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8월 말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연금개혁특위가 활동을 마쳤다. 사회적 대화로 합의안을 만들자며 발족했으나 3개 복수안을 제출했다. 지난해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는 2개, 정부가 내놓은 개혁안은 4개, 연금개혁을 두고 복수안의 행진이다. 1년이 지나도 제자리걸음이니 이러다간 연금개혁이 실종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그럼에도 연금개혁특위가 합의한 ‘권고안’이 있다. 바로 ‘국민연금 지급 보장의 법적 명문화’이다. 이는 여론조사에서 92%가 찬성했다며 정부가 자신의 연금개혁안에 포함한 항목이기도 하다. 나 역시 국민연금법 개정에 이를 담아야 한다고 판단한다.

법제화는 ‘나쁜 연금 정치’의 결과  

내가 법제화에 동의하는 건 이 내용이 적절해서가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봐, 국가가 지급 보장할 의사가 없는 거네’라며 불신이 증폭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비록 이제는 법 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따르지만, 지급 보장 법제화가 ‘나쁜’ 연금정치의 결과라는 점에서 마음이 무겁다.

당연한 일을 법제화하는 걸 왜 삐딱하게 보느냐고? 맞다. 당연하기에 애초 이 조항은 불필요하다. 우리나라 어느 복지법률에도 지급 보장 조항은 없다. 국민연금법에는 이미 관련 조항도 있다. “국가는 이 법에 따른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제3조의 2).” 나는 이 조항이 사실상 국가의 지급 의무를 말한다고 이해한다. 주변에 이야기하면 “어, 조항이 있었네” 하며 놀란다.

몇 년 전부터 여러 노동·시민 단체들이 ‘지급 보장 법제화’ 운동을 벌여왔다.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를 “지급을 보장한다”로, 혹은 더 나아가 공무원연금법처럼 “지출을 충당할 수 없는 경우 부족한 금액을 국가가 부담한다”로 바꾸라고.

정말 이 운동이 국민연금의 신뢰를 증진했을까? 나는 거꾸로, 이들의 의도와 달리,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은 이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법제화가 필요하다니, 현재 상태에서는 지급이 보장되지 않는 거구나.’

지급 보장의 내용도 향후 뇌관이 될 수 있다. 올해 1월 국회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지급 보장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지금 약속한 금액’을 준다는 게 아니라 “급여가 실제 지급되는 시기에 법에 규정되어 있는 급여 수준을 보장한다는 뜻”이라고 답변했다. 지급하되 금액은 그때 조정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장관 개인의 독특한 의견이 아니다. 이미 가장 강력하게 지급 보장이 명시된 공무원연금에서도 2015년 개혁으로 수급자가 받는 연금액에 변화가 생겼다. 연금액은 매년 물가만큼 올라야 하는데 5년 동안 동결했으니 결과적으로 10% 가까운 삭감이다. 결국 법제화가 지급 수준까지 보장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법률에 문구가 강하더라도 국민연금의 재정 기반이 약하면 수급자와 납부자 사이에서 세대 갈등은 피하기 어렵고 수급액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급 보장 법제화가 우리 세대의 책임을 회피하는 논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시민들이 ‘나중에 받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 이유는 미래에 국민연금 재정이 지속 가능한지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답은 제도적 기반을 튼튼히 하는 일이어야 한다. 법제화를 요구하는 단체들이 제시하는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안은 추가 소득대체율 인상분만큼만 보험료율을 올릴 뿐이어서 사실상 현재의 재정불균형을 방치한다.  

연금의 지급 보장은 애초 법률의 사안이 아니다.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기반이 관건이다. 서구 나라들이 홍역을 겪으면서 지속가능성을 도모한 이유이다. 이대로 가면 2023년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더 힘든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재정 결과가 더 심각해졌네’ ‘어, 약속된 금액이 아닐 수 있다고?’. 다시 등장한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서 법제화의 효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연금개혁은 세대 간에 책임을 공평하게 나누는 계약이다. 지급 보장 법제화 뒤에 숨은 우리의 안이함을 되돌아봐야 한다.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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