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경찰보다 무서운 ‘저작권’
  • 위민복 (외교관)
  • 호수 626
  • 승인 2019.09.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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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포우벨1980년대 동베를린의 컴퓨터 동호회 HdjT 모습.

동독이라고 해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없었으랴. 동독은 서독과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게임 유입도 동유럽 내 다른 나라보다는 좀 수월한 편이었다. 아예 ‘장벽’이 없는 건 아니었다. 게임을 할 수야 있지만 동독에는 사회 내 모든 일을 감찰하는 비밀정보기관 슈타지(Stasi)라는 게 있었다.

동독은 1961년 서베를린 경계에 장벽을 세운 뒤 동독 경제발전을 위한 산업정책을 마련했다. 은행과 운송, 중공업, 그리고 특히 컴퓨터 개발에 매진했다. 1977년 제6차 중앙당위원회는 전자제품 개발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고, 그에 따라 1979년 BSS01이라는 게임 콘솔이 나왔다. 초보적인 전자오락도 몇 개 출시됐다.

로보트론(Robotron) KC 85/3이라는 컴퓨터도 개발했다. 물론 영어권에서 개발된 컴퓨터보다 적어도 5년은 뒤져 있었다. 젊은이들의 컴퓨터 동호회 창설도 별다른 간섭을 받지 않았다. 컴퓨터 동호회 출신이면 컴퓨터 엔지니어링 전공으로 좀 더 쉽게 대학에 갈 수 있었고, 해당 전공은 군 입대 기간도 9개월로 줄었다.

동독 컴퓨터 동호회의 진짜 목적은 ‘게임 복제’

동베를린에 생긴 ‘젊은 인재의 집(HdjT:Haus der jungen Talente)’은 그런 컴퓨터 동호회 중 하나였다. 대체로 20세 내외의 젊은 남성 60~80명은 매주 수요일에 모여 컴퓨터 관련 대화를 꽃피웠다. 동베를린에만 이런 종류의 모임이 스무 곳 넘었다고 한다. 이들이 컴퓨터 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모임의 ‘진짜 목적’ 중 하나는 게임 복제였다.

동독은 공산주의 국가답게 ‘카피레프트(copyleft:지식과 정보를 인류 공동 자산으로 여겨 자유롭게 접근하고 사용하는 것을 지지함)’를 중요시했다. 소프트웨어 복제가 불법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의미다. HdjT는 좀 특별했다. 공산당 청년 조직의 ‘중앙 클럽하우스’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 안의 컴퓨터 역시 모두 서구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컴퓨터를 코트 속에 숨겨 들여오는 일도 빈번했다. 서독에서라면 문제가 됐겠지만 동독은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동베를린 내의 인터숍 (InterShop)이라는 곳에서는 서독에서 들여온 코모도르(Commodore) C64 컴퓨터를 판매하기도 했다. 단, 이 점포에서는 동독 화폐가 아닌 서독 마르크만 받았다.

이처럼 마음껏 게임을 복제하는 와중에 슈타지가 개입하기 시작한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슈타지는 클럽들의 동태를 매번 당국에 보고했다. 슈타지는 1987년 컴퓨터 클럽에서 나도는 게임 목록을 별도로 작성했다. 이들이 문제 삼은 건 게임의 내용이었다. 가령 미국이 개발한 <레이드 오버 모스크바(Raid Over Moscow)>라는 게임은 모스크바를 공격하는 내용으로, 동독 당국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물론 HdjT도 순진한 곳은 아닌지라 대외적으로는 “전쟁을 장려하는 게임은 금지”라고 알리곤 했다. 물밑의 회원들은 알음알음 카세트테이프(당시만 해도 플로피디스크가 비쌌다)를 통해 게임을 서로 복제해주었다. 재밌는 점은 따로 있다. 나중에 보니 슈타지가 작성한 요주의 게임 목록이 1985년 서독 검열국이 작성한 그것과 거의 일치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HdjT는 잠시 희망을 가졌다가 곧바로 슈타지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경고장’을 받는다. 게임 저작권과 관련된 서독의 변호사들이 보낸 서한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HdjT는 문을 닫았다. 자본주의가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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