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사실은 이 작품이 먼지 세포를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화가 노진아씨는 “현대 기술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미세한 세계의 유기체적 존재를 표현해봤다”라고 말했다. 미세한 먼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세포가 보이는데, 그것을 나노 배율로 확대해 보면 ‘미생물’ 같은 형상이 보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과학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은 노진아씨를 비롯한 화가들이다. 이들에게 지구환경 변화에 대해 설명한 박영무 교수(아주대·기계공학과)는 “예술가들이 핵무기, GMO 식품, 인간 복제 등으로 말미암아 과학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바꿔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3개 층에 나뉘어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화가들이 그의 소망을 귀담아들은 듯하다. 대개의 작품이 과학의 오묘하고 신비한 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미래 지구의 동식물은 어떤 모습일까
길현씨의 작품 ‘나노 가든’을 보자. 이 작품은 두 개의 커다란 캔버스(1.5×2m)에 각각 검은색 요소(비료) 결정(結晶)과 붉은색 요소 결정이 펼쳐져 있는 그림이다(길씨는 소금·요소·설탕 등을 섞은 물감이나 먹물을 캔버스에 뿌린 뒤, 그것을 열선풍기로 증발시켜 만들어낸 다양한 모양의 결정으로 환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물기가 마르는 며칠간 곰팡이처럼 자라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그의 그림은 수묵화나 원화를 짙게 활용한 추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림 옆에 가면 전혀 다른 느낌이다. 점만 한 기린이나 얼룩말 등이 뛰놀 것 같은 ‘마이크로 밀림’처럼 보인다. “결정의 입자는 나노 크기에서부터 눈송이 크기까지 다양하다. 그것으로 자연은 물론 우주까지 표현한다”라고 길씨는 설명했다. 과학자들이 나노의 세계를 수치로 보여준다면, 길씨는 색과 감성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미래 지구의 동식물을 구현한 이희명씨의 작품도 독특하다. 그러나 그 형상들이 보여주는 미래는 기이하고 음울하다. 꽃과 벌레를 결합시킨 작품(‘변형식물 시리즈’ ‘유충’ 등)이 있는가 하면, 손가락 토막이 기이한 애벌레로 변하는 작품(‘진화’)도 있다. 닭뼈와 생선뼈 등으로 창조한 이상야릇한 사람과 기묘한 생명체도 보인다. 왜 미래의 생명체를 이처럼 추하게 표현했을까. 이씨의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은 본래 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인터넷 화상 통화 등을 이용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시대. 예술가들은 이같은 시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현욱씨의 설치 작품 ‘이모셔널 드로잉(Emotional Drawing)’을 접해보면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이모셔널 드로잉’은 관람자가 직접 작품을 완성한다. 일단 어두운 밀실에 들어가 플래시 라이트를 들고 스크린을 향해 움직인다. 그러면 빛의 궤적을 따라 스크린에 그림이 그려지고 묘한 음향이 발생한다. 시각과 청각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등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미적 욕구를 현대미술로 구현한 것.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예술도 하고 과학에도 정통한 사람을 ‘르네상스 맨’이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세분화한 현대에는 르네상스 맨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렇듯 ‘통섭’의 뛰어난 결과물들을 보니, 르네상스 맨의 탄생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아직은 많은 관람객에게 어렵고 복잡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새로움이 주는 즐거움이 남으니 놓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