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옴표 저널리즘’의 폭력성
  • 양정민 (자유기고가)
  • 호수 626
  • 승인 2019.09.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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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켈 그림

흰 화면 위에 검은 글자가 떠오른다. “그는 말했다(He said).” 그 뒤에 “그녀는 말했다(She said)”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같은 패턴이 지루하게 반복되다가 갑자기 끝없이 “그녀는 말했다”의 행렬이 화면을 뒤덮는다. 30초 남짓한 영상은 이렇게 끝난다. “진실은 힘이 있다. 진실은 위협받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

2018년 1월, 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중간에 방송된 미국 <뉴욕타임스> 광고다. <뉴욕타임스>는 2017년 10월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혐의를 최초로 보도했다. 전 세계 영화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시상식에서 광고를 통해 ‘미투 운동’의 의의를 다시 한번 환기한 셈이다. “He said, She said”는 인용에만 의존하는 보도 행태,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을 뜻한다. 그래서 이 광고는 언론이 과거를 반성하는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언론이 그동안 소외됐던 피해자와 연대자들의 말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매정하게’라는 가해자의 표현 그대로 전달

이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니, 한국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기계적 균형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당장 지난 8월 한 달간 일어난 사건만 살펴보더라도 그렇다. 8월15일 대전 유성구에서는 20대 남성이 길에서 전 여자친구를 차 트렁크에 강제로 밀어 넣어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매정하게 딱 이제 안 만난다고 자르니까 거기서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가 확 나서 강제로 여자를 트렁크에 태웠다”라는 가해자의 주장을 경찰이 그대로 옮기고, 언론도 이 발언을 여과 없이 보도했다. 미리 차량을 준비해 피해자의 단골 술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범죄를 우발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를 지적한 언론은 없었다.

“매정하게”라는 가해자의 주관적인 표현을 경찰과 언론이 전달함으로써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과연 ‘매정하게’가 이 사건의 핵심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8월22일 사법부가 판결문을 통해 대신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는 전직 <조선일보> 기자의 고 장자연씨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성추행이 있었으면 파티 분위기가 안 좋았을 것”이라는 근거를 들었다. 재판부가 고인이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기 어려운 신인 배우였다는 점을 얼마나 감안했는지 되묻고 싶을 따름이다.

8월23일에는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앞에서 한국인 남성이 일본인 여성을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SNS를 통해 영상이 퍼진 직후 YTN은 가해 남성을 단독 인터뷰하면서 “독학까지 할 정도로 일본어에 관심이 많았다” “술김에 (여성에게) 말을 건넸지만 반응이 달갑지 않았다” “머리채를 잡은 것은 사실이나 폭행은 없었다”라는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했다. 일본어 공부가 목적이었다면 평소 일본인 남성에게도 말을 거는지, 새벽에 술 취한 외국인 남성이 말을 걸어올 때 여성이 느꼈을 두려움을 상상해보았는지 따위의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가해자는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피해자다움’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기대기도 한다. 피해자가 ‘그럴 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잘못을 합리화하는 과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의 주장을 그대로 언어로 옮기는 행동은 결코 객관적이거나 중립일 수 없다. 따옴표 저널리즘은 가해자에게 돌아가야 할 질문을 회피하고, 피해자를 압박하며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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