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길바닥에 뿌려진 명함 크기의 대출 전단.

한국의 길거리만큼 광고가 많은 곳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홍콩에 비견해도 별로 뒤지지 않아 보인다. 건물과 하늘과 길바닥에도 명함 크기 광고 전단이 지천으로 깔린 나라는 별로 많지 않다.

길바닥에 깔린 명함 크기 광고 전단은 대개 두 종류다. 하나는 성매매 광고로 의심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대부업 광고 전단이다. 이들을 언젠가 작업에 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중 눈에 띄는 광고 전단을 모아 보관 중이다.

성매매로 의심되는 마사지 광고 전단은 대개 일본이나 다른 나라 젊은 여성들 사진을 차용했다. 대부업 광고 전단은 더 다양하고 적극적이다. 어떤 것은 친근함을 무기로, 어떤 것은 돈과 관계없는 듯 위장하기도 한다. 종류도 다양해서 전통적인 일수 광고부터 일러스트가 들어간 광고 전단까지 폭이 넓고 지역에 따라서도 다르다.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돈’이라는 단 한 글자를 찍은 광고 전단이다. 빨간색 바탕에 굵은 노란색 고딕체로 찍힌 돈이라는 글씨는 어떤 미술 작품보다 강렬했다. 현대미술의 경향 중 하나가 문자를 사용한 작업이다. 누군가는 문자를 전광판에 흘러가게 하거나, 캔버스에 그리거나, 길거리에 크게 설치하기도 했다. 내용도 다양해서 개인적 기억부터 정치 사회적인 것까지 그 폭이 넓다. 현재 국내 한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는 바버라 크루거도 문자를 사용한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돈이라는 광고는 적어도 내게는 바버라 크루거 작품보다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주워서 갈 수 있고,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며, 필요하면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정보까지 담았다.

예술가의 상상력 뛰어넘는 현실적 절박함  

현대미술이나 사진은 사람들 눈에 띄도록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은 물론이고 거의 건축공사 수준의 엄청난 크기와 많은 비용을 들여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예전에도 그랬듯 현실은 늘 예술을 뛰어넘는다. 그 이유는 현실적 절박함이 예술가들의 상상력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다. 대부업을 해서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이들의 욕망과, 함정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야 하는 이들의 절박함이 합쳐져서 만든 ‘작품’일 것이다.

현실은 예술, 미술 작품의 교과서이자 뛰어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다. 어느 누구도 오토바이를 타고 명함 형식의 작품을 길거리에 뿌리는 퍼포먼스를 하지 않았고, 무심하게 길거리를 지나다 충격적인 시각 경험을 할 수 있게 하지도 못했다.

세상 모든 것의 척도이자 유일무이한 진리가 된 돈은 그 자체로 현실을 축약한다. 무궁한 가능성을 지닌 작품의 진원지일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앤디 워홀이 그린 1달러 지폐나 실크스크린 프린트보다 한국 길거리의 돈 광고 전단이 더 높은 레벨에 있다.

기자명 강홍구 (사진가·고은사진미술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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