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2월11일 한승수 총리(화면 왼쪽)를 상대로 정부의 ‘홍보지침’을 폭로하는 김유정 의원(오른쪽).
기습을 당한 한승수 총리가 말실수를 했다. “청와대에서 무슨 메일이 갔는지, 뭐가 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확인해보겠습니다.” 한 총리는 질문에는 있지도 않던 ‘메일이 갔다’라는 답을 먼저 해버렸다. ‘물증’이 없어 아슬아슬하던 민주당 김유정 의원(대변인·비례대표)의 폭로가 힘을 받았다. 용산 참사 이후, 김 의원이 삼연타석 홈런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2월11일 국회 대정부 긴급현안 질문 현장. 김유정 의원은 한 총리를 앞에 세우고 “청와대가 경찰에게 군포 연쇄살인 사건 홍보를 독려해 ‘용산 물타기’를 시도했다”라고 폭로했다. 청와대는 부인했지만, 곧이어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가 김 의원이 말한 메일을 별도 경로로 확보해 기사화했다. 결국 폭로 이틀 뒤인 2월13일 청와대는 “해당 행정관의 개인 행위로 본다”라며 사실상 메일 발송 사실을 시인했다. 7명이 희생된 연쇄살인 사건을 이용해 언론의 관심을 유도하도록 ‘홍보지침’을 내려보낸 셈이다.
 
홍보지침 “용산 참사 프레임 바꿀 절호의 기회”

해당 문건에는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 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니 계속 기삿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노골적 표현도 들어 있었다. “연쇄살인 사건 담당 형사 인터뷰, 증거물 사진 등 추가 정보 공개, 드라마 〈CSI〉와 경찰청 과학수사팀의 비교, 사건 해결에 동원된 경찰관·전경 등의 연인원, 수사와 수색에 동원된 전·의경의 수기” 등 정보와 취재 편의를 언론에 적극 제공하라며 구체적인 홍보 포인트까지 적시했다.

김 의원 측은 “메일 내용은 제보를 받은 것이다. 메일 사본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제보자가 직접 타자를 쳐서 준 것이어서 증거로 사용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언론이 메일을 확보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도 환호성을 질렀다”라고 말했다. 지루한 진실 공방 끝에 묻힐 수도 있었던 청와대의 홍보지침은 그렇게 사실로 확인됐다.

그러나 여기서 그칠 기세가 아니다. DJ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김 의원은 “그만한 일을 행정관이 보고 없이 개인 판단으로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청와대의 태도를 지켜보며 대응 방법을 결정하겠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의 이번 활약은 처음이 아니다. 용산 참사 이후인 지난 1월21일에는 “용산 현장 경찰특공대 투입에 대해서는 보고만 받았다”라고 말한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 앞에, 김 청장이 직접 서명한 특공대 투입 문건을 내밀어 “서명했다”는 시인을 이끌어냈다. 1월23일에는 농성 진압 당일 경찰 무전기록을 분석해, 경찰이 용역업체에 지시를 내리는 교신 내용을 잡아내기도 했다. 용역 업체와 경찰이 ‘합동 작전’을 편 사실을 증명한 것으로, 용역 업체와의 관계를 부인하던 경찰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당내에서는 ‘김유정의 재발견’이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용산 참사 이후의 맹활약을 평가하는 말이지만, 그와 동시에 이전까지 김 의원을 바라봐온 시선이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았음을 반영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민주당 비례대표 15번인 김유정 의원은 1991년 정계에 입문했지만 18대 국회에서 금배지를 달기 전까지 ‘통합민주당 여성국장’이 최종 당직 경력이다. 부대변인급 당직자들을 제치고 당선권 순번에 공천이 된 데는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의 의중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계파 안배 비례대표 공천’의 수혜자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수행해온 대변인 업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데다, 올해 ‘용산 정국’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며 당내 의심의 눈길을 걷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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