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박투구’ 시즌 2?
  • 이숙이·고재열 기자
  • 호수 75
  • 승인 2009.02.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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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전 의원의 국내 복귀를 앞두고 친이재오 계열과 친박근혜 계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 전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상득 의원의 견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시사IN 윤무영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둘은 서로를 너무 싫어했다. 둘은 사사건건 싸웠다. 다행히 한 남자가 멀리 떠났다. 몸이 멀어지니 ‘미움’도 멀어졌다. 둘은 한동안 부딪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남자가 곧 돌아온다. 한 여자는 긴장하고 있다. 여기서 한 남자는 이재오 전 의원이고 한 여자는 박근혜 전 대표다. 이재오 전 의원의 국내 복귀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치권은 ‘이전투구’보다 더한 ‘이박투구(李朴鬪狗)’가 재현될지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둘의 갈등은 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섯 번 구속된 전력이 있는 이 전 의원은 그중 네 번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구속되었다. 악연은 대를 이어 계속되었다. 2004년,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되자 당내 비주류 대표주자였던 이 전 의원은 박 전 대표와 부딪쳤다. 비주류의 한을 풀기 위해 이 전 의원은 유신의 폐해를 담은 영화를 기획하기도 했다. <유신의 추억>(가제)이라는 영화였다. 

2005년, 박 전 대표의 측근이었던 김무성 의원을 제치고 원내대표가 된 이 전 의원은 화해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의 표현대로 박 전 대표를 ‘극진히’ 모셨다. 그러나 ‘적과의 동침’은 오래가지 않았다. 둘의 관계는 당 대표를 선출하는 2006년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파탄난다. 당시 이 전 의원의 라이벌인 강재섭 전 대표를 밀었던 박 전 대표는 이 전 의원이 연설할 때 자리를 떠 분위기를 흐트러뜨렸다. 전당대회에서 패배한 이 전 의원은 천장을 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둘의 관계는 2007년 대선 경선을 계기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이명박 대통령 캠프의 좌장 노릇을 했던 이 전 의원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오만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박 전 대표 측에서는 2004년 17대 총선 당시 박 전 대표가 이 전 의원 지역구에 세 번이나 지지 유세를 갔던 것을 상기시키며 배은망덕하다고 비난했다. 2008년, 18대 총선 공천 당시 측근들이 대거 낙천한 것을 이 전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박 전 대표 측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 위에 마음의 바리케이드를 쳤다.

이재오 복귀 앞두고 긴장 고조

그리고 채 1년이 흐르지 않았는데 그가 돌아온다고 한다. “3월이면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온다”라며 이 전 의원이 3월 초 귀국 의사를 밝히자 박 전 의원은 긴장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의 복심으로 복귀한 정두언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바로 이 전 의원을 만나고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이 이 전 의원에게 어떤 역할을 맡긴 것인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이 긴장하는 이유는 친이 계열과 얽힌 당내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경북 경주 보궐선거 경선 문제가 있다. 친박연대 소속이었던 김일윤 전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한 이 지역구 후보 자리를 놓고 친이 계열 정종복 전 의원과 친박 계열 정수성 전 육군대장이 겨루고 있다. 친이 계열에서는 원래 이 지역구 의원이던 정 전 의원이 출마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친박 계열에서는 여론 지지율이 더 높은 정 전 대장이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복잡한 문제는 4월에 있을 당협위원장 교체 문제다. 지난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해 당선된 뒤 복당한 친박 계열 현역의원과 현직 당협위원장 중 누구를 선택하느냐 문제가 걸려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관행대로 지역구 국회의원이 당협위원장을 해야 한다는 견해이고 친이 계열에서는 해당 행위자를 당협위원장에 임명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지난 1월20일 원외당협위원장협의회를 만들고 이 문제에 집단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번에 임명되는 당협위원장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양측 다 밀릴 수 없다는 생각이다. 경주 보궐선거의 경우 정종복 전 의원이 이상득 의원의 측근이었기 때문에 이재오 전 의원과는 별 상관이 없다. 그러나 당협위원장 교체 문제는 다르다. 원외당협위원장들은 이 전 의원이 자신들을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전 의원과 가까운 당협위원장이 많기 때문이다. 2월11일 한나라당 최고중진회의에서 친박 계열인 이해봉 의원이 이 문제를 거론하자 친이재오 계열인 공성진 최고위원이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친박 계열에서는 이 대통령을 만난 정두언 의원이 이 전 의원을 만나고 온 것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정 의원 측은 대통령을 만나고 이 전 의원을 만난 것은 맞지만 전달한 내용은 와전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의원에게 역할을 맡기려고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전 의원의 활동을 막기 위해서 간 것이었다는 것이다.

   
제공
지난 1월26일, 설을 맞이해 이재오 전 의원은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왼쪽). 정상에서 그는 ‘대한민국 만세’ ‘남북통일 만세’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 만세’를 외쳤다.
실제로 이 전 의원은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其位 不謨其政·그 직위에 있지 않거든 그 자리의 정사를 논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2월11일, 베이징 주재 특파원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당장 재보선에 큰 의미를 두지 않다. 국내에 정치를 하는 분이 많고 그분들에게 맡겨놓아도 된다. 당분간 국내 정치와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왜 이 전 의원을 자중하게 했을까? 그것은 2월 ‘입법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친박 계열 의원의 도움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전 의원의 귀국으로 인한 불필요한 갈등을 막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 차원에서 이를 조율한 것인데 오히려 오해를 불러 정반대 해석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반박근혜 연대’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시 계보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김무성 의원의 의견을 묵살하고 정중동 행보를 이어갔다. 맞수였던 김 의원의 역할이 없어지자, 이 전 의원의 역할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양 진영은 다시 평화를 찾았다.

박 전 대표 측에서는 이런 평화가 당분간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관건이 되는 당협위원장 문제도 합리적으로 풀 수 있다는 생각이다. 부산 연제 지역구와 같은 곳은 친박 후보(박대해 의원)가 당선되었지만 원래 지역구 의원이었던 친이 계열 김희정 전 의원을 당협위원장으로 인정해주고, 부산 남구을의 김무성 의원처럼 친박 계열이 원래 당협위원장이었던 곳은 새로 임명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친이 계열에서는 3기 내각 구성 때 친박 계열 몫을 주고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 때 공천 지분도 나눠준다면 이런 평화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전 의원이 당분간 낮은 자세를 취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전 의원도 10월 재·보궐 선거 출마 여부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원 측 정무팀의 분석은 재·보궐 선거는 조직선거에 좌우되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원내에 들어와 진두지휘를 하거나, 아니면 3기 개각 때 통일부 장관 등으로 입각해서 구실을 한다는 그림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가능하느냐이다. 그동안 이 전 의원의 정치적 구상은 이상득 의원에 의해 번번이 막혀왔기 때문이다. 

이상득 의원은 여러 차례 이 전 의원의 구상을 좌절시켰다. 현 한나라당 지도부(박희태 대표-홍준표 원내대표)를 구성할 때, 18대 총선 공천을 할 때, 대통령직 인수위를 구성할 때이다. 대선 막바지 ‘토의종군(土依從軍·백의에 흙을 묻혀 전쟁에 임하겠다)’한 이후 이 전 의원은 이상득 의원에 막혀왔다. 애초 지난해 12월 말 귀국하려고 했던 이 전 의원을 정기국회와 2월 임시국회 이후로 귀국하게 한 것도 이상득 의원의 의지로 해석한다.

정치권에서는 현실 정치에서 입지가 좁은 이 전 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한반도 대운하를 재추진하는 것이나 남북관계에서 역할을 하는 것 정도로 보고 있다. 지난해 9월3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난 간담회 자리에서 그는 “파나마에 가보니 100년 전에 만든 70m짜리 운하를 더 파서 120m짜리 운하로 만들고 있더라”며 여전한 ‘운하 사랑’을 내비쳤다.

   
ⓒ뉴시스
이상득 의원(오른쪽)은 이재오 전 의원(왼쪽)에 대한 견제를 풀지 않고 있다.
존스홉킨스 대학 부설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초빙교수로 있을 때 연구 주제를 ‘남북문제’로 잡았던 그는 베이징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TCR(중국횡단철도) TSR(시베리아횡단철도)를 한반도까지 연결하는 문제와 관련해 동북아평화번영공동체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연구소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남북관계 경색을 풀기 위해서 이 전 의원이 ‘대북 특사’로 임명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친인척 비리 등으로 이상득 의원이 실각하지 않는 한 이 전 의원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한다. 김영삼 정부 시절 김현철 사건이나 김대중 정부 시절 김홍일·김홍업·김홍걸 3형제의 비리 사건 등 대형 친인척 비리 사건이 터지지 않는 한 이 전 의원의 활동 공간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조용히 기다릴지 여부가 관건이다. 지난 1월26일, 설을 맞아 백두산 정상에 오른 이 전 의원은 ‘대한민국 만세’와 ‘남북통일 만세’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 만세’를 외쳤다. 한 당 관계자는 “이재오 전 의원의 단점은 조급함이다. 역할이 만들어졌을 때 그 일을 해야 하는데, 역할을 스스로 만들려고 한다.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이 전 의원은 타고난 싸움꾼이다. 대선 때 잠시 물러날 때나 미국으로 떠날 때도 그는 “장수는 전장을 떠나지 않는다. 장수는 이선이 없다. 오직 전선만 있다”라며 권력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2월5일 64세 생일을 맞아 팬클럽과 화상채팅을 하며 그는 “나는 싸움을 거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그는 최근 염색도 하지 않고 흰머리를 언론에 노출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기회를 기다린다며 올해 화두를 ‘지고청원 임중도원(志高淸遠 任重道遠, 뜻은 높고 맑고 멀다.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라고 던졌다. 과연 그가 싸움을 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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