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SSPX를 창설한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
최근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위기 속에 몰아넣은 가톨릭 교회 내 보수단체인 ‘성비오10세 형제단(회)’(SSPX)의 정체가 세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SSPX는 18년 전 사망한 프랑스인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1905~1991)가 1970년 창설한 전통교리 고수 단체로 1962~1965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바티칸 2차 공의회의 가르침을 부인하고 교황청의 가톨릭 개혁에 반기를 들면서 독자 행보를 하며, ‘진리의 수호자’라 자처하는 가톨릭 내 극우 단체다.

SSPX는 신부가 신자를 등진 채 라틴어로 미사를 진행하고 종교의 자유와 종교 간 화합, 개신교와의 통합을 반대하며 반 유대인 노선을 견지하는 등 교황청의 종교 현대화 노력에 적극 반대를 표방하면서 세를 불려왔다.

SSPX는 현재 스위스 에코네에 본부를 두고 아르헨티나·독일·미국·프랑스·호주 등 6개국에 세미나(신학교)를 세우고 신부 486명과 수사 100명, 수녀 160명이 63개국의 725개 미사센터에서 활약한다. SSPX는 2개 대학, 88개 학교를 운영하면서 추종자 약 60만명을 확보하고 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이번에 홀로코스트를 부인해 교회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은 리처드 윌리엄슨과 현재

ⓒReuters=Newsis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인한 윌리엄슨 주교.
SSPX 대표인 베르나드 펠라이 등 신부 4명을 1988년 6월 일방적으로 주교로 임명해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파문당했다. 그러나 교황청은 지난 1월21일 4명을 복권 조처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1929년에 신부 서품을 받은 후 한때 세네갈 다카 교구장, 프랑스 툴레 주교를 역임했고, 교황 요한 23세 때는 2차 바티칸 공의회 준비위원으로 활약했다. “나는 세 차례 전쟁을 겪었다. 첫째 제1차 세계대전, 둘째 제2차 세계대전, 셋째 1962~1965년의 바티칸 제2차 공의회였다”라고 강변할 정도로 그는 다른 종교와의 화해를 비롯한 교회의 개혁 노력을 극렬하게 반대했고, 반 유대 성향을 드러냈다. 그런 그의 아버지는 정작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다 나치에 체포된 후 1944년에 동부 독일의 손넨부르크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SSPX의 펠라이 주교는 윌리엄슨 주교가 한 스웨덴 방송에서 홀로코스트 부인 발언을 한 후 그를 세미나 책임자 자리에서 해임하고 그에게 거리를 두었지만, SSPX의 이미지는 이미 땅에 떨어진 후였다.

기자명 뮌헨·남정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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