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2019년 3월12일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천장 벽화를 페드로 산체스(오른쪽에서 세 번째) 스페인 총리가 살펴보고 있다.

인류는 고기 먹기를 좋아하고 많은 양의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침팬지나 고릴라와 같은 다른 유인원에 비해서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사실 고기를 먹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은 특별합니다. 놀랍지만 채식 동물도 고기를 좋아합니다. 고기를 싫어하는 동물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채식 동물이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고기를 소화해내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고기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은 적은 양으로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고급 영양원입니다. 같은 양의 채소와 비교해서 고기를 먹을 경우 두 배 이상의 칼로리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육식 동물뿐 아니라 심지어 채식 동물도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 먹기를 좋아합니다. 채식 동물은 고기를 소화할 수 없을 뿐입니다.

고릴라와 같이 채식을 위주로 하는 유인원에게 고기 위주의 식단을 주었더니 한도 끝도 없이 먹어서 연구자들이 놀랐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먹는지 보려고 계속 주었는데 결국 고릴라의 간에 독소가 너무 높아져서 중지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침팬지도 고기를 좋아해 가끔 무리 지어 어린 원숭이를 급습해 잡아먹는 경우가 관찰됩니다. 침팬지는 고기 먹기를 좋아하지만 자주 먹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주기적으로 사냥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몸집이 큰 유인원은 간헐적으로 얻을 수 있는 동물성 먹거리에 의존해서는 큰 몸집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채식에 의존합니다. 고릴라는 매일 깨어 있는 시간의 상당한 부분을 먹는 데에 씁니다.

대부분의 영장류가 그렇듯, 인류 역시 채식 위주의 생활을 하다가 언제부터인지 고급 영양원을 확보했습니다.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입니다. 그 시점은 200만 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그 이유는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이라는 고급 영양원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몇 가지 현상이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두뇌 용량이 커지고, 몸집이 커졌습니다. 두뇌 용량은 인류 진화 역사를 통해 세 배 이상, 거의 네 배에 가까울 정도로 늘었습니다. 몸집도 키가 거의 두 배 가까이 커졌고 무게는 더 많이 증가했습니다. 머리와 몸을 키우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커진 머리와 커진 몸을 유지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큰 머리와 큰 몸은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을 꾸준히 확보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몸집과 머리를 크게 키우고 유지한 것은 2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나 호모 에르가스테르부터 나타납니다. 커진 몸집·머리와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칼자국이 난 동물 뼈와 사람 손의 흔적이 분명한 돌로 만든 도구입니다.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은 얻을 방법은 사냥뿐입니다. 물론 사냥에 능한 다른 포식동물이 먹고 버린 사체를 주워 먹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 방법에 의존했던 인류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호모 하빌리스 혹은 호모 루돌펜시스가 그런 방법으로 동물성 먹거리를 얻고, 그렇게 얻은 에너지로 머리와 몸이 커졌다고 봅니다. 인류가 처음 등장했던 플라이오세의 인류보다 어느 정도 커진 머리를 가진 호모 하빌리스는 두뇌 용량이 600cc에서 700㏄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호모 에렉투스 혹은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플라이오세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비해 몸과 머리가 두 배가량 커졌습니다. 남이 먹고 버린 사체에 의존하기보다 더 본격적으로 사냥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 있는 동물을 잡아서 먹는 능력은 인류 진화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살아 있는 동물을 잡기 위해서는 같은 자리에 가만히 있는 채소나 사체를 획득할 때와는 다른 지식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잡아먹는 동물은 먹히는 동물의 행동을 파악하고 예측해서 잡아야 합니다.

여타 포식 동물과 달랐던 인류의 사냥 방식

특히 인류는 다른 포식 동물에 비해 신체적으로 불리합니다. 두 발 걷기에 최적화된 다리는 시속 수십㎞까지도 달릴 수 있는 동물들을 뛰어서 따라잡지 못합니다. 설사 따라잡았다고 해도 목줄을 물어뜯어서 숨통을 끊을 수 있는 강력한 턱뼈와 이빨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몸집이 크다고 했지만, 이는 영장류치고 큰 몸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포식 동물들에 비하면 어림없이 작습니다. 작고 느린 동물인 인류가 사냥에 승부를 걸겠다는 결정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인류는 다른 포식 동물과 경쟁을 해서 사냥을 해야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잡아먹히지 않도록 피해야 했습니다.

인류는 여타 포식 동물과는 다른 방법으로 사냥을 했습니다. 다른 포식 동물이 활동하지 않는 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틈새시장을 공략한 셈입니다. 인류는 단시간에 확 따라잡아서 순식간에 숨통을 끊는 방법이 아니라, 길게 잡고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죽이는 방법으로 사냥하게 되었습니다. 무더운 대낮에도 끈질기게 따라다닐 수 있도록 털을 잃고 땀을 흘리는 방법으로 체온을 조절했습니다. 지난한 노력 끝에 잡은 고기는 다른 사체 청소부가 달려오기 전에 재빨리 손질해서 그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이 모두 정보수집 능력과 처리 능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사냥으로 얻은 고기 덕분에 커질 수 있었던 머리는 사냥을 가능하게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인류 진화 역사에서 사냥 적응은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사냥하는 인간’이라는 역사적인 학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1968년에 〈사냥하는 인간〉이라는 논문집으로 엮여 나왔습니다. 이 논문집은 고인류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은 인류의 진화에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것을 얻기 위한 사냥 적응 역시 인류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다양한 자료로 검증된 가설입니다.

학계 안팎에 강한 인상을 준 〈사냥하는 인간〉에는 자료로 검증되지 않은 부분도 등장했습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사냥하는 인간’ 모델에 등장하는 사냥꾼은 남자입니다. 인류 진화에서 사냥으로 얻게 된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 중요한 일은 남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받아들여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선사시대와 사냥에 대한 이미지는 남자로 표현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남자가 혼자서 창이나 돌도끼를 들고 있는 모습도 많고 남자들이 무리를 이루어서 창과 돌도끼를 가지고 짐승을 잡는 모습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남자가 사냥을 전담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고인류학 자료는 없습니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둘도 없이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히는 사냥이 남자의 전유물이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Wikipedia초기 인류학자인 조지 피터 머독은 “남자가 사냥을 전담한다”라고 기록했다.

‘사냥하는 인간’의 영어 표현은 ‘Man the Hunter’입니다. 여기서 ‘man’은 물론 남성을 특정하는 표현이 아니고 ‘인간’이라는 뜻의 보통 집합명사입니다. 그렇지만 ‘사냥하는 인간’ 모델이 학계에 처음 두각을 나타냈던 1968년 논문집에서는 이미 ‘사냥하는 남자’였습니다. 여자는 체력이 남자보다 부족하므로 사냥은 남자의 전유물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전제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전제는 사실 1930년대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초기 인류학자인 머독은 224개 문화를 다룬 민족지를 분석하여 HRAF(Human Relations Area File)이라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습니다. 이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인류 집단들의 98%는 남자가 사냥을 전담하며 이는 뛰어난 체력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남자는 사냥뿐 아니라 어로·목축·상업을 맡고, 여자는 출산과 육아를 담당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별 분업을 하는 수많은 집단에서 여자는 출산과 육아 및 가사를 담당하고 남자는 나가서 먹을 것을 마련해와 가족들과 나누어 먹는 장면이 종종 그려지곤 했습니다. 남자가 사냥을 전담했다는 증거자료로 쓰이는 것은 민족지입니다. 민족지에서는 여자가 사냥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를 다양하게 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부족한 체력을 모두 출산과 육아에 쏟게 되고, 몸에서 냄새가 나서 사냥에 나갈 경우 존재를 들키게 되고, 감정적이기 때문에 사냥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사냥을 비롯한 생계 활동은 남자의 몫이고, 출산과 육아는 여자의 몫이라는 성별 분업은 인류 집단에 보편적인 명제가 되었습니다. 성별 분업이 민족지에서 보편적인 명제가 되자 인류 진화 역사에서도 보편적인 명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별 분업은 보편적인 명제가 아닙니다. HRAF 데이터베이스가 처음 만들어진 1930년대 이후로 인류학계는 많이 변화했습니다. 특히 1980년대를 기점으로 스스로 돌아보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민족지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화의 ‘보편성’이 사실은 자료를 수집하는 인류학자들의 천편일률적인 모습일 뿐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백인 남성이 아닌 다양한 배경의 다양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인류학자들이 늘어났습니다. 다양한 인류학자들이 수집한 인류 문화의 다양성은 이전까지의 ‘보편성’이 얼마나 좁고 제한적인지 알게 해주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여성 인류학자들이 증가하면서 여자가 하는 일에 대한 관심도 늘었습니다. 그 결과 사냥하는 여자에 대한 기록도 늘었습니다. 서구 세계에 익숙한 사냥하는 모습은 엽총이나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타고 나가서 사냥감을 겨눈 다음 한 방 쏘아 맞히면 개가 뛰어가서 물고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인류 집단에서 보이는 사냥은 생계 활동입니다. 인류가 생계 활동으로 사냥을 하는 모습은 다릅니다. 생계형 사냥에는 남녀 모두가 참여합니다. 취미 생활용 사냥처럼 차려입고 나가 동물을 잡아서 돌아오는 일이 아니라, 여러 날을 거쳐 동물을 탐색하고 추적해서 잡은 다음 손질해서 가지고 돌아오는 여러 단계가 들어간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합니다.

여자끼리만 수렵 집단 이루는 경우도 있어

출산이 다가왔거나 갓난아기에게 수시로 모유를 먹여야 하는 사람들은 며칠 동안 동물을 추적하는 일에 쉽게 가담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냥에 필요한 여러 단계의 과정에 하나도 참가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사냥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생리 중이거나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다고 해서 사냥 생산성이 낮아지지 않습니다. 옛날 한국에서 어머니가 머리에 짐을 이고, 등에 아이를 업고 온종일 걸어서 장에 나가 물건을 팔고 돌아오는 모습은 낯설지 않습니다.

다양한 집단 구성원이 참가하는 생계 활동으로서 사냥은 북미, 남미,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시아 등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여러 민족지에서 드러나는 사냥하는 여자의 모습 또한 다양합니다. 며칠 동안 계속되는 추적에 함께 뛰고 함께 걷고 함께 죽입니다. 어떤 집단에서는 추적 행위에 주로 참가합니다. 어떤 집단에서는 여자끼리만 수렵 집단을 이룹니다. 어떤 집단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함께 수렵 집단을 이룹니다. 어떤 집단에서는 그물을 던지는 일을 담당합니다. 어떤 집단에서는 잡은 동물을 손질해서 근거지로 가져오는 일을 담당합니다. 어떤 집단에서는 선발대를 담당합니다. 어떤 집단에서는 집단으로 큰 동물을 수렵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개인적으로 작은 동물을 수렵합니다. 어떤 집단에서는 출산과 육아를 시작하지 않았거나 끝낸 여자들이 사냥에 참여합니다. 어떤 집단에서는 출산과 육아 시기에 활동이 가장 왕성합니다.

달리 말하면, 인간 집단에서 보이는 수렵 행위는 다양하며, 어느 한 모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민족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여자가 사냥에 참여하는 모습은 종종 발견됩니다. 남자만이 사냥에 참여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자들이 사냥하는 모습만 부각되고 강조되었으며, 사냥하는 남자만이 학계의 기억에 남게 되었습니다.

사냥하는 여자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은 이유는 여자와 여자의 삶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일은 계속 지워져왔으며 사냥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많은 주목을 받지 않습니다.

인류 진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사냥 적응의 시작과 전개에 참여했던 다양한 인류 조상의 모습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인류학계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장려하고 북돋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자명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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