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지 그림

지난 7월26일 서울에서 이탈리아 명문 구단 유벤투스와 K리그 올스타팀 간의 친선경기가 열렸다. 이 스포츠 이벤트는 경기 내용이 아니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결장해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 한국 언론은 분노를 터뜨리며 그의 ‘노쇼’가 축구 팬들을 우롱하고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과연 그런가?

호날두는 한국에 오기 닷새 전인 7월21일 싱가포르에서 토트넘과 63분간 경기를 치렀고, 7월24일 중국 난징에서 인터밀란 전에 풀타임으로 출전했다. 이틀 뒤 7월26일 예정된 서울에서의 경기가 아시아 투어로 준비된 세 번째 경기였다. 비행기로 이동하며 엿새 동안 3게임을 뛰는 일정은, 호날두뿐만 아니라 유벤투스 선수 모두에게 무리한 것이었다. 과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고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바로 투입된 손흥민의 경우에는 국내 언론이 선수 보호 차원에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는데, 그때가 주당 두 게임 수준이었다.

호날두가 남기고 간 ‘색다른 교훈’

이와 같은 무리한 일정은 누가 계획했을까? 정확한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호날두가 직접 이와 같은 아시아 투어 계약을 체결한 것 같지는 않다. 선수를 뺑뺑이 돌리는 해외 투어는 시즌 외에 추가 수입을 얻으려는 구단과 한국에서 문제된 대행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기획되었을 확률이 높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호날두가 서울에서 몸을 혹사하며 멋진 플레이를 보여줬다면 훌륭한 팬 서비스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호날두가 아시아 투어 마지막 경기에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마냥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상상력을 발휘해서, 호날두를 우리와 같은 노동자의 처지에서 생각해보자. 호날두도 구단과 감독의 지시를 수행하지 않거나 부상으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없다. 다른 축구 선수 ‘노동자’들처럼 그도 구단주(사용자)의 지휘를 받아 노동을 제공해야(정규 경기에 출전해야) 하는 계약상 의무가 존재한다.

물론 호날두가 연봉 수백억원을 받는 세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인 점에서 그를 노동자의 지위로 ‘격하’시키는 것에 심리적 거부감이 발생할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가장 힘이 센 노동자’로서 호날두는, 사용자와의 협상에서 노동자가 노동조건을 어떻게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지 보여주며 우리에게 색다른 교훈을 준다. 서울에서 노쇼는, 유벤투스 구단과 감독 역시 투어 이벤트에서 호날두의 출전을 강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호날두는 주 40시간 법정 노동시간(세리에 A)에는 경기에 출전해야 하지만, 추가 노동시간(아시아 투어)에는 스스로 출전을 거부할 수 있는 ‘교섭력’을 갖추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호날두와 달리 유벤투스 선수들 대부분은 구단이 마련한 무리한 일정을 묵묵히 견뎌야 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비싼 티켓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자의 시각에서 그의 결장(노동 제공의 거부)을 바라본 것은 아닐까. 사장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소비자가 왕’이라는 바로 그 시각에서 말이다. 경기장을 나온 우리는 유벤투스 선수들처럼 회사가 마련한 지옥의 일정을 군말 없이 감내해야만 한다.

모두가 호날두처럼 될 순 없지만 ‘노동자’ 호날두가 보여준 어떤 새로운 지평을 꿈꿔볼 수는 있다. 사용자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시간외 노동을 거부하는 그런 삶 말이다. 법정 노동시간 동안 일하면서 1차 회식 정도는 참석할 수 있지만, 본부장이 영업해온, 잘 알지도 못하는 의뢰인과의 2차, 3차 회식은 과감히 거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기자명 양지훈 (변호사·〈회사 그만두는 법〉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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