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우파 돌풍에 ‘평화의 불’ 꺼지나
  • 카이로·이민주 (SBS 특파원)
  • 호수 75
  • 승인 2009.02.1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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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총선에서 ‘과격한 공약’을 내세운 우파가 사실상 승리하면서 중동 평화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우파가 집권하면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전면전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AP Photo
2월10일 이스라엘 카디마당 지지자들이 총선 결과와 관련한 첫 보도를 보고 환호하고 있다. 카디마당은 제1당 자리만 겨우 유지했다.
중동 평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이스라엘 총선이 사실상 우파의 승리로 끝났다. 현 연립정부를 이끄는 중도 성향의 카디마당이 어렵사리 제1당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리쿠드당을 중심으로 한 우파 정당이 전체 의석120석 가운데 절반이 넘는 65석을 차지하며 크게 약진했다(오른쪽 표 참조).

결과가 모호한 만큼 제1당인 카디마당과 제2당인 리쿠드당이 개표 직후 각각 승리를 주장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치피 리브니 외무장관이 이끄는 카디마당으로서는 제1당 지위를 사수했다는 점이 승리를 주장한 근거가 되었고, 리쿠드당은 비록 1석 차이로 제2당에 그쳤지만 다른 보수 정당과 우파 연합을 결성하면 연립정부 구성권은 결국 자기들 몫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스라엘 사회의 우경화 바람은 매우 거셌다. 하마스와 전쟁을 치른 직후에 총선이 실시되는 바람에 선거의 유일한 이슈는 안보였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맞물려 여느 때 같으면 가장 큰 쟁점이 되었을 경제도 이번에는 뒷전으로 밀렸다.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 전쟁까지 일으켰음에도 하마스를 무력화하지 못한 연립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다. 휴전 선언 이후에도 이스라엘 남부에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이 발사한 로켓 포탄이 떨어진 점이 유권자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이스라엘 국민은 평화협상을 통한 장기적인 안정보다는 당장 로켓포의 위협을 없애겠다는 정파에 표를 몰아줬다.

그 결과는 하마스 제거,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 반대 등과 같은 과격한 공약을 내세운 우파 블록의 대약진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아랍계 이스라엘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공약을 내건 극우파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이 15석을 차지해 제3당으로 도약하기에 이르렀다.

보수화 바람에 위기 의식을 느낀 중도 또는 좌파 성향의 유권자가 궂은 날씨에도 대거 투표에 참여해 카디마당을 다시 제1당으로 만들긴 했지만, 전체 판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에 없이 강한 우경화 바람에 현 연립정부의 양대 축이자 중동 평화협상에 가장 적극적인 중도좌파 노동당이 사상 처음으로 제4당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스라엘 정계 지도자들. 맨 왼쪽부터 치피 리브니 카디마당 당수, 베냐민 네타냐후 리쿠드당 당수,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베이테누당 당수.
어떤 당이 연정 주도해도 평화협상 ‘난항’

이제 관심은 연립정부가 어떤 형태로 구성될지에 모아진다. 관례상 제1당 카디마당이 연정 구성을 주도할 기회를 먼저 갖게 되겠지만, 성공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중도 및 좌파 정당을 다 끌어 모아도 연정 구성에 필요한 61석에 한참 못 미치는 44석에 불과하다. 모자라는 숫자를 채우려면 리쿠드당과 손잡거나 베이테누당과 샤스당 같은 극우파 정당을 규합해야 하는데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현지 언론의 일치된 분석이다.

카디마당의 리브니 당수는 이미 지난해 9월 같은 당의 올메르트 총리가 부패 혐의로 사임을 발표했을 때 총리직에 오를 기회가 주어졌으나, 군소 정당을 아우르는 데 실패해 결국 연정을 구성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제2당인 리쿠드당의 베냐민 네타냐후 당수가 우파 연립정부를 구성해 1996년에 이어 다시 총리가 될 공산이 커 보인다.

   
우파 부상과 좌파 몰락으로 요약되는 이스라엘 총선 결과를 바라보는 아랍권의 심기는 불편하고 착잡할 수밖에 없다. 전쟁을 치른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테러를 부추기는 세력을 선택했다”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시리아도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골란고원 반환 협상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다른 아랍권의 반응도 실망과 냉소 일색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이스라엘 우익 정파와는 평화협상이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중동 평화협상도 후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1991년 마드리드 회담 이래 숱한 협상 끝에 도출된 중동 평화안은 ‘영토와 평화의 교환’, ‘두 국가 공존안’이 핵심이다.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을 통해 점령한 땅을 돌려주고, 그 대가로 아랍국과 평화협정을 맺는다는 구상이 전자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나란히 두 개의 독립 국가로 공존하자는 방안이 후자이다. 리쿠드당을 비롯한 우파 정당은 기본적으로 이 두 평화안에 부정적이다. 카디마당이 우파 정당을 끌어들여 연정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 평화정책을 폐기하는 수준의 대대적인 양보가 불가피하다. 결국 어떤 당이 연정을 주도하더라도 중동 평화협상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기에 리쿠드당 중심의 우파 연정이 현실화할 경우 현재 이집트의 중재로 막바지에 이른 하마스와의 장기 휴전협상은 물거품이 되고, 다시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등장을 계기로 어느 때보다 서광이 비치는 듯했던 중동 평화협상이 때 아니게 불어닥친 이스라엘의 우경화 바람에 좌초할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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