉽지 않다. 청년층의 반발에도 층위가 분절되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박탈감’과 ‘서민의 박탈감’이 다른 것처럼, 계급에 따라 조국 후보자 자녀의 문제에 대해 비판하는 지점이 조금씩 다르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주관한 첫 촛불집회 이후인 8월27일, 서울대 학생회관에 붙은 한 대자보가 화제를 모았다. 이 대자보를 쓴 학생은 “더 큰 사회적 모순은 외면한 채 선택적 정의를 외치고 있다”라며 조국 후보자 사퇴 입장문을 발표한 서울대 총학생회를 비판했다. “대한민국의 또 다른 청년들이 전철역에서, 화력발전소에서, 실습장에서 노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왜곡하거나 냉소한 언론이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의 집회를 두고는 ‘청년의 분노’를 대변한다며 적극 보도한다. 다수 청년이 처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촛불인가 아니면 현 제도를 강화하기 위한 촛불인가. 우리가 외치는 정의는 포용하기 위한 정의인가 아니면 더욱 철저히 배제하기 위한 정의인가”라고 반문했다.  

8월31일, 청년 노동운동 단체인 ‘청년전태일’이 마련한 공개 대담회에서도 ‘그들만의 리그’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행사에는 구의역 김군의 동료로 함께 일했던 정주영씨가 참석했다. 정씨는 무대에 올라 “사실 이번 논란이 불편하다. 이마저도 있는 사람들끼리의 논란이라는 생각이 든다. 형편상 공고에 들어가 졸업하기도 전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죽는 동료를 지켜봐야 했다. 우리와 엘리트 인생 사이에 어찌 출발선이 같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조국 후보자 자녀로 촉발된 교육 문제는 입시제도의 맹점과 더불어 그동안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던 교육 계급의 문제까지 드러낸다.

정보와 네트워크의 불평등 인식

조국 후보자에 대한 강성 지지층은 언론이 조 후보자에 관한 확인되지 않은 의혹과 가짜 뉴스를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파적 공세와는 별개로, 청년층은 삶의 경험에서 정보 불평등을 온몸으로 체험해왔다. 특히 평범한 학벌일수록, 노동 현장에서 소외받고 수도권으로부터 떨어진 지방 청년일수록 정보와 네트워크의 불평등은 생존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출발선이 서로 다르다’는 의구심을, 조국 후보자 검증 과정이 직설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것은 단순한 입시제도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회는 정보와 네트워크에서 나온다는 것에 대해 대중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조국 후보자의 임명 여부와 별개로 그동안 모른 척하고 싶었던 ‘계급’이라는 현실을 마주한 대중의 상처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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