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종료, 미국의 예상 행보
  •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호수 625
  • 승인 2019.09.0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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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불만과 실망감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갈등의 중재 역할은 피하면서 지소미아 종료를 번복시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8월28일 외교부 조세영 1차관(오른쪽)이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왼쪽)와 면담했다.

미국의 본격 ‘개입’이 시작될까. 최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관리 우대조치) 국가에서 제외하자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대응했다. 한·일 양국 간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가운데 미국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국의 우방이자 동맹국인 미국이 유독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만 불만과 실망감을 잇달아 표출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중재자로서 양국의 갈등 해소에 진력하기보다 한국의 결정 번복에 주력하는 것 같은 인상마저 준다.

랜들 슈라이버 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 차관보는 8월27일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 결정에 우려와 실망감을 나타내며 사실상 한국에 대한 압박성 발언을 했다. “한·미 상호 방위, 안보 관계를 유지하려면 문재인 정부가 결정을 재고하는 것이 가장 유익할 것으로 판단한다.” 8월28일 한국 정부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를 불러 미국 고위 관리들의 공개적인 불만 표출에 대해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자칫 이 문제가 한·일 갈등을 넘어 한·미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어서다.

8월22일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직후부터 미국 국무부·국방부 등 유관 부처들은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해왔다. 먼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한국 정부의 결정에 실망했다”라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도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시했다. 절제와 자제가 특징인 외교 용어상 미국이 전통적 동맹인 한국에 대해 이런 직설적인 표현을 쓴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외교 용어에서 상대국에 대한 불만 표현은 단계별로 수위를 조절한 ‘유감’ ‘우려’ ‘실망’ ‘규탄’ 등이 있다. 통상 우방에 대해서는 유감 이상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 측이 ‘실망’이란 표현까지 사용한 것은 그만큼 한국에 대한 불만이 크다는 방증이다. 미국은 특히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방침을 놓고 “미국도 이해했다”라고 한 데 대해 불쾌감과 함께 “사실이 아니다”라며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소미아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2010년 10월 일본이 제안한 협정이다. 2016년 11월 한·일 양국의 서명으로 발효됐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협정 성사를 위해 적극 나섰던 것도 사실이다. 북핵과 미사일 이슈는 역대 미국 행정부의 외교정책에서 언제나 우선순위를 차지해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외교 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 때문에 지난 7월 일본이 한국에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자 미국은 무엇보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외교 경로로 ‘종료 반대’ 의견을 표시해왔다.

7월 하순 방한한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 같은 의견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지난 8월21일 북핵 실무협상 협의차 방한해 한국 관리들을 만난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앨리슨 후커 국가안보회의(NSC) 한국정책국장 역시 같은 견해를 표명했다. 미국 측이 막판까지도 지소미아 유지를 기대했지만 종료 결정이 나오자 상당한 불만과 함께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 워싱턴 외교가의 중론이다.

“한국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뺨 때렸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미국 내 대다수 지한파들도 우려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현직 관리들도 탐독한다는 워싱턴 외교가의 정보지 <넬슨 리포트>에 반영된 이들의 분위기가 그렇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이번 결정을 “훗날 사가들이 보기에 미국 중심의 동북아 안보 구조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기록될 만한 어리석고도 그릇된 결정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미국의 지속적인 지소미아 연장 요청을 한국이 거부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뺨을 때리는 격”이라면서 “이번 결정이 안보 파트너로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자신감을 훼손할 것이기에 한·미 동맹 관리가 힘들어질 것이다”라고 관측했다. 댄 스나이더 스탠퍼드 대학 방문학자는 “이번 결정은 전략적 차원에서 한국의 국가 안보를 약화시키고, 장기적으론 중국과 북한의 이익에 부합한 전략적 우둔함을 드러냈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중앙통신지난 8월17일 북한 조선중앙TV가 공개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모습.

 

반면 한·일 양국의 갈등을 수수방관한 미국 정부를 탓하는 인사도 있다.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북한의 핵·미사일 무기고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시점에 나온 이번 결정은 미국 국가 안보에 직접 위해를 가한다”라면서 “이는 우방과의 협력적 기조를 저버린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가 자초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한반도 전쟁의 기원과 진실> 저자인 지한파 존 메릴 박사도 미국의 역할 부재를 비판했다. 그는 <시사IN>에 “미국은 한·일 갈등이 터졌을 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기껏해야 양국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하는 수준이었다. 미국은 중재자 역할을 거부했고, 개입하고 싶지도 않았다”라며 트럼프 행정부를 질타했다. 스나이더 스탠퍼드 대학 방문학자도 “트럼프 대통령이 좀 더 분명한 입장을 일찌감치 표명했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같은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지금이라도 관망 자세를 접고 적극적인 중재에 나설 것인가? 슈라이버 국방부 차관보를 비롯한 미국 고위 관리들의 말을 들여다보면 미국이 중재역을 자청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뉴욕타임스>는 복수의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 “설령 이 지역에서 미국의 안보 이익이 훼손되더라도 미국은 한·일 양국의 분쟁에 중재자로 나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8월23일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우려하느냐는 백악관 기자 질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자”라고만 언급했다.

미국은 한·일 갈등의 중재역을 피하면서 오는 11월22일 발효될 지소미아 종료를 번복시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의 압박이 시작된 느낌이다. 익명의 미국 당국자가 “지소미아가 종료되는 11월 하순 이전에 한국이 생각을 바꾸길 바란다”라며 AFP 통신에 노골적으로 한국의 재고를 촉구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특히 슈라이버 국방부 차관보는 <니혼게이자이 신문>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 및 아베 총리와 별도의 관계를 갖고 있어 필요하면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라고 말해 주목된다.

메릴 박사는 <시사IN>에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한국이 더 이상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워싱턴에 보내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임박한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과 관련해서도 이번 결정은 워싱턴에 유용한 메시지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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