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36일, 아무 일도 없었다”라며 이 기획을 끝내려 했다. 그런데 2월17일 원치 않는 얘깃거리가 생겼다. 그 전날, 기자는 이른바 교육 특구로 불리는 한 지역의 신경정신과에 전화를 걸었다. 그 지역 학생들이 어떤 스트레스를 겪는지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원장님이 너무 바빠서”(간호사의 말) 통화하기 어려웠다. 내 유선전화 번호를 남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네댓 번 더 전화를 돌리다가 다음 날 아침 9시에 원장과 통화하게 해준다기에 전화를 끊었다.

이튿날 아침 9시. 약속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원장이 아직 출근 전이란다. 곧 온다기에 또다시 전화번호를 남기고 꼭 통화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10분, 20분 아무리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다시 전화를 하니 이번에는 환자가 많아서 통화가 어렵단다. 살짝 뿔이 났지만,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고 넘겼다. 낮 12시께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한 뒤 전화를 끊었다.

ⓒ시사IN 한향란휴대전화를 36일 끊었지만, 계속 끊어야 할지 고민이다.
그런데 찜찜했다. 다시 기다려도 전화가 올 것 같지 않았다. 무조건 신경정신과로 발길을 옮겼다. 다행히 30분 거리. 간다고 미리 얘기하고 싶었지만, 휴대전화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해 통화가 안 될 것 같아 직접 왔다고 하자, 간호사가 잠시 기다리란다. 잠시 뒤 원장을 만나고 나온 간호사가 하는 말. “오늘은 원장님이 시간이 없고요. 이틀 뒤쯤….” 악, 소리가 저절로 났다. 와락 짜증도 났다. “너무하는 거 아녜요? 전화를 예닐곱 통 하고, 이렇게 직접 찾아와도 만나주지 않다니….”

결국 이메일로 문의하기로 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허탈했다. 바쁜 와중에 찾아왔는데 원장 얼굴도 못 보고 가다니…. 박대도 이런 박대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미리 약속을 하지 않은 내 잘못이라는 자성도 했다(간호사에게는 짜증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휴대전화가 있었더라면 고생을 사서 하진 않았을 텐데….

휴대전화 끊기가 남긴 것?

저녁에는 친구들과의 오랜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주말에 마감하는 나 때문에 한 달 전에 약속 날짜를 주초로 바꾸기까지 했는데…. 사연은 이렇다. 한 달 전쯤 친구들과 2월17일 저녁 7시에 종로 △△에서 보자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만 마감하느라 그 약속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밤 9시께 그 약속이 생각났다. 아, 그런데 친구들 전화번호가 잃어버린 휴대전화에 있는 게 아닌가. 간신히 전화번호를 알아내 통화를 하니, 날아오는 핀잔이 한 바가지였다. “7시부터 전화했다. 그런데 전화가 돼야 말이지. 빨랑 휴대전화 안 살릴래?!” 휴대전화만 있었으면, 9시에 나가더라도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은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휴대전화 끊기 36일. 위와 같은 예기치 않은 상황을 빼고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다. 우선 한 달치 통화 요금을 3만원 이상 아끼고, 귀찮은 스팸 문자 대신 ‘다정다감’한 쪽지나 메일을 여러 통 더 받았다. 평일 밤에 술 약속이 줄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고, 지하철에서 책장을 몇 장 더 넘길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다. 그러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이기적이라는 말도 듣고, 입산하라는 야유도 들었다.

결국 도시에서는 휴대전화 없이 사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까.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오기가 생긴다. 한국휴대폰재활용협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의 휴대전화 교체 주기는 평균 1.44년 (세계 평균 2.8년),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폐 휴대전화는 1500만 대가 넘는다. 그 자원 낭비(환경 파괴) 대열에 끼지 않으려 1.44년 이상 휴대전화 없이 지내고 싶다. 그런데 그 일이 가능할지…. 

※ 다음 주부터는 ‘술 끊기’를 연재합니다.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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