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기업’이 경제 위기 극복의 희망이라고?
  • 고동우 기자
  • 호수 76
  • 승인 2009.02.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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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경영’을 강조하면서 자연환경 파괴에 앞장서고, 사회적 약자 보호를 말하면서 최저임금 인하를 촉구하는 기업을 어떻게 봐야 할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둘러싼 논란을 살펴봤다.
   
ⓒ뉴시스
롯데는 ‘친환경’을 강조하지만 골프장 건설(위) 등으로 인해 ‘환경 파괴 기업’이라는 오명도 가지고 있다.
위기의 시대,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까운 예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월15일 “정부가 여러 대책을 세우지만 대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다 해줬으면 좋겠다”라며 일자리 확충 노력을 요청한 바 있다. 2월17일에는 중소기업중앙회 등 13개 중소기업 단체가 ‘사회적 책임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중소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라며 일자리 나누기, 윤리경영 정착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대기업부터 중소기업, 그리고 정치권과 시민단체·노동조합까지 말하지 않는 곳이 없는 사회적 책임은 이제 기업 경영의 ‘기본’으로 정착된 듯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최근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응답 기업의 90% 가까이가 경기 한파 속에서도 ‘사회 공헌’ 활동 규모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45.1%)하거나 더 확대(42.2%)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국민 다수는 기업의 이러한 활동을 ‘이미지 높이기용’으로 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긴 했지만 그 자체를 비딱하게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진정성을 떠나, 어쨌든 중요한 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사회문제 해결의 ‘핵심 대안’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적지 않다. 우선 해당 기업의 ‘실체’가 왜곡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 비판 여론이 빗발칠 때, ‘면죄부’를 받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사회적 책임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비판한다.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함께 살자’는 외침도 잠시, 다른 한편에선 사회적 책임과 별 상관없어 보이는 노력 또한 줄기차게 진행된다. 재계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기간 연장, 최저임금 인하, 해고 요건 완화 시도가 대표적이다.

제2 롯데월드, 인천 계양산 골프장 건설 추진으로 ‘환경파괴 기업’이라는 비난을 듣는 롯데는 그 어느 기업보다 ‘친환경’을 강조한다. 에너지 절감에 힘쓰고 어린이 환경학교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소개한 롯데백화점의 2007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환경단체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경우를 보자. 다음 측은 지난해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아고라를 ‘토론의 메카’로 표현하면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길 기대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디지털 민주주의 성지’라고 추앙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음은 그저 인터넷 기업일 뿐이었다. 몇 달 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신상 자료를 검찰에 ‘아무 저항 없이’ 넘김으로써 표현의 자유와는 무관한 조직임을 스스로 고백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 강조는 정부 규제 회피용?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풍조가 낳을 수 있는 더 큰 문제는 ‘더 근본적인 대책’을 무력화한다는 점이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바 있는 로버트 라이시(UC버클리 교수)는 저

   
ⓒ뉴시스
태안 주민 등 시민들이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 <슈퍼자본주의>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기업들의 약속은 더 엄격한 법률이나 규제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떼어놓을 수 있고, 혹은 처음부터 문제 같은 건 별로 없었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

쉽게 말해 기업들이 자율성이 제약되는 정부 규제 등을 회피하기 위해 사회적 책임을 ‘앞장서’ 강조하는 경향도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2005년 한 해외 언론이 실시한 조사에서 기업들의 절반 가까이(45%)가 사회적 책임의 중요한 기대 효과로 ‘정부 규제 감소’를 꼽은 것은 이같은 지적이 단지 ‘의심’이 아님을 입증한다.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지난 1월 전경련은 ‘상생’을 말하며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현금 결제 비중을 높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단체는 중소기업들과 금속노조가 제시하는 근본 대안인 ‘납품단가 연동제’에는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라며 격렬히 반대한다. 모든 규제가 선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기업의 자율적 약속에만 맡겨둘 경우 생길 폐해는 자명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소속 기업의 지난해 4분기 판매대금 중 어음 결제 비중을 조사한 결과, 2002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이자 같은 해 1분기보다 9% 포인트 이상 높은 45.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 전에는 환경부가 주유소나 산업시설 등에 대한 토양오염도의 검사 주기를 완화할 것이라고 밝혀 환경단체의 반발을 샀다. 에너지 기업들의 규제 완화 요구를 수용한 것인데, 이들 기업 또한 다양한 환경오염 방지 활동을 ‘스스로’ 하고 있다고 내세운다. 하지만 “대중에 대한 기업의 책임성은 기업 내부 이사회보다 법과 규제 등 민주적인 과정 속에서 더 잘 다루어질 수 있다”라는 라이시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위험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한 경제단체의 핵심 관계자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이렇게 속내를 밝힌다.

“사회적 책임을 규제화로 유도하거나 기업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쪽으로만 해석하려는 일각의 시각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사회적 책임 활동의 출발점은 이윤 추구라는 기업 고유의 목적 달성에 기반해야 한다. 규제를 통해 강제해서도 안 된다. 기업은 정부의 대안이 될 수 없으므로 정부가 할 일을 대신하려 해서도 안 되고, 그러한 구실을 기업에 강요해도 안된다.”

관련 시민단체 쪽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진하는 운동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라는 견해이다. 최정철 기업책임시민센터 이사는 “강력한 규제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의 행동 지향점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잡아주는 구실을 외부에서 해야 한다. 이를테면 현재 같은 경제 위기 속에서는 규제로만 고용을 지킬 수 없다. 사회적으로 지속적 고용이 가능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이 ‘사회적 책임’의 역할이다”라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을 무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몇몇 사례만으로 그 기업을 ‘착한 기업’이라 운운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01년 회계 부정 사건으로 미국 경제와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엔론은 사회 공헌을 강조하는 미국의 대표 기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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