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공범이면 정의가 멈춘다
  • 김은지 기자
  • 호수 624
  • 승인 2019.09.0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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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황토색 수의에 텁수룩한 수염. 반소매 밑으로 드러난 팔목에는 아날로그시계를 찼다. 밖에서 지나쳤다면 분명 못 알아봤을 차림으로 8월13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법정에 들어섰다.

그는 판사가 직업, 사는 곳 등을 물어볼 때 외에는 별 말이 없었다. 대신 변호인이 적극 주장을 펼치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김학의는 6년간 파렴치한 강간범으로 낙인찍혀 온갖 조롱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2019년 3차 수사에서) 검찰은 어떤 혐의로든 처벌하려 애초 문제된 강간 혐의와 별개로 신상털이에 가까운 수사를 해 생뚱맞게 뇌물죄로 기소했다.”

건설업자 윤중천씨 등에게 향응을 일부 제공받았더라도, 검찰이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김영란법(대가에 상관없이 공직자 등이 돈을 받으면 처벌) 시행 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고 주장했다. 별장 성관계 여부조차 “기억이 흐릿하다”라며 피해 갔다. 검사장을 지낸 고위 법조인이었던 만큼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라는 법조인들의 우려가 무엇인지 짐작 가능한 순간이었다.

김학의 전 차관 쪽 변론을 들으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피해자 여럿이 고통을 호소해도 여전히 자기 죄를 인정하거나 반성하지 않는 김 전 차관뿐 아니라 애초 2013~2014년 1·2차 사건을 망친 검찰에 대한 감정이 더 컸다. 사실 김 전 차관 쪽 논리는 1·2차 검찰 수사에 기반을 두고 출발한다. 당시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여러 차례 기사로 썼듯이, 검찰은 ‘김학의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된다. 봐주기 수사, 그 자체로 범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김학의 사건의 본질은 ‘김학의’ 개인보다는 ‘검찰’에 있다고 본다. 집중된 권한을 가진 검찰이 마음먹고 봐주려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 사례이기 때문이다. 비대해진 권력을 가진 조직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불행하게도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조직도 많지 않다.

김학의 전 차관은 구속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툰다. 하지만 김 전 차관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지난 1·2차 검찰 수사팀의 문제는 잊히고 있다. 내가 앵무새처럼 이 문제를 반복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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