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이 계곡 불법행위 적발에 나선 후에도 장흥유원지 계곡에는 평상을 깔고 영업하는 식당이 성업 중이다.

막바지 여름휴가철인 8월18일, 경기도 포천시 백운산 자락은 나들이객으로 북적였다. 백운계곡에서 흐르는 물은 흥룡사 인근에서 선유담계곡과 만나 영평천을 이룬다. 맑은 하천을 따라 깔린 2차선 주변에 각종 식당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이들 식당이 설치한 평상이 하천을 감싸고 있었다. 거대한 식당이 된 하천변은 인공 시설물로 가득했다. 상인들은 개울가 땅을 다지고, 철제 구조물을 용접해 평상을 설치했다. 개울로 바로 내려갈 수 있는 인공 미끄럼틀을 설치하거나 전기를 끌어와 분수대를 만들어두기도 했다.

물놀이용 웅덩이를 만들기 위해 ‘인공보’를 설치한 풍경도 눈에 띄었다. 비닐 소재나 콘크리트 구조물로 하천 물을 막아 수심을 확보하기도 했다. 상인들에게 영평천 상류는 상수도 요금을 낼 필요가 없는 워터파크였다. 인공적으로 설치한 보는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빨라져 위험할 수도 있지만 따로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7월22일과 8월1일 울산 울주군 배내골 계곡에서 일어난 어린이 익사 사고(각각 7세, 14세)도 인근 상인이 조성한 인공보에서 발생했다.

이날 당일치기 피서를 위해 백운계곡을 찾은 한 일행은 고심 끝에 한 식당에서 백숙 세 마리를 주문했다. 닭백숙 한 마리 가격은 7만원. 6명이 앉을 수 있는 평상 하나를 얻기 위한 비용은 음식 값을 포함해 총 21만원이었다.

경기도 내 다른 계곡 풍경도 백운계곡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주시 장흥유원지 계곡, 광주시 남한산계곡 등 유명 계곡마다 천변 식당이 여름철 호황을 누린다. 하천을 찾은 사람들은 결국 자릿세를 따로 내거나 비싼 음식값을 감수해야 하천에 발을 담글 수 있다. 이런 풍경은 매년 여름철 반복된다.

그만큼 ‘백숙 식당 논란’은 해묵은 이슈다. 자연 하천 주변은 공유지이다. 하지만 개인이 돗자리 펴고 물놀이를 즐길 만한 장소는 마땅치 않다. 빈자리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식당 평상 때문이다. 도로변 주차가 가능한 곳일수록 더 심하다. 하천을 불법 점유한 상인의 폭리에 지자체가 나서지만 매년 솜방망이 처벌로 그친다.

올해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계곡 점유 문제가 경기도청의 조치로 전국구 이슈가 되었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특사경)은 8월1일 도내 16개 주요 계곡에서 불법행위를 74건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2018년 11월부터 특사경의 업무 범위에 ‘하천법 위반 적발’이 포함되면서 대대적인 단속이 가능해졌다. 특사경이 발표한 전체 적발 사례 가운데 절반 이상인 49건이 계곡 불법 점용 사례였다.

경기도의 조치는 여론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즉각적인 철거와 처벌로 이어지진 않았다. 특사경이 적발하더라도 시설물을 해체하는 행정대집행은 각 시군구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해야 한다. 결국 원래 하천 관리에 책임이 있는 지자체에 다시 공이 넘어간다. 적발당한 상인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개발제한구역인 하천에서 불법 평상을 설치해 관련 법률을 어길 경우 계도 기간을 거친 뒤 자진 철거를 유도한다. 이행강제금은 최소 600만원 수준이다. 상인 처지에서는 철거를 하지 않고 강제금을 내는 편이 더 이익이다. ‘보여주기식 단속’이라는 지적이 해마다 나오는 이유다.

경기도는 장기전을 선택했다. “(위법행위가 반복되면 공무원과 상인 간의) 유착을 의심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면 수사 의뢰하는 것까지 고려하라. 전담 특별팀을 만들라.” 8월12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발언은 백숙 식당 단속에 불을 지폈다.

이재명 지사는 소수인 상인들의 반발을 무시하는 대신 다수인 여론의 지지를 확보하는 선택을 하면서 아예 공무원 처벌 의사까지 밝혔다. 상인들도 긴장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8월19일 포천 백운계곡에서도 불법 설치물을 사진 촬영하는 기자에게 지역 상인들이 불쾌감을 표했다.

‘이재명식 공무원 처벌’ 엄포라는 강경책 없이 시군구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하천 평상 철거에 나설 수는 없을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경기도 남양주시가 성과를 냈다.

평상 사라진 천변에 주차장·화장실 등 설치

지난 8월3일 지인들과 남양주시에 위치한 수락산계곡을 찾은 권두영씨(35)는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본 식당을 방문했지만 자리가 없었다. 인근 식당 모두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식당 영업을 하지 않는다”라거나 “물가 자리를 철거해서 남는 자리가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권씨가 ‘흔한 계곡 백숙집’을 찾지 못한 것은 남양주시가 대대적으로 불법 구조물 철거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남양주시는 지난 3~7월 시내 주요 하천에 설치되어 있던 82개 불법 구조물을 자진·강제 철거했다. 경기도청 특사경이 경기도 전역에서 적발한 사례보다 더 많은 수치다.

남양주시는 지난해부터 준비했기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지난해부터 단속을 예고하며 주민 설명회를 거쳤고, 올해 본격적으로 철거에 나선 뒤 재정비하는 사업을 벌였다. 남양주시는 평상이 사라진 하천변 가운데 개별 여행객이 드나들 만한 곳은 주차장이나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상인들이 불법 점유한 공유지를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일종의 공원화 전략이다.

여론이 호응하고 하천에서 백숙을 몰아내는 것이 결국 더 많은 관광객을 부른다는 게 입증될 경우 남양주시 정책은 정치적 성공 사례가 될 수 있다. 남양주시의 사례를 다른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벤치마킹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백숙 식당 단속은 언뜻 작은 이슈처럼 보이지만 하천이라는 공유재를 둘러싼 정치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백숙 식당 단속을 둘러싸고 또 하나 짚어야 할 논쟁은 특사경의 권한이다. 원래 특사경은 모든 분야를 수사하는 검찰·경찰과 달리 해당 분야 전문 공무원에게 수사 권한을 주는 제도다. 특사경은 형사소송법 제197조에 근거해 행정법규 위반 사건을 다루는 사법경찰권을 보유한 행정공무원이다. 이재명 지사는 당선 이후 이 특사경 규모를 확대했다. 기존 7개 팀 101명에서 13개 팀 171명으로 늘렸다. 지난해까지 식품이나 환경 문제, 의약 문제 등 6개 분야에서 수사권을 발휘한 반면 올해부터는 대부업 적발, 동물보호 등 23개 분야로 업무 범위를 넓혔다. 일부에서는 도청 행정력이 곧 수사기관처럼 변질될 수 있어 특사경 확대를 경계한다. 이 같은 논쟁에서 백숙 식당 단속은 특사경 확대 긍정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2019년 여름이 남긴 백숙 식당 논란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경기도는 도지사가 직접 내년 여름을 겨냥해 대대적인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남양주시의 사례도 온라인에서 전파되며 다른 지역을 자극하고 있다. 지자체의 정치적 동력이 과연 하천을 다시 공유재로 바꿀 수 있을까. 변화 여부는 내년 여름이면 확인할 수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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