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를 맞아 5월12일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 시민문화제가 열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리고 행동도 없다. 그럼에도 평가는 끝없이 바뀌었다. 과거가 현재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아니면 현재가 과거에 대한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다. 박정희라는 아이콘이 ‘국가주도형 개발주의’라는 과거의 영광을 상징한다면, 노무현이라는 아이콘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미래의 이상향을 대표한다. 박정희 향수냐, 노무현 정신 계승이냐? 이 둘에 대한 선호도 변화는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가늠자라 할 수 있다.

〈시사IN〉은 2007년 창간 때부터 ‘가장 신뢰하는 전직 대통령’을 물어왔다(2008년과 2011년은 조사 안 함). 이 조사에서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이 꾸준히 증가했고 박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은 하락했다. 2007년과 지금의 결과를 보면 드라마틱한 차이를 볼 수 있다. 2007년 노 전 대통령이 6.6%였을 때 박 전 대통령은 무려 52.7%를 기록했다(2012년까지는 현직 대통령도 포함). 12년이 지난 올해 노 전 대통령이라는 응답은 37.3%, 박 전 대통령이라는 응답은 24.3%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신뢰도가 정치적 후계자라 할 수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도와 궤를 같이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가 당선되었을 때는 같이 부각되고 그들에 대한 국정 지지도가 떨어지면 같이 하락한다. 현재의 정세가 과거를 해석하는 데 간섭하고 있는 모양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신뢰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32.9%(2012년)에서 37.3%(2013년)로 올라갔고, 노 전 대통령 신뢰도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39.9%(2016년)에서 45.3%(2017년)로 상승했다. 정치적 후계자의 집권기 동안 신뢰도는 하락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 신뢰도는 37.3%(2013년)에서 28.8%(2016년)로 떨어졌고, 노 전 대통령 신뢰도 역시 문 대통령이 취임한 해인 2017년 45.3%에서 2019년 37.3%로 줄었다. 집권기 정부 정책에 대한 호불호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눈여겨볼 대목은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꾸준히 하락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 신뢰도가 처음으로 반등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 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신뢰도 1위로 꼽은 응답자가 42.0%에서 37.3%로 하락하는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는 21.1%에서 24.3%로 상승했다. 태극기 부대 등 보수 세력의 재결집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정치 성향 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보수 성향 응답자는 지난해 22.4%에서 올해 24.9%로 조금이라도 는 반면 진보 성향 응답자는 29.9%에서 26.8%로 줄었다.   

정의당 지지층에서 노 전 대통령 신뢰  

올해 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노 전 대통령을 꼽은 층은 주로 30대(52.8%)와 40대(52.4%)에서 많았고 박 전 대통령을 꼽는 층은 60대 이상(51.2%)에서 많았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화이트칼라(53.0%)와 대학 재학 이상 학력자(44.9%)에서 높았던 반면 박 전 대통령은 농업·임업·어업(48.9%)과 중졸 이하 학력자(54.4%)에서 높았다. 특이한 점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54.7%)보다 정의당 지지자(65.8%) 중에서 노 전 대통령을 ‘신뢰하는 전직 대통령’으로 꼽은 비율이 더 높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상승을 내년 총선에서 ‘친박연대 시즌 2’로 해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신뢰하는 전직 대통령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꼽은 사람은 1.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꼽은 2.9%보다도 낮은 수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하는 전직 대통령으로 꼽은 사람은 지난해 15.9%에서 올해 17.3%로 증가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호남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김 전 대통령을 꼽은 사람이 20.0%로 17.5%인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높았다. 햇볕정책이나 보편적 복지 등 그의 주요 정책을 문재인 정부가 계승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윤보선 전 대통령과 함께 가장 낮았다(0.2%). 그는 재임 시절 ‘물태우’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국정 장악력을 의심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재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공산권 수교 등 북방외교 정책이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후 한국 기업의 공산권 진출 계기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면에서도 노태우 정부 때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되었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 체결한 6·15 남북공동선언의 기초가 되었다. 지난 8월23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가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 사죄했다. 노씨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병상에서 여러 번 사죄의 뜻을 밝혀 이를 수행하기 위해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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