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경영’은 현대자동차 고유의 DNA
  • 이종태 기자
  • 호수 75
  • 승인 2009.02.1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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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식 경영의 ‘공격성’은 이 기업을 세계 시장의 최강자로 등극시킬 수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현대차 ‘공격 경영’의 이면을 살펴본다.
   
ⓒ뉴시스
‘현대차식 경영’에 대한 평가는 매우 다양하다. 위는 공장을 시찰 중인 정몽구 회장(맨 오른쪽).
한 자동차 업체의 회장실. 젊은 회사원이 책상 너머의 중후한 동양인 CEO에게 쭈뼛거리며 다가가 신문을 내민다. 신문 1면에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2009 ‘북미 최고의 차’ 선정”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격노한 CEO는 다음과 같이 으르릉거리는데 이는 마치 신음처럼 들린다. “현대… 현대….”

뒤에 보이는 렉서스 로고는 이 남자가 도요타자동차의 CEO라는 것을 암시한다. 같은 시각,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의 회장실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진다.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니다. 2월1일 미국 슈퍼볼 텔레비전 중계에서 선보인, 현대자동차 북미 지역 광고 ‘광분한 회장님들(Angry Bosses)’의 일부 장면이다.

이 광고의 내용은 당연히 현대자동차 측의 ‘방자한’ 상상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 자동차 산업의 10위권에서 5위권 내로 떠오르겠다는 현대차의 염치없는(?) ‘신분 상승’ 욕구, 이에 따른 에너지와 열정, 뻔뻔한 공격성과 대담성이 이만큼 생생하게 드러난 사례도 드물 것이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리세션이 진행 중이던 지난 1월, 미국의 현대차 판매 실적이 오히려 14.3% 증가한 사건의 배후에는 현대차라는 특유의 조직 성향이 존재했음이 분명하다. 현대차가 지난 1월 미국에서 거둔 판매 실적은 놀랍다. 현대차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2월의 2.9%에서 3.7%로 급증했는데, 계열사인 기아자동차도 3.4%로 상승했다. 합치면 7.1%.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사상 처음으로 ‘마의 7%’대를 돌파한 것이다.

다른 유럽·일본 업체와 미국 빅3의 실적은 오히려 20~50% 하락했다. 1967년 창립 이후, 포드와 GM의 동아시아 조립공장이 되기를 거부하며 독자 경영을 고수해온 현대자동차가, 최악의 불황기를 맞이한 미국에서 공격적 경영으로 유서 깊은 톱 메이커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 경영의 ‘뻔뻔한’ 공격성

사회의 부(富)가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리세션’ 시기, ‘판매실적 올리기’는 기업에 절체절명의 과제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의 판매 실적이 호조를 나타내는 것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주·객관적 요인이 지적된다.

우선 원화는 지난해를 거치며 달러화 대비 30% 정도나 떨어졌다. 같은 시기, 엔화는 달러화에 비해 20% 상승했다. 달러당 900원대에서 마케팅 전략을 구상했던 현대차의 처지에서는 미국·일본차에 비해 엄청난 경쟁력 우위를 가지게 된 셈이다. 그러나 원화 약세만이 현대차가 현재 잘나가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차가 장·단기적으로 준비해온 주관적 역량이 원화 약세라는 환경을 만나 판매 실적 향상으로 나타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가장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요인은, ‘현대 어슈어런스(Hyundai Assurance)’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38쪽 딸린 기사 참조). 고객 처지에서는 유사시 ‘자동차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는 의무에서 면제되는 매우 파격적 조건이다. 현대차가 이런 마케팅 조건을 제시한 데는 올해 말까지는 경기가 호전되어 실업률이 하락하리라는 나름의 낙관적 판단이 깔려 있는 듯하다.

또한 미국의 자동차 전문 사이트 edmunds. com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한 해 동안 딜러 인센티브를 3배로 올려 1월 현재 1대당 2611달러에 이른다. 자동차 판매 일선에서 전투하는 판매원에게 제공하는 파격 유인책인 셈이다.

   
ⓒReuters=Newsis
지난 1월 현대기아차 그룹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마의 7%’대를 돌파했다. 위는 선적을 기다리는 현대차.
현대차는 금융 위기 이후 광고 부문 예산도 오히려 대폭 올렸다. 대표 사례가 2월1일 개최된 슈퍼볼 텔레비전 중계에 내보낸 제네시스 쿠페 광고이다. 2억1000만명이 시청한다는 슈퍼볼 중계는 미국 광고시장의 황제로, 광고비는 물론이고 그 효과도 세계 최대로 알려졌다. 이런 광고비를 감당하지 못해 미국의 빅3가 후퇴한 바로 그 공간으로 현대차가 치고 들어간 것이다.

이런 공격 마케팅 역시 품질이 받쳐줘야 판매실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현대차의 품질과 생산량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적어도 세계 10위권 이내로 한 단계 발전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대차는 빅3의 동아시아 조립공장이나 저가 차량 전문 메이커로 전락할 수도 있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창립 초기에는 포드의 조립공장 지위를 박차고 나오면서 포니를 개발했고, 1980년대 초반에는 GM과의 합작을 요구하는 전두환 정부에 대들면서 포니 엑셀의 대량 생산-대량 판매-대량 수출 체제를 완성했다. 이른바 ‘엑셀 신화’다. 현대차는 한동안 엑셀 같은 저가격 차량으로 국제 시장에서 승부했으나 이는 1990년대 말에 판매량이 절대적으로 감소하면서 종언을 고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현대차는 다시 진화했다. ‘품생품사’(품질에 살고 품질에 죽는다)라는 슬로건 아래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한 끝에 2004년, 2006년에는 초기품질평가 기준으로 세계 최고인 도요타를 추월하기에 이른 것이다. 현대 제네시스가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되기까지는 이런 역정이 있었다.

창립부터 빅3의 조립공장 지위 거부

현대차의 이같은 공격성과 대담성은 2008년 이후의 신차 출시 계획에도 명백히 드러난다. 미국의 저명한 자동차 관련 매체인 <오토모티브 뉴스>(Automotive News)는 지난해 9월 1일자에서 이렇게 보도한다.

“현대자동차는 이후 4년 동안 신제품으로 미국 시장을 집중 포격할 계획이다. 그러나 인도의 마힌드라 앤드 마힌드라(Mahindra & Mahindra)는 이제야 조심스럽게 미국에 진출할 조짐을 보인다. 한편 중국의 경우, 소문은 무성하지만 단 하나의 차종만을 2011년에 내놓을 예정이다. … 현대차와 기아차는 2011년 말까지 대다수 차종을 재설계해서 출시하고 생산 라인도 증설할 계획이다.”

그런데 현대차의 이런 공격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비즈니스 위크>(2008년 5월17일자)는 현대차 특유의 기업문화에서 공격성의 기원을 찾아내고 있다.

“대담성은 현대자동차의 DNA이다. 한국의 다른 창업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주영의 전략은 심플했다. ‘먼저 공장을 짓고, 판매는 나중에 걱정하자.’ 정주영의 상속자들이 현대자동차를 계속 운영해왔는데, 그의 경영철학은 이 회사에서 아직 지배적이다.”

물론 <비즈니스 위크>는 이런 ‘대담성’의 그늘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예컨대 현대자동차 미국법인의 세일즈 전략은 ‘생산 맞춤형’(production oriented)이어서, 다른 사정 안 따지고 공장이 생산하는 물량을 그대로 판매 목표로 삼기 일쑤라고 한다. 그래서 현지 공장 주변이 쏘나타 재고로 뒤덮이거나, 렌터카 업체에 현대 차량이 대량 인수되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한국 본

   
ⓒ현대차 제공/font>
‘현대 어슈어런스’의 광고 사진.
사와 미국법인 경영자 간에 심각한 갈등이 상존하고, 한국인들은 미국인 경영자를 마음 내키는 대로 자른다고 <비즈니스 위크>는 불평한다. 실제로 현대차 미국법인에서는 경영진이 2003년~2008년 상반기 겨우 5년여 동안 4번이나 교체되었다. 더욱이 정몽구 회장은 품질 개선까지 엔지니어들에게 상의하달식으로 명령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현대자동차는) 왕이 통치하고 나머지는 아부나 한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이 있는데도 <비즈니스 위크>는 현대식 경영의 성과만큼은 그대로 인정한다. 2000~2007년, 판매 실적을 두 배로 올렸고, 현대 본사로부터 해고당한 미국인 경영자 중 일부는 “공격적 성향이 꼭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대차를 옹호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혁신’인지 ‘독단’인지는 ‘결과’로 증명

불황기의 기업은 좋은 인력구조를 갖추고, 더 투자하며, 더욱 대담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많은 전문가가 주장한다. 새로운 제품, 새로운 판로, 새로운 마케팅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개별 기업이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처럼 공격적이고 대담한 경영은 그에 걸맞은 조직 문화와 형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재벌이라는 ‘후진적 기업소유지배구조’를 가진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이 지금 미국 시장에서 거두고 있는 실적은 매우 놀라운 사례이다.

그러나 지켜볼 일이다. 어떤 기업의 ‘공격적인 경영’이 ‘혁신’이었는지 ‘독단’이었는지는 오직 ‘결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주영 회장의 조선·자동차 산업 개척,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개발은 오늘날 ‘혁신’으로 평가되지만, 이건희 회장의 자동차 산업 진출은 ‘재벌 특유의 왜곡된 의사결정 구조’에 따른 ‘독단’으로 단죄되고 있다. 미국에서 현대차의 공격 경영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같은 궤도를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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