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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 수사 무마 로비자금 5억원 뿌렸다

지난해 12월9일 태안 해경의 ‘해상 작전’ 과정에서 중국으로 밀항한 4조 원대 금융 다단계 사기 주범 조희팔은 밀항하기 직전 인근 서산 태안지역 경찰 수사 무마 로비 자금조로 5억원을 집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2009년 03월 12일 목요일 제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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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9일 태안 해경의 '작전' 과정에서 중국으로 밀항한 다단계 사기 주범 조희팔.
지난해 12월9일 태안 해경의 ‘해상 작전’ 과정에서 중국으로 밀항한 4조 원대 금융 다단계 사기 주범 조희팔은 밀항하기 직전 인근 서산 태안지역 경찰 수사 무마 로비 자금조로 5억원을 집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지난해 가을 조희팔의 ‘경찰 로비 자금’을 제보 받아 수사를 벌인 인천지검 부천지청 관계자를 통해 드러났다. 서산경찰서는 조희팔 다단계 사기사건을 맨 처음 수사했던 곳으로, 조희팔 일당이 밀항에 성공한 태안 지역 육지 치안을 관할한다.

당시 조희팔의 서산 경찰 로비 시도를 수사한 부천지청 이종근 검사는 “서산 경찰서에서 조희팔 사건 피해자 진정을 받아 수사에 착수한 뒤 (주)리브 서울 경인지역 총책인 김근호(도피중)와 고문인 황의윤(구속중)이 공모해 서산 경찰 수사를 무마하기로 하고 조희팔에게 5억원을 받아 로비한 사건을 수사했다. 김근호는 대구 본사의 조희팔로부터 서산 경찰 간부들에게 뿌려야 한다며 5억원을 받아 경인지역에 있는 (주)리브 센터장의 남편 김아무개씨와 경찰에 마당발이라는 일명 송사장에게 건넸다”라고 밝혔다.

조희팔로부터 서산 지역 경찰 상대 로비 자금 5억원을 받아 두명의 경찰 로비스트에게 건넨 김근호는 주범 조희팔의 오른팔로 서울 경인 충청지역 다단계 총책을 맡아 2만 여명에게 2조원대의 사기 피해를 입힌 거물급 수배자다. 그는 조희팔과 함께 11월30일 태안 해경의 ‘작전’ 과정중 중국 밀항선을 탔다가 해상의 파고가 높아 되돌아와 한동안 부근 펜션에 은신하기도 했다.

부천지청은 조희팔의 서산 경찰 로비 사건 수사를 통해 김근호 일당이 경찰 브로커 두 사람에게 5억원의 로비자금을 건넸고, 돈을 받은 브로커는 실제 서산 경찰서 수사 간부들을 두루 접촉해 수사 동향과 정보를 받아 조희팔 일당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했다. 그러나 부천지청에 붙잡힌 로비스트들은 끝까지 ‘서산 경찰서 수사 간부들을 만나 정보만 얻었을 뿐 돈은 건네지 않았다’며 로비자금 5억원은 자기들의 빚을 갚는 등 착복한 것으로 주장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종근 검사는 “이들이 서산 경찰서 다단계 사건 수사 간부들을 접촉해 로비를 시도한 정황은 다 파악했지만 경찰에 뭉칫돈을 건넨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일단 김씨와 송씨 등 경찰 로비 브로커 두 사람만 변호사법 위반죄로 기소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시사IN> 보도로 조희팔 밀항 과정의 베일이 벗겨진 점은 뒤늦게나마 다행’이라며 지금이라도 조희팔 밀항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 해외 도피한 그를 송환해 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패한 5억원대 경찰로비? 성공한 조희팔밀항!

‘5억원을 들고 서산경찰서 수사간부들을 두루 접촉해 수사 정보를 얻었지만 경찰간부들에게 돈은 건네주지 않았다’는 조희팔의 로비는 과연 실패한 로비일까. 의혹은 꼬리를 문다.

조희팔이 밀항 추진 과정에서 서산 경찰을 상대로 시도한 5억원대 수사무마 로비에서 핵심 인물은 경인지역 총책 김근호다. 김근호는 지난해 11월10일부터 한달간 조희팔이 서산 태안 지역을 경유해 3차례 마검포 항을 드나들며 중국 밀항을 시도할 때 함께 밀항선에 탔던 수배자다. 태안 해경과 ‘공조 작전’을 펴며 조희팔을 밀항시킨 박창희씨는 <시사IN>에 보내온 체험수기를 통해 김근호의 비중과 역할을 이렇게 썼다. “두번째 밀항을 시도하던 11월30일, 조희팔 밀항 조직은 ‘왕회장(조희팔)은 자기 대신 김근호를 먼저 밀항시키기 원한다면서 그 이유는 그가 회사 비밀을 많이 알고 있어 왕회장 혼자 밀항하면 나중에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해 결국 두사람이 함께 밀항선을 탔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11월30일 자정 마검포 항을 출발한 조희팔과 김근호의 밀항선은 해상의 높은 파도 때문에 되돌아왔고, 이후 김근호는 태안의 한 펜션에서 은신했다. 이 내용도 해경에 보고했지만 그를 잡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 밀항 제보자 박씨의 주장이다.

   
ⓒ뉴시스
조희팔 사기 사건 피해자들이 3월2일 태안 해경 앞에서 조희팔 밀항 방조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희팔이 밀항 추진 과정에서 김근호를 통해 경찰브로커를 고용해 서산 태안지역 경찰로비자금 명목으로 5억원을 집행했다는 검찰 수사 내용은 경찰관에 뭉칫돈을 건넨 결정적 증거를 잡지 못해 ‘실패한 로비’로 판단했다지만 결국 ‘성공한 밀항’이 자리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초 밀항을 시도했던 11월 초순만 해도 조희팔은 체포될까 두려워 철저히 변장한 차림으로 서산지역에 나타났다. 당시 조희팔은 서산 경찰 관할 검문소나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도로를 이용해 마검포 항구로 접근하기를 극도로 꺼려 밀항 제보자 박창희씨로 하여금 서해안고속도로까지 직접 차를 몰고 나와 밀항지로 태워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1차 밀항 실패 뒤 대구로 돌아간 조희팔이 김근호에게 서산 수사 경찰에 로비하라고 5억원을 내준 뒤인 두 번째 밀항 시도 때부터 그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서산경찰로부터 중요 지명수배를 받은 상태인데도 태연히 자기 차를 몰고 서산 태안 지역 검문소와 도로의 감시 카메라를 통과했는가 하면, 변장도 하지 않은 채 나타나 애인 김00과 팔짱을 끼고 태안 지역을 활보하는 배짱을 보였다. 특히 3번째 밀항을 시도해 성공했던 12월9일에는, 하루 전에 나타나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모텔과 식당, 항구 등을 당당히 활보하며 백주 대낮에 해경의 잠복 형사들이 보는 가운데 밀항선에 올랐다. 뭔가 든든하게 믿는 구석이 없고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거물급 수배자의 활보였던 셈이다.

“조희팔은 서산 경찰과 태안 해경을 떡주물렀다”

제보자 박씨와 공조 작전을 한 달간 펴면서도 조희팔을 잡지 않아 밀항을 방조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해경은 <시사IN>에 연락해와 이렇게 항변했다. “서산경찰서에서 조희팔 일당을 일찌감치 지명 수배했다지만 우리에게는 수배 전단도 명단도 넘기지 않았다. 조희팔이 육로를 통해 태안으로 접근해 들어오는 길목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검문소는 육지 경찰 관할인데 왜 조희팔을 못잡은 책임을 해경 탓으로만 돌리느냐”.

마검포 항구에서 시작된 조희팔의 3차례 밀항 작전이 태안 해경과 제보자의 공조 및 오판 속에 성공한 것은 해경도 부인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태안 해경의 밀항방조 책임과는 별도로 항구에 이르는 서산 경찰 관할 육로에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유유히 오고간 조희팔 일당의 행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서산 경찰서는 이미 10월부터 조희팔 사기사건을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조희팔은 밀항 장소를 대담하게도 서산과 인접한 태안지역으로 택했고, 김근호를 통해 서산 경찰 수사 무마 로비자금조로 5억원을 집행했다. 조희팔과 김근호로부터 로비자금을 받은 경찰 브로커 두사람은 이무렵 서산 경찰서 수사 간부들을 접촉해 수사 정보를 얻었다. 서산경찰서는 11월4일 조희팔 일당의 공개 수배 전단을 만들었지만 인접한 태안 해경에는 아예 전달하지 않았다. 서산 경찰서에서 태안 해경에 조희팔 일당 수배 전단을 전달해준 시점은 공교롭게도 조희팔의 밀항 성공이 확인된 다음날인 12월11일이었다. 이것을 과연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11월 초부터 조희팔 일당 9명에 대한 수배 전단을 만들어 뿌렸다는 서산경찰서가 조희팔 밀항 후 ‘서산 경찰서 상대 5억원대 로비’ 추진 주역이었던 수배자 김근호에 대해 보여준 태도도 석연찮다. 해경과 공조작전 과정 중 조희팔을 공해상에 넘겨주고 귀항하던 박씨에게 조희팔 보디가드들은 “다음 차례는 꺽다리(김근호)이니 밀항을 꼭 성공시켜 달라”라고 부탁하며 “현재 김근호는 부산에 있는 승려 홍00씨 집에 은신해 밀항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알려줬다.
 
마검포항에 도착한 박창희씨가 태안 해경에 들어간 때는 12월10일 자정 무렵. 귀항 후 해경에 들어가서야 자기가 해경을 도와 밀항시킨 사람이 희대의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이라는 사실을 안 박씨는 ‘부산 홍00범 집에 숨어있는 김근호를 체포하라’고 경찰에 귀띔했다. 그러나 당시 태안 해경으로 파견 나와 박씨를 상대로 밀항사건을 조사했던 서산경찰서 수사팀은 이를 묵살했다. 조희팔 일당 수배자 전단을 보여달라고 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박씨는 조희팔과 밀항선을 탄 적이 있고, 다음 밀항 순서로 대기중인 김근호를 거론했지만 서산 경찰은 조서에 이를 남기지 않았다. 이에 박씨는 조사대기실에서 “거물급 밀항 범죄자를 붙잡지 않고 애매한 제보자인 나를 잡아가두는 당신들이 경찰이냐”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서산경찰서는 지난해 11월4일 조희팔 수배 전단을 만들어 두고도 조희팔이 밀항한 다음날인 12월11일에야 태안해경에 보내 비호 의혹을 사고 있다. 이 무렵 조희팔 일당은 서산 태안 경찰을 상대로 5억원대 수사 무마 로비를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태안 해경에서는 제보자 박씨를 보호해줄테니 ‘밀항은 몰랐고 마약사건인줄 알았다고만 진술하라’고 종용했다. 변호사도 사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서산 경찰 파견 수사관과 태안 해경은 뒤로는 조희팔 밀항사건 책임을 박씨에게 뒤집어씌워 구속하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박창희씨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는 시한 만기가 되는 12월12일을 기해 서산지청 검사 앞에 가서 밀항의 진실을 털어놓았다. 309호 박아무개 검사실로 불려간 박씨는 이 자리에서 조희팔 일당 수배전단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에 가서야 조희팔 일당 수배자 명단을 확인한 박씨는 자기가 해경 제보자로 밀항 작전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본 수배자 3명을 찍어주었다. 박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김근호의 밀항 추진에 대해 자세히 털어놓았다. 그러나 검찰도 조서에 김근호의 이름을 넣지 않았다.

수사기관 로비총책 김근호를 조서에서 왜 뺐나

태안 해경의 사건을 지휘 관할하고, 서산 경찰서가 벌였던 조희팔 사기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던 서산지청조차도 조희팔 밀항사건 처리 과정에서 석연찮은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박창희씨를 조사한 서산지청 309호실 박아무개 검사(현재 법무부 근무)는 “조희팔을 잡지 못한 것을 깊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전제한 뒤 이렇게 말했다.  “박창희씨가 조희팔을 밀항시킨 다음에 김근호 얘기를 꺼냈기 때문에 조서에 쓸 내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박사장을 구속시킨 것은 처음에 조희팔 밀항을 마약으로 잘못 제보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제보자이긴 해도 박씨가 조희팔을 밀항시킨 일당을 검거하도록 해준 점은 인정해 범죄수익이 전액 회수되면 기소유예처분해주려고 했는데 자꾸 돈 납부를 미루는 바람에 당시 구속 기소 처리했다. 지금은 구속 중지시켜 풀어줬는데 앞으로 박씨에 대한 처벌 여부는 법원이 판단하도록 하는게 맞다고 본다”.

그러나 <시사IN>이 당사자 확인 취재를 벌인 결과 박검사의 주장에는 사실과 다른 점이 많았다. 우선 해경에 조희팔 일당의 밀항추진을 최초 제보하고 공조 작전을 벌인 박창희씨에 대해 박검사가 ‘처음부터 (마약 사범)으로 잘못 제보했다’고 단정하는 것부터 잘못됐다. 이와 관련 순길태 당시 태안 해양경찰서장은 <시사IN>에 찾아와 “박씨가 처음에 밀항을 제보했고 마약이 의심된다고 동시에 제보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태안 해경 책임자조차도 박씨를 처음부터 잘못된 마약 제보자라고 보지 않는데 검찰이 그렇게 단정하고 구속한 것이다.  또 서산경찰서에서 박씨에게 밀항 책임을 뒤집어씌워 처벌하는 쪽으로 검찰에 자료가 올라왔을 때 박검사가 태안 해경 감찰계장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박씨는 제보자이므로 검찰이 보호해주고 며칠 내로 풀어주겠다’는 취지의 약속을 했다는 점은 감찰계장도 시인하고 있다(감찰계장과 박창희씨 통화 녹취록 확보).  

박창희씨로부터 11월4일 왕회장(조희팔)의 밀항 제보를 받은 태안 해경은 곧바로 서산지청 박검사에게 정보보고를 하고 지휘를 받았다. 이에 대해 박검사는 “내가 해경 지휘검사인 것은 맞다. 처음에 태안 해경 수사과장이 내 방에 와서 마약사건이라고 하기에 나는 마약 담당 검사 방으로 이첩시키고 손을 뗐다. 그 뒤 조희팔이 밀항하자 내가 이 사건을 다시 맡았다”라고 주장했다. 

박검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애초에 태안 해경 수사과장이 박씨와 긴밀히 공조한 감찰계장과 순길태 해경 서장의 판단과는 달리 박검사에게 허위 정보보고를 한 셈이다. 문제의 태안 해경 수사과장은 조희팔을 밀항시킨 뒤 되돌아온 측근 4명을 구속했을 때 조희팔 일당의 다단계 조직으로부터 선처를 바라는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당시 로비스트는 해경 고위 간부 출신인 최0일씨. 해경 수사과장에 대한 조희팔 일당의 이같은 로비 의혹에 대해 태안 해경의 한 중간간부는 “해경 국장 출신 최0일씨로부터 태안 해경 수사과장에게 구속된 조희팔 측근들을 잘 봐주고 특별면회도 시켜달라는 부탁 전화가 온 적은 있지만 직접 접촉하거나 로비를 받은 사실은 없다”라는 취지로 적극 부인했다(이 간부와 박창희씨의 통화 녹취록 확보).

결국 모든 사태 전개와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태안 해경과 서산 경찰서, 대전지검 서산지청 모두 조희팔의 ‘이상한’ 밀항과 거액 로비 시도, 민간인 제보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지나친 인권유린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이번 사건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조희팔 일당 금융피라미드 사기 사건은 전국에 걸쳐 5만 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피해 액수도 사상 최대인 4조원대로 집계되는 대형 금융 사기사건이다. 가족을 포함해 수십만에 이르는 피해자들은 이 사건을 처음부터 중앙의 검경 지휘부가 나서서 책임 있게 처리해달라고 촉구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외면하고 지방 경찰과 지청에서 산발적으로 수사 하도록 방치한 가운데 조희팔 일당은 서산 태안 지역의 치안을 마음껏 유린하며 해외로 도피했다. 따라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 사건에 대해 원점에서 재조사를 실시하고, 거액을 편취해 달아난 주범 조희팔을 잡아들여 피해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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