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모두가 주문처럼 데뷔를 외운다. 데뷔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노라며 눈물로 호소하는 연습생부터 자신의 아이돌을 데뷔시키기 위해 전광판 광고나 커피차 서포트 등을 서슴지 않는 팬들까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일상이다. 데뷔를 위해 짧게는 2~3년에서 길게는 10년의 세월도 아깝지 않다 생각하는 젊음이 차고 넘친다. 데뷔는 그들에게 꿈이자 희망이며, 미래이자 개벽이다.

단지 간절하다는 말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 데뷔를 무려 네 번이나 해낸 사람이 있다. 단 한 번의 기회에 목숨을 거는 사람 처지에서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도 그만의 사정이 있으니 이해하자. 바로 NCT의 래퍼 마크다. NCT라는 커다란 우산 아래 NCT U, NCT 127, NCT DREAM 등 세분화된 그룹이 존재하지만 그의 소속은 굳이 지정할 필요가 없다. 마크는 그 모든 그룹의 멤버이거나 멤버였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는 SM엔터테인먼트의 ‘네오(Neo)’함을 대표하는 NCT의 산증인이자 최종 병기다.

그에게 최종 병기의 지령이 떨어진 건 2016년 NCT의 첫 번째 그룹 NCT U가 ‘일곱 번째 감각’을 세상에 내놓던 순간부터였다. 무겁고 낮은 비트, 깊은 꿈속을 거닐고 있는 듯한 몽롱한 분위기의 ‘퓨처베이스’ 사운드로 매만져진 곡에서 마크는 ‘You Do, You Want’라는 구절로 출사표를 던졌다. 이후 이어진 길지 않은 파트는 노래 전반의 환기를 담당한 것은 물론 SM엔터테인먼트 출신 래퍼들에 대한 사람들의 오랜 편견도 크게 바꿔놓았다.

자신만의 스킬과 스타일로 아이돌과 힙합 사이의 경계를 허문 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SM은 여전히 그 흐름과는 꽤 먼 곳에 위치한 기획사였다. 마크가 1세대부터 유구하게 이어져온 이 고정관념을 타파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남다른 출신 이력과 노력이 일구어낸 좋은 시너지 덕분이었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으로 뉴욕과 밴쿠버를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한국어와 영어를 세련되게 섞은 가사를 직접 쓰고 부를 수 있었다.

여기에 성실함이 더해졌다. 연습생들 사이에서 연말마다 뽑는 ‘연습왕’ 타이틀은 매해 그의 몫이었다. 그런 마크의 시간은 ‘SM에서 드디어 랩다운 랩을 구사하는 인물이 나왔다’는 세간의 평가를 이끌어냈다. 평론가들은 물론 올티, 제리케이 같은 힙합 음악가까지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SM 소속으로는 이례적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고등래퍼〉에 출연한 것 역시 그런 소속사의 믿음과 자부심의 반영이었을 터이다.

다시 마크의 네 번째 도전이 시작된다. 샤이니, 엑소, NCT, 웨이션브이 등 지금 소속사를 대표하는 보이 그룹이 모조리 헤쳐 모인 팀, 슈퍼엠(SuperM)이다. 각 그룹을 대표하는 주요 멤버만을 모아 엮은 구성 때문에 SM의 ‘미국 진출 끝판왕’으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에 또다시 마크의 이름이 올랐다. 활동 4년 차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긴 활동과 앨범 발매 목록 앞에 새삼 현기증이 나지만,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기회를 많이 받게 되어 영광”이라 대답하던 사람 좋은 얼굴을 애써 떠올려본다. 데뷔는 이제 충분하다. 그의 얼굴에 데뷔의 설렘이 아닌 성취의 값진 미소가 떠오르기를 고대한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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