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축구 전쟁이 한창이다. 유럽 각국 프로리그 상위팀만 출전하는 유럽 축구 챔피언스리그가 그 무대다. 유럽 최고가 세계 최고라는 명예에다, 1000억원 안팎 뭉칫돈까지 걸린 ‘드림 토너먼트’다. 박지성이 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히딩크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첼시(잉글랜드), ‘빗장 수비’ 대표주자인 인터밀란(이탈리아), 독일의 자존심 바이에른 뮌헨(독일),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9회)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등 유럽 정상권 16개 팀이 8강행 티켓을 놓고 승부를 겨룬다.

ⓒReuters=Newsis지난해 5월22일 러시아 루츠니키 경기장에서 열린 2008~200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첼시를 꺾고 우승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2005년 5월4일, 한국 시간으로는 5월5일 어린이날. 당시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소속이던 박지성은 한국 축구의 역사를 다시 썼다. 아인트호벤 홈에서 열린 AC밀란과 2004~2005시즌 유럽 축구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박지성은 3 대 1 승리의 디딤돌이 된 선취골을 터뜨렸다. 한국 최초 챔피언스리그 출전에 이은 한국인 1호 챔피언스리그 골이었다. 이 한 방으로 박지성은 맨유로 이적할 수 있었다. 박지성은 맨유에서도 매 시즌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고 있다. 최근 16강 1차전 인터밀란전에서도 선발 83분 동안 9.99㎞를 뛰며 맹활약했다. 산소탱크·강철체력·오토바이·홍길동·일벌 따위 별명을 그대로 입증한 플레이였다. 박지성은 지난 시즌 맨유가 첼시를 꺾고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를 때 양복을 입고 벤치를 지켰다. 그가 밝힌 대로 “지난 시즌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다. 박지성이 이번에는 한을 풀 수 있을까.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가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히딩크 감독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1월 첼시 감독으로 선임됐다. 러시아 대표팀과 겸임하는 ‘투잡스 감독’이다. 히딩크 감독은 아인트호벤 감독 시절에도 오스트레일리아 대표팀을 맡아 32년 만의 월드컵 본선행에 이어 독일 월드컵 16강행까지 이끌며 성공적으로 투잡스 생활을 해냈다. 이번에 3개월짜리 초단기 족집게 강사로 첼시를 맡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첼시는 현재 유벤투스(이탈리아)와 16강전을 치르고 있다.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1 대 0으로 승리해 3월12일 원정에서 비기기만 해도 8강에 오른다. 첼시는 현재 프리미어리그 우승은 어려운 상황이다. 대신 챔피언스리그를 거머쥔다면 히딩크는 또다시 영웅이 된다. 박지성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텔레비전 앞에서 새벽잠을 설칠 일이 하나 더 생긴 꼴이다.

역대 최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나라는 잉글랜드·이탈리아·스페인이다. 3개국은 똑같이 열한 차례 우승했다. 이번 시즌에도 잉글랜드 네 팀, 스페인 네 팀, 이탈리아 세 팀이 16강에 올랐다. 그중 첼시-유벤투스, 맨유-인터밀란, 아스널-AS로마전 등 영국·이탈리아 대결이 흥미롭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축구의 중심은 이탈리아였다. 하지만 최근 미국·아시아·중동의 억만장자가 엄청난 물량 공세로 프리미어리그 구단을 인수하면서 중심축도 잉글랜드로 옮아갔다.

ⓒReuters=Newsis지난해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든 박지성 선수.
라울의 ‘신기록 행진’ 어디까지 갈까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축구는 색깔이 상반돼 더욱 재미있다. 잉글랜드는 대승을 추구하는 반면 이탈리아는 이기기만 하면 만족한다. 그래서 잉글랜드는 3골을 넣어도 골을 더 넣기 위해 전진하지만 이탈리아는 1골만 넣으면 골문을 잠근다. 유럽 축구 전문 사이트 ‘골닷컴’은 최근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축구를 흥미롭게 비교했다. 골닷컴은 “잉글랜드 축구장은 술집 같으며 잉글랜드에서 수비는 죄악이다”라고 표현했다. 반면 “이탈리아 경기장은 교회 분위기가 나며 비신사적인 반칙을 해도 심판만 모르면 상관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잉글랜드 팬은 홈팀이 0 대 8로 지고 있어도 끝까지 응원하지만, 이탈리아 팬은 야유를 퍼부으며 경기장을 떠난다. 영국·이탈리아 대결은 이래저래 재미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현재 유럽 챔피언스리그 최다 우승팀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페인 대표팀 간판 공격수 라울 곤잘레스가 있다. 그는 살아 있는 챔피언스리그의 전설이다. 1995년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처음으로 밟아 모두 122경기를 뛰며 64골을 넣었다. 출전 경기 수와 득점 모두 챔피언스리그 최다이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 통산 아홉 차례 우승 중 세 차례 우승을 직접 이끌었다. 1977년생인 그는 현재 31세다.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스리그 단골 출전팀이라 라울은 뛸 때마다 신화를 계속 쓰게 된다. 레알 마드리드는 최근 홈에서 열린 16강전 1차전에서 리버풀에게 0 대 1로 패했다. 라울이 3월11일 리버풀에서 이어질 2차전에 보여줄 투혼이 기대되는 이유다. 팀이 탈락하면 라울은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세계 축구 양대 산맥은 유럽과 남미다. 그런데 현대 축구의 중심은 유럽이다. MBC 서형욱 축구해설위원은 “유럽은 조직력, 전술 구사 능력에서 남미를 넘어선 지 오래됐고, 개인기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에 올랐다”라고 평가했다. 축구판에서는 유럽 최고가 세계 최고인 셈.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 세계 최고 축구팀이 된다. 동시에 천문학적 수입도 생긴다.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기만 하면 300만 유로(약 58억원)를 받는다. 32강 조별 리그부터 전승으로 우승할 경우 상금과 보너스 총액은 무려 2150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414억원이다. 여기에 텔레비전 중계권료, 홈팀 입장 수익, 상품 판매 수익 등을 합하면 1000억원 안팎이 우승팀에게 돌아간다. 맨유 등 빅리그 상위권 구단은 1년 예산으로 2000억~2500억원을 쓴다. 1000억원이면 6개월 예산이 해결된다. 이런 뭉칫돈은 글로벌 기업에서 나온다. 포드·하이네켄·마스터 카드·소니·보다폰·아디다스 등이 현재 챔피언스리그 메인 스폰서다.

기자명 김세훈 (경향신문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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