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후계자’의 숨은 스승이 군부 실세 되었나
  • 고우림 (북한 문제 전문가)
  • 호수 75
  • 승인 2009.02.17 1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군 총참모장에 임명된 리영호 상장은 초고속 승진을 했다. 서열을 파괴하는 모종의 권력 관계에 의해 중용된 그는 김정일 후계자에게 ‘북한군대’를 가르친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연합뉴스
2007년 북한군 창건 75돌 기념 4·25 열병식을 총지휘할 당시의 리영호 신임 총참모장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과 한반도 서해상에서의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2월11일 북한군 인민무력부장에 김영춘(73·차수) 국방위 부위원장이, 총참모장에는 리영호 평양방어사령관이 전격 임명되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와 같은 북한군 최고 수뇌부 교체 인사는 북한의 후계체제와 최근 고조되어가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상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파악된다.

김영춘 신임 인민무력부장은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져 있지만, 신임 리영호 총참모장은 평양방어사령관으로서 60대 안팎이라는 점 외에 별로 알려진 사항이 없다. 따라서 북한군 수뇌부 인사의 핵심은 리영호 상장의 총참모장 임명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임 리영호 상장의 신상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첫째, 그는 평양방어사령관 경력을 가졌지만 북한군 군사지휘관 출신이라기보다는 ‘정치위원’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평양방어사령부는 당 중앙위 직속으로 북한군 정규 군사지휘 체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따라서 평양방어사령부의 고유 업무 중 하나는 북한 정규인민군의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정치적 도전’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평양방어사령관에는 순수 군사지휘

   
ⓒ뉴시스
김영춘 신임 인민무력부장.
관 출신보다는 김일성·김정일 정권과 운명을 함께할 수 있는 정치 감각이 있는 인물을 주로 임명해왔다. 전임 박기서 평양방어사령관은 고 김일성 주석의 고종 사촌이었으며, 주도일 전 사령관은 김일성 주석의 옛 전령 출신으로 김 주석이 직접 이름까지 지어준 인물이다. 그리고 북한군 원수이자 호위총국장인 이을설 전 사령관 역시 광복 전후 김일성 사저에서 어린 김정일을 돌보던 인물이다.

북한군 세대교체 전제한 ‘파격 승진’

이와 더불어 리영호 총참모장은 2003년 9월 제666호 선거구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으로 선출된 바 있다. 제666호 선거구로 말하면 김정일 위원장이 1998년 제10기 대의원으로 선출된 곳으로 ‘김일성정치대학’을 의미한다. 북한군 총정치국 소속인 김일성정치대학은 ‘정치위원’을 배출해내는 교육기관이다. 총참모부 소속의 군사지휘관을 배출하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과는 구별된다. 따라서 리영호 중장이 제666호 선거구에서 선출되었다는 것은, 그가 야전군 출신이 아닌 김일성정치대학 간부로서 ‘정치군관’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제658호 선거구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그 대학 군사전략연구소 부소장인 주순철 소장이 대의원으로 선출된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특징은 그의 전례없는 초고속 승진에 있다. 리영호 총참모장은 2002년 4월 북한군 중장으로 진급하고 2007년 북한군 창건 75돌 열병식(4·25)에서 ‘상장’ 계급을 단 평양방어사령관으로 확인되었으며, 2009년 2월 대장급인 총참모장으로 승진했다.

북한군 장성급의 일계급 승진에 걸리는 기간이 평균 12년이라는 점, 그리고 리영호의 중장 진급 때 함께 진급한 리영길·박수철·황흥식·방국환 중장 등이 여전히 진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가 북한군 중장에서 대장급까지 가는 데 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은 엄청난 고속 승진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상대적으로 젊은 그의 나이다. 2007년 북한군 창건 75돌 기념 4·25 열병식을 총지휘한 당시 평양방어사령관 리영호 상장의 얼굴은 그동안 김정일 위원장 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70대의 노쇠한 북한군 간부들과 달리 아무리 높게 보아도 60대 안팎의 젊은 사령관이었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북한군 주요 보직의 종신제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건강에 특별히 문제가 없어 보이는 김격식 총참모장을 일선에서 후퇴시키고 젊은 총참모장을 임명한 것은 향후 노쇠한 김명국 작전국장의 퇴진 등 북한군 전체의 세대교체를 전제로 한 일종의 파격 조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리영호 총참모장의 임명 배경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제3의 인물과 모종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가정이 성립될 수 있다.

과거 북한군에서 총참모장으로 임명된 인물인 김광협·리권무·김창봉·최광·오진우·오극렬·김영춘·김격식 등을 보면 대내외적으로 어느 정도 알려진 인물로서 총참모장에 임명되기까지 북한군 내 일선 군단장 등 주요 군사 보직을 두루 거쳤다. 그와 비교해 리영호 총참모장은 2002년 4월 기껏해야 북한 군단급 참모장인 ‘중장’으로 승진했고 2005년께 상장급의 평양방어사령관과 2007년 열병식 지휘 이외에 특별한 것이 없다.

   
ⓒXinhua
2월7일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 최대 규모인 함흥시의 비료공장을 시찰했다며 공개한 사진.
결국 리영호 총참모장이 2002년 중장 진급에서 6년여 만에 대장급인 총참모장으로 승진했다는 사실은 과거 북한군 총참모장들처럼 군사적 서열과 경력, 능력에 기초해 임명되었다기보다는 서열 경로를 파괴하는 모종의 권력 관계에 의해 임명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총참모장 임명은 그동안 비공개 장막 뒤에서 앳된 후계자에게 ‘북한군대’를 가르쳐왔던 인연의 결과였다고 하면 허황된 상상일까?

덧붙여 리영호 상장이 떠오르기 시작한 시기는 고영희 사망(2004년 8월)을 정점으로 북한군 내 불거졌던 ‘김정철’ 후계자 세우기 시도가 점차 사그라지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그 점에서 그의 총참모장 등극은 조만간 기존의 인물이 아닌 새로운 후계자의 부상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북한군 최고 수뇌부 교체 인사는 이미 ‘강성’으로 정평이 나 있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뿐 아니라 초고속 승진으로 출세한 리영호 총참모장 등이 본질적으로 대남 강경 성향의 ‘정치위원’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최근의 한반도 군사 긴장 상황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전통적으로 북한군 최고 수뇌부들이 교체될 때 새로운 최고 지휘부는 그에 걸맞게 북한군의 지휘 및 전투 능력을 제고하고 기강을 확립하는 차원에서 일정한 전투적 성과를 과시해야 할 부담을 안는다. 때문에 ‘확전 방지’라는 조건 아래에서 조만간 함경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하고 북측이 주장하는 서해해상경계선 내에서 단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이나 휴전선에서의 국지적 대남 군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