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 왕’과 예스맨 기자
  • 파리·최현아 통신원
  • 호수 75
  • 승인 2009.02.1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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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5일 특별 생방송에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언론 길들이기의 단면을 보여줘 논란이 일고 있다. 사르코지는 왕이었고, 기자들은 ‘각하’의 말씀에 ‘예’ 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Reuters=Newsis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의 특별 담화 생방송에서 프랑스 기자들은 권력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언변이 뛰어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변호사 출신으로 내무부 장관 재직 때부터 설득력 있는 말솜씨로 프랑스인의 호감을 얻었다. 그가 유창한 말솜씨로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디어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언론의 영향력을 잘 아는 사르코지는 대통령 취임 전부터 지금까지 미디어에 유별난 집착을 보였다. 대통령이 언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좀 특별하다. 언론계에 특별한 인맥이 많은데, 민영 방송 테프엉(TF1)의 사장과 각별한 친구 사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또 그는 전처였던 세실리아의 간통을 폭로한 <파리 마치> 편집장 해임에 깊이 관여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20년 동안 TF1의 저녁 8시 뉴스를 진행했던 파트리크 푸아브르를 로랑스 페라리로 전격 교체하게 하는 데에도 입김을 불어넣었다.

사르코지의 언론·미디어에 대한 집착은 올해 들어 간섭과 통제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그는 공영 방송사의 프라임 시간대에 광고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한 반사이익은 자신의 친구가 운영하는 TF1, 엠 식스(M6) 등 민영 방송사가 갖게 된다. 반면 공영 방송은 앞으로 재정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영 방송사의 사장을 직접 임명하겠다고 말해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사르코지의 이같은 결정은 프랑스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공영 방송 광고 폐지 발표 이후 사르코지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9% 포인트 감소했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최근에는 대통령 담화 특별 생방송이 사르코지의 언론 길들이기의 한 단면을 보여줘 논란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2월5일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의 전국적 시위에 대한 대응을 위해 방송에 출연했다. 경기 부양 정책과 경제 위기에 대한 국민적 불만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는 점에서 프랑스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방송이 끝난 뒤 대통령의 발표 내용보다 더 논란이 인 부분은 언론인의 모습이었다. 프랑스의 스타급 텔레비전 뉴스 진행자(TF1의 로랑스 페라리, 프랑스 2의 다비드 퓌자다, M6의 기 라고슈)와 라디오 방송인 RTL(알랭 뒤아멜) 기자의 태도는 프랑스 언론이 권력 앞에서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대통령 특별 방송은 방송사가 대통령 측에 제안해 이뤄졌다. 엘리제궁 측에서 기자를 초청해 대통령 담화와 기자와의 질의·응답으로 이뤄진 90분짜리 생방송이 방송 3사를 통해 프랑스 전역에 방영됐다.
방송 준비 과정은 엘리제궁 측에서 주도했다. 엘리제궁 측은 초청할 기자를 직접 선정했다. 그런데 기자를 선택하는 데 어떠한 합리적인 기준이나 투명성은 보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언론 노조는 공영 라디오 방송, 신문사, 인터넷 신문 기자가 제외돼 미디어의 다양성이 무시됐다는 점에서 염려를 나타냈다.

프랑스 언론의 전통? 언론에 대한 모욕?

그런데 초청된 기자의 질문 내용이나 태도는 프랑스 언론인의 자존심을 건드릴 만했다. 방송사의 스타급 기자의 질문에서 날카로움은 찾아볼 수 없고 비판의 예봉은 온데간데없었다. 기자를 대하는 사르코지의 태도는 ‘왕’의 그것이었다. 마치 신하를 대하는 듯한 교만함과 대통령 자리의 애로를 고백할 때 유약함을 적절히 버무리는 사르코지는 노련했다. 반면 기자들은 순한 양처럼 그저 ‘예’라고 답하며 자신들의 무력감을 숨겼다. 그들은 대통령 각하의 답변에 감히 반격을 하거나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방송을 보고 난 프랑스 언론인들은 한마디로 ‘모욕적’이라고 반응했다. 엘리제궁 측이 기자 선정에서부터 질문 내용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질문자를 사전에 선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방송을 지켜본 한 언론인은 드골 대통령 이래 언론의 이같은 태도는 프랑스 언론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사회학자인 도미니크 올톤에 따르면 미테랑 시절에도 프랑스 기자들이 권력에 저항하는 힘이 약했다고 한다. 특히 사르코지처럼 권위적이고 비판을 받아들이기 힘든 인물 앞에서 비판 목소리를 높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르코지의 언론에 대한 무소불위의 힘과 기자들의 굴욕적 태도는 유럽 기자로부터도 비웃음을 샀다. 왕족이 존재하는 영국에서조차 기자가 버킹엄궁에서 여왕에게 거리낌 없이 질문한다. 또 기자들이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무총리에게 당당하게 질문할 때 마치 스포츠 경기처럼 치열하다. 하지만 영국 더 타임스의 파리 특파원인 찰스 브레네 기자는 사르코지 같은 대통령에게 질문하기란 쉽지 않다며 “이런 현상은 지극히 프랑스적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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