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위폐 사고 경찰이 범인이니…”
  • 박근영 기자
  • 호수 76
  • 승인 2009.02.2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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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됐던 제과점 여주인은 무사히 돌아왔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위폐를 사용해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국은행 발권국장을 지낸 ‘위폐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시사IN 안희태
김두경 전국은행연합회 상무이사는 34년간 한국은행에서 근무한 화폐 전문가다. 위조지폐 범죄를 막기 위해 새 은행권을 만들 때 기획을 총괄한 그는 가짜 지폐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납치범이 요구하는 7000만원을 가짜 지폐로 준비한다. 지폐를 위치 추적 장치가 달린 가방에 담아 납치범에게 건넨다. 납치된 제과점 여주인을 구출한다. 납치범을 잡는다. 가짜 지폐를 회수한다. 경찰의 작전은 간단했다. 그러나 1만원권 가짜 지폐 7000장을 건네받은 납치범은 그대로 달아났다. 범인은 위치 추적 장치가 달린 가방을 도로에 버렸다. 아직도 잡히지 않은 납치범 한 명은 중고 오토바이를 사서 되파는 방식으로 ‘돈세탁’에 성공했다. 결국 경찰은 ‘모조지폐’(경찰은 자기들이 사용한 것은 실제 시중에 유통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며 ‘위조지폐’ 대신 ‘모조지폐’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7000장을 시중에 유통시키는 사고를 저질렀다.
경찰이 가짜 지폐를 만들었다고 밝힌 2005년 한국은행 발권국장으로 위폐 관련 업무를 총괄했던 김두경씨(60)를 만났다. 1974∼2007년 한국은행에 근무했던 그는 2005년 변경된 새 화폐를 제작하는 일을 기획한 화폐 전문가다. 김 전 국장은 현재 전국은행연합회 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경찰은 2005년 한국은행의 조언을 받아 ‘모조지폐’를 제작했다고 한다. 당시 한은 발권국장이었는데 이런 사실이 있는가?
내 기억에는 없다. 2005년 새 화폐를 만들면서 도안을 활용할 때 적용할 기준을 만들었다. 영화  촬영처럼 모조지폐가 필요한 경우 제작 전에 한국은행에 신고해야 한다. 사용 후에는 한국은행 감독 아래 폐기한다. 그러나 경찰이 모조지폐를 만들겠다고 한국은행에 알려온 적은 없다.

경찰이 실제로 협조 요청을 했다면 받아들여졌을까?

수사용으로 사용했다가 시중에 나가면 파장이 크다. 가짜 지폐가 시중에서 사용되면 전반적으로 돈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바뀐다. 돈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한국은행과 조폐공사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돈이라는 게 만들 때 원가가 100원도 안 되는 종이쪽지이지만 이를 한국은행에서 보증하니 믿고 유통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염려되므로 심각하게 검토했을 것이다.

미국 FBI는 수사용 가짜 지폐를 갖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수사용 가짜 지폐를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없었는가?
없었다. 미국하고 우리는 상황이 좀 다르다. 미국에 비하면 마약범죄처럼 수사에 돈이 들어가는 범죄가 많지 않다. 또 미국에서 수사에 사용하는 가짜 지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인쇄된 잉크가 손상되게 만들어져 있다.

경찰이 제작한 것은 가로·세로 크기가 1mm씩 더 크다고 한다.
지폐는 100% 코튼(면)이다. 습기가 차면 늘어날 수 있다. 1mm 크냐, 그렇지 않으냐는 별 상관없다. 우리 속옷 같은 것이 젖었을 때 당기면 늘어나듯 지폐도 물에 넣었다 당기면 쉽게 늘어난다. 5mm 이상 차이난다면 모르겠지만 모조 지폐를 1mm 크게 제작했다면 실제 화폐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2005년 새 은행권이 나온 것도 위조지폐(위폐) 범죄와 관련 있나?
당시 새 은행권 기획을 내가 맡았다. 위폐가 급격히 늘고 있었기 때문에 새 돈을 찍어야 했다. 옛날 돈은 위폐 제작을 방지할 장치가 없었다. 더구나 스캐너같이 인쇄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해 위폐가 갑자기 많아졌다.

한국은행에서 위폐를 검증하는 과정은?

‘자동정사기’로 한다. 뱅크노트프로세서라 불리는 BPS1000이라는 기계다. 지폐가 기계 위를 지나가면 위폐인지 아닌지 걸러낸다. 위폐로 추정되는 경우 튀어나온다. 위폐를 전문적으로 식별하는 한국은행 직원이 그것을 확인한다. 도사 같은 직원들이다. 내가 발권국장으로 있을 때 100장짜리 뭉치에 가짜 돈을 넣어놓고 꺼내봐라 하면 딱 집어내곤 했다.

한국은행으로 들어온 지폐는 원칙적으로 한 번씩 위폐 검사를 받고 시중으로 나가나?

100%는 못한다. 워낙 양이 많다. 이제 5만원권이 나오고 만원권 양이 줄어들면 점검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연합뉴스
경찰이 수사용으로 제작·보관한 가짜 지폐는 실제 지폐보다 색이 짙고 가로·세로 크기가 1㎜씩 더 크다.
위폐가 발견되면 한국은행은 어떻게 처리하나?
한국은행에 들어오는 돈은 어느 은행에서 왔는지 출처가 분명하다. 위폐가 발견되면 해당 은행에서 위폐에 해당하는 금액을 실제 화폐로 다시 받는다. 발견된 위폐는 전량 경찰이 수거한다.

위폐는 발견 당시 소지한 사람이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원칙인가?

그렇다. 만약 위폐범을 잡으면 위폐범한테 받을 수 있다.

납치범에게 오토바이를 판 사람은 위폐라는 사실을 모르고 700만원을 받았다. 위폐를 만든 사람은 경찰인데….

경찰이 만들었으니까 소송을 걸어 국가한테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은행에서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결론은 모르겠다.

이번 제과점 여주인 납치 사건에서 경찰이 수사에 위폐를 사용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위폐가 아니고 모조화폐를 만들었을 때는 치밀한 계획 아래 유출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장치나 추적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모조지폐를 만들 때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전자파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 정보를 인식하는 기술) 같은 조그만 추적 장치를 돈에 붙이는 것이 가능하다. 범인이 가져갔을 추적 장치를 가동하면 되니 수사 목적에도 들어맞는다. 물론 만들 때 돈은 좀더 들 것이다. 이번에 보니까 경찰이 그런 걸 하지 않았다. 그런 것도 하지 않고 수사에 사용하면 유출 시 상당한 파문이 우려된다. 이번 사건은 규모가 작지만 벌써 문제가 생겼다.

경찰이 납치범에게 준 것은 위폐인가, 모조지폐인가?
위폐는 받는 사람을 속여서 쓰기 위한 것이다. 진짜처럼 위조해서 사용할 목적으로 쓰는 것이 위폐다. 모조지폐는 실제 지폐와 구별할 수 있게 제작한다. 또한 ‘모조지폐’라는 것을 쓰도록 되어 있다. 영화를 찍을 때 뿌릴 용도로 모조지폐를 만든다면 한쪽 면만 인쇄하기도 한다. 촬영이 끝난 후 한은에서 인정하는 사람의 입회 아래 이를 잘라 폐기한 후 그 기록을 보내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사용한 것은 위폐인가?

지금 내가 명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돈으로 사용하려고 만든 게 아니니 위폐가 아닐 수 있다.

이번 사건으로 경찰은 가짜 지폐 7000만원을 유통시킨 셈이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위폐 사건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 규모인가?
바다이야기(사행성 오락)에 500만원 상당의 위폐를 사용한 범죄가 3건 정도 적발됐다. 그것이 국내 위폐 범죄 중 가장 큰 규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번이 아마 (가짜 지폐 사건 중) 제일 규모가 큰 것이 아닌가 싶다. 7000만원이면 7000장인데, 그렇게 많은 위폐를 만들어 쓴 경우는 거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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