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로 생명의 문화를…”
  • 정희상 기자
  • 호수 76
  • 승인 2009.02.2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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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와 피해자 가족의 만남을 다룬 영화 <용서>.
선종하기 전 사형제 폐지와 관련한 어록을 많이 남긴 김수환 추기경은 2007년 말 자신의 뜻을 담은 글 한 편을 썼다. 가톨릭 신자를 상대로 가톨릭 신문에 릴레이 기고한 김 추기경의 호소문을 요약했다.

하느님이 창조한 인간은 피조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존재로서 그 생명은 존엄합니다. 창조주가 아닌 그 어느 누구도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박탈할 권리는 없습니다. 국가나 다른 어떤 ‘권위’가 사형제를 존속하는 현실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문화입니다.

사형제는 하루빨리 폐지돼야 마땅합니다. “사형제도가 범죄 예방에 큰 효과가 있다”라는 주장은 추상적인 가정일 뿐, 그 영향력은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사형이 아닌 다른 형벌이 공동선과 인간의 존엄성 수호에 더욱 부합합니다.

현재 전세계 138개국이 사형제를 폐지했습니다. 사형제가 있는 나라는 59개국이며, 이 중 우리나라를 포함한 24개국은 10년 넘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실질적인 사형폐지 국가’라고 합니다.

1980년대 이후 유엔과 국제사면위원회 등 여러 기구와 인권단체들은 사형폐지나 사형 집행 중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89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한 ‘사형폐지를 위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은 생명권 개념에 사형폐지를 당연히 포함했습니다.
전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미 1995년에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는 극단까지 가서는 결코 안 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인간이 인격과 존엄성을 구현하기에 가장 중요한 틀은 정의로운 사회질서입니다. 인간 생명과 인간성의 신비로움에 대한 경외심으로 국가와 사회, 종교단체가 함께 인간 중심의 질서를 마련할 때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 보장됩니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힘과 지혜를 모으는 이때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 공동체의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상과 이념을 떠나 생명의 문화를 정착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앞장서는 일은 우리의 으뜸가는 사명입니다. 정부가 우리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극 수용해 아시아에서 최초로 사형 제도가 없는 나라, 생명을 존중하는 나라로 거듭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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