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그림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8월3일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21세 백인 남성이 대형 쇼핑단지 내 월마트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해 20명을 죽이고 26명을 다치게 했다. 이튿날인 8월4일, 오하이오 데이턴 시내 번화가에서 24세 백인 남성이 역시 총을 마구 쏘아 9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당했다. 불과 13시간 사이에 29명이 죽고 40명이 넘는 이들이 다쳤다. 데이턴의 용의자는 현장에서 사살되었고, 엘패소의 범인은 순순히 투항했다. 그는 자신의 타깃이 멕시코 이민자, 즉 히스패닉이었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 국민적 논의에 포함되어야 하는 다른 한 부분이 있다고 말하며 이렇게 물었다. “범인은 왜 항상 남자인가?”

대량학살 범죄자의 공통점은 ‘여성혐오’

지난해 10월 거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기억한다. 20대 남성이 길가에서 폐지를 줍던 50대 여성을 수십 차례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에서부터 이어지는 감정 때문에 한참 마음이 좋지 않을 때, 한 남성 지인과 사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여성을 향한 폭력이 반복되는 문제를 말하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그것은 ‘여성’을 향한 폭력이 아니고 그냥 ‘약자’를 향한 폭력이라며 살인사건 피해자는 남자가 더 많다고 말했다. ‘여성이 죽는다’라고 말했더니 ‘남성도 죽는다’라고 대답한 셈이다.

2017년 대검찰청 발표에 따르면 살인 범죄 피해자의 59%가 남성, 41%가 여성이다. 여성이 죽는다고 말할 때 초점은 ‘남성이 죽여서 여성이 죽는다’는 것이다. 검거된 살인 범죄자의 85%가 남성이었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묻지마 살인’의 가해자 성별은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다. 만약 이때도 남성이 남성을 죽인다고 말한다면, 이제는 프레임을 바꿔서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남성이 죽인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지만 남성의 폭력이 약자를 향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표는 여성혐오다.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뉴욕타임스〉는 8월10일 ‘대량학살자의 공통점:여성을 향한 증오(A Common Trait Among Mass Killers:Hatred Toward Women)’라는 기사를 통해 다수를 살해하는 종류의 범죄를 연결하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여성혐오를 꼽았다. 가해자 모두 아내, 연인, 여성 가족을 폭행하거나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적 견해를 공유한 역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성혐오는 멈춰 있지 않는다. 적어도 여성보다는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 적어도 이민자보다는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장애인보다는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의식, 지방 출신보다는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사고 등과 층위를 같이해, 개인과 집단의 복합적인 혐오를 구성한다.

사람들이 죽는다. 각자의 인생을 평범하고 소중하게 살고 있던 사람들이 매일 자신과 무관한 타인의 혐오와 분노로 죽는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살릴 것인가의 문제는 사실 ‘어떻게 죽이지 않게 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누가 죽이는가’라는 질문에서 남성이라는 성별은 아주 쉽게 탈각된다. 우리에게 남성이 죽인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논의조차 되지 않는 정도에 이르렀다.

‘남성이 죽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리가 없다. 한 성별이 태어날 때부터 잘못되었다거나 악하다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 어딘가에 실패한 고리가 있다. 이 고리를 어떻게 푸느냐는, 그것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범인은 왜 항상 남자인가?”

기자명 박수현 (다큐멘터리 감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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