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를 사랑한 추기경
  • 정희상 기자
  • 호수 76
  • 승인 2009.02.23 18: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형을 집행하지 마십시오. 사형제도를 폐지하십시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김영삼 대통령을 찾아가 이렇게 호소했다. 김 추기경은 사형 집행을 막고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

김수환 추기경이 교도소를 찾아가 사형수를 위한 미사를 집전한 뒤 한 사형수에게 꽃다발을 받는 모습.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누구보다 애통해하고 긴장되게 맞이하는 이들은 전국 교도소 내 58명의 최고수(사형수)일 것이다. 김 추기경의 영향력이 그동안 사형 집행을 막아온 측면을 그들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하는 추모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던 2월18일 밤, 명동성당에서 만난 ‘사형수의 대모’ 조성애 수녀(샬트르 성바오로 수도원)는 이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추기경이 선종한 뒤 남녀노소, 정파, 종교, 과거 친소 관계 등을 떠나 수십만 추모객이 명동성당을 찾아 ‘시대의 큰 별’이 진 데 슬픔을 감추지 않았다. 

언론은 이런 현상을 ‘김수환 신드롬’ ‘명동의 기적’이라 표현하며 그의 숭고한 가르침과 못다 이룬 큰 뜻을 조명했다. 그러나 김 추기경이 생애 마지막까지 혼신을 다 쏟았던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대다수 언론은 애써 외면했다. 그것은 바로 사형 집행 반대와 사형제도 폐지다. 김 추기경이 평생 낮은 데로 임한 곳은 박해받던 시절 민주화 운동 인사들과 달동네 등 소외된 이웃만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 안구까지 기증하며 생명 존중과 사랑을 실천했던 그의 생전 행선지 가운데는 사형수들이 수감된 교도소가 포함돼 있다.

YS, 추기경의 호소 무시하고 사형 집행

김 추기경이 사형제도에 대해 선지자적 물음을 던진 때는 16년 전인 1993년 평화방송이 마련한 새해 특별대담에서였다. 그는 당시 “사형은 용서가 없는 것이죠. 용서는 바로 사랑이기도 합니다. 여의도 질주범으로 인해 사랑하는 손자를 잃은 할머니가 그 범인을 용서한다는데 왜 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꼭 집행해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의도 차량 질주범은 1997년 사형이 집행됐다.

김 추기경은 이 무렵부터 역대 정권의 사형 집행 시기와 명분을 꿰뚫어보며 주변에 사형 집행의 문제점을 종종 지적했다고 한다. 천주교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소속 한 신부는 “김 추기경님은 정치 상황이 급변하거나 사회적으로 급한 불을 꺼야 할 일이 생길 때 위정자가 늘 사형을 집행하더라고 하시며 그런 관례를 크게 염려하셨다”라고 전한다. 
생전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서울구치소를 자주 방문했다.

오랜 세월 김 추기경과 함께 사형폐지운동을 펴온 이상혁 변호사(74·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장)는 1997년 김영삼 정부 말기 ‘마지막’ 대규모 사형 집행을 앞두고 추기경과 김영삼 대통령 사이에 얽힌 일화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당시 나는 김영삼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사형수 23명을 교수대에 보낼 생각이라는 소식을 김 추기경께 전했다. 추기경은 강원룡·한경직 목사에게 급히 연락해 세 분이 1997년 12월29일 청와대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세 분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형 집행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건의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이튿날 23명 모두 사형했다. 집행 소식을 들은 김 추기경은 식당으로 나를 불러 ‘그렇게까지 만류했는데 집행해버렸으니 이를 어쩐담. 그래도 사형폐지 운동은 계속해야 하니 이 변호사가 좀더 수고해줘’라며 허탈해하셨다.”

김영삼 대통령이 퇴임 전 대규모 사형을 집행하자 김 추기경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법무부와 청와대를 오가며 줄기차게 사형 집행과 사형제도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고 호소했다. 1999년 7월2일, 교정사목위원회 이영우 신부의 안내로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처음으로 사형수들을 집단 면담한 김 추기경은 이어 2001년 10월26일에도 서울구치소 사형수들을 찾아가 미사를 집전했다. 김 추기경은 이 자리에서 법무부 교정국 간부들을 상대로 이렇게 말했다.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민의 찬반 논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이때 생명 존중 사상을 무엇보다 우선시한다면 사형 제도를 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추기경의 사형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청와대와 교도소만을 상대로 그치지 않았다. 21세기는 ‘생명의 문화’가 세상을 주도해야 한다고 늘 설파한 그는 2000년에 불교·개신교계 원로 지도자들과 연대해 ‘사형폐지 촉구 3대 종단 공동 성명서’를 내 사회 여론을 환기하기도 했다. 이후 김 추기경은 사형 집행을 중지하게 하고 이를 통한 ‘사실상 사형 폐지국’을 이끌어내는 데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사형제를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팽팽하다가도 굵직한 흉악범 사건이 터지면 분노한 여론이 ‘모든 사형수들에 대한 즉각 사형 집행’ 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현실을 늘 안타까워했다. 이 과정에서 김 추기경은 천주교 서울 대교구 산하 사회교정사목위원회를 통해 사형수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 가족을 보듬는 데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사형은 용서가 없는 것이다. 용서는 바로 사랑이다”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늘 사형수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만났다.

1990년대 중반 서울 여의도광장 차량 질주 사건으로 최고수가 된 ○○○씨의 피해자 가족 중에는 어린 손자를 잃은 서윤범 할머니가 있었다. 천주교의 주선으로 할머니는 가해자인 사형수를 만난 뒤 그가 가난하고 냉대받는 사회 환경에서 자라나 결국 세상에 대한 분노를 그런 끔찍한 방법으로 표출했다는 것을 알고 사형수를 양아들로 삼았다. 김추기경은 서 할머니의 사례를 ‘진정한 용서’로 보고 사형 집행 중지를 요청했지만 당시 정부는 묵살했다.  범인이 사형집행 당한 뒤에도 피해자인 서 할머니는 매년 사형수의 기일이면 연미사를 올리는 방법으로 '거룩한 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2006년 연쇄 살인범 유영철로 인해 일가족을 잃은 피해자 고 아무개씨도 비슷한 경우였다. 유영철은 고씨의 노모와 아내, 4대 독자까지 살해했다. 고씨는 이 사건으로 겪은 고통의 후유증을 “창살만 없지 나도 유영철과 다름없이 감옥에서 사는 세월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먼저 ‘용서와 화해’를 실천으로 옮겼다. 유영철을 용서하는 탄원서를 법무부에 낸 것. 당초 죄를 뉘우치지 않던 유영철은 결국 피해자 가족인 고씨의 손길 앞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만다. “명절 때나 무슨 때만 되면 저로 인해 희생된 가족의 빈자리가 가슴 시리게 힘드셨을 텐데 그런데도 저의 외로움을 염려해주시고 영치금까지 배려해주신 어르신의 거룩함에 이 못난 인간 그저 면목 없어 고개 숙여 눈물만 흘립니다. 진정 굴뚝같은 심정으로 사죄의 마음을 가슴속 깊이 전합니다.”
서울구치소에서 미사를 올리는 생전의 추기경.

‘사실상 사형 폐지국’ 이뤄내다


사형 폐지를 주창하면서도 이처럼 사형수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던 김 추기경은 2006년부터 교구 내에 ‘피해자 모임’을 만들도록 했다. 사형수에게 가족을 잃고 숨죽여 살아가는 피해자는 지금도 매월 한자리에 모여 전문 심리치료 상담과 후원을 받는다. 7년 전 흉악 범죄자에게 자식을 잃은 한 어머니는 “사건이 난 뒤 어디 가서 터놓고 우리의 아픔을 이야기할 곳조차 없이 숨어 지내다시피 해왔는데, 피해자 모임에 나가 추기경님을 만나뵈면서 처음으로 마음껏 울어보았다”라고 말했다. 사형수 피해자 모임을 접견한 김수환 추기경은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여러분께 감사하다”라는 말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끔찍한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에게 정부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이렇다 할 치유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 추기경이 지원한 이 모임은 ‘죽은 이와 제대로 이별하는 연습’을 해주는 치료 프로그램인 셈이다. 김 추기경의 뜻에 따라 천주교에서 운영해온 사형수 피해자 모임의 사연은 지난해 말 다큐멘터리 <용서>로 개봉돼 잔잔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김 추기경이 중심이 된 한국의 사형폐지운동은 결국 2007년 말 ‘사실상 사형 폐지국’을 이끌어내기에 이른다. 이 시기를 전후해 김 추기경은 입법 기관인 국회를 상대로 사형제를 대신할 다른 합당한 형벌을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건넸다. 2007년 혜화동 가톨릭 대학 주교관에서 김형오 의원(현 국회의장), 유인태·노회찬 의원을 만난 추기경은 “사형을 유지하자는 분들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벌한다’는 법안을 만들자는 데는 반대할 것이다. 사형제는 그런 법과 다름없다. 이제 결단은 정치권에 달려 있다. 사형폐지운동에 힘써온 여러분이 사형폐지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그 결과 16·17대 국회에서 ‘사형폐지 법안’이 발의됐지만 ‘사형제 존치 여론’을 이유로 한 한나라당 내 다수의 반대 의견에 막혀 아직까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18대 국회 들어서는 지난해 9월12일 39명의 여야 의원입법으로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이 상정, 계류 중이다.

그러나 집권 여당은 여전히 당론으로 사형제 폐지에 반대한다. 여당 내 사형 존치론을 주도하는 이들은 주로 검찰 출신인 박희태 대표, 홍준표 원내대표, 장윤석 제1정조위원장, 박민식 의원, 박준선 의원 등이다. 그중 가장 공세적으로 사형 존치 논리를 펴는 박준선 의원(경기 용인 기흥)은 최근 한국이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 것을 두고 ‘한 인권단체(국제엠네스티)의 임의적 분류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그러나 이는 국내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중심으로 생명 문화를 주도해온 한국 인권운동의 ‘큰 흐름’은 물론이고 매년 사형제를 폐지하도록 국제 결의를 하는 유엔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한국은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이자 동양인 최초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답게 사형 제도를 둘러싸고 지난 10여 년간 국제사회에서 ‘생명 문화’를 주도했다.

교수형이 집행된 사람들이 잠든 천주교공동묘지를 둘러보는 ‘사형수의 대모’ 조성애 수녀.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의 상황은 거꾸로 갈 조짐이 일고 있다. 최근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으로 분노한 민심에 기대 정부·여당이 사형수 58명에 대한 사형 재집행을 적극 검토하고, 사형제 존치를 굳히려는 분위기가 그렇다. 한나라당은 2월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윤석 제1정조위원장, 박민식 의원, 이귀남 법무부 차관, 정창섭 행정안전부 제1차관, 이길범 경찰청 차장 등이 실무 당정회의를 열고 당에서 사형 집행 문제를 포함해 흉악범 처벌 강화 방안을 논의한 뒤 정부에 “사형 집행을 바라는 국민 여론이 높다”라는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사형 집행 문제에 대해 ‘당에서 논의해 결정할 일’이라고 말한 직후 나온 움직임이다.

이런 사태 전개를 두고 사형폐지운동을 펴온 이들은 일찍이 김 추기경이 갈파한 ‘위정자와 사형 집행의 상관관계’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염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의구심은 용산 참사를 둘러싸고 정부의 무리한 공권력 행사가 참사를 불렀다는 비난이 크게 불거질 무렵 청와대 행정관이 경찰청에 ‘촛불을 끄기 위해 강호순 사건을 크게 부각시키고 홍보하라’는 취지의 이메일 지시 문건을 보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렇게 해서 강호순 사건에 대한 언론의 과열보도가 뒤따랐고, 흉악범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증폭됐으며 사형수에 대한 분노의 여론은 더욱 고조된 것도 사실이다. 이후 당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형 재집행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법무부 장관의 ‘이성’을 믿는다?

이토록 감정이 지배하는 한국 정치에 이성의 잣대를 들이댄 이는 야당, 그중에서도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움직임이 돋보인다. 이 총재는 정부·여당의 사형 재집행 추진 움직임이 가시화하자 “흉악범에 대한 엄벌은 마땅하지만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갑자기 기존 사형수 58명에 대해 사형을 조기 집행하자는 것은 양은냄비에 물 끓이는 듯한 감이 있다. 국가 형벌권이 일시적인 사건이나 감정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김수환 추기경의 필생의 유지였던 사형폐지운동을 주도해온 종교계와 인권단체는 내심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끝까지 사형 집행만은 막아주리라 기대한다. 법률적으로는 사형 집행이 법무부 장관 재량에 속한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이들은 과거 서슬 퍼런 유신 독재 치하에서도 형법학자이자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황산덕 법무부 장관이 박정희 대통령의 강한 요구를 거부하고 사형 집행만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기피했던 점을 예로 든다. 과거 유영철 사건이나 군포 어린이 납치 살해 사건 때도 그랬듯이 흉악 범죄에 분개해 사형수를 모조리 처형하자는 감정적 여론은 시간이 지나면 곧 이성으로 되돌아온다는 경험을 김경한 장관도 잘 알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