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가톨릭의 이단 단체인 ‘성비오 10세 형제단’(SSPX) 소속인 영국 출신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가 지난 1월21일 방영된 스웨덴 방송 회견에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유대인은 600만명이 아니라 20만~30만명이고 독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은 없었다”라며 홀로코스트(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량 학살)를 부인하는 발언을 한 데다, 공교롭게도 이날 교황청은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에 의해 파문당했던 윌리엄슨 주교를 포함한 SSPX 소속 주교 4명의 복권을 발표했다.
오비이락일까. 윌리엄슨 주교의 복권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몰고 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교황에게 “유대인 학살에 대한 교황청의 태도를 분명히 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서는 등 파장은 일파만파 번졌다. 이 사건 이후 독일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회를 탈퇴하는 신자가 늘고 있다.
‘교황 보호망’ 부재 드러나
독일 출신 일부 추기경과 주교는 교황이 바깥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도록 만든 교황 측근들에게 강한 분노를 나타냈다. 교황은 과거 한결같이 유대교와 화합을 강조하고 유대인과의 유대를 강조해왔지만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가 없었다.
특히 윌리엄슨 주교 등을 복권시키는 데 앞장 선 79세의 오요스 추기경과 위기 대처를 제대로 못한 베르토네 추기경에게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묻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바티칸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매파’에 속한다. 교황이 홀로 비난받고 있을 때 국무장관은 스페인과 멕시코를 여행 중이었다. 오요스 추기경은 1988년부터 존재해온 성비오10세 형제단의 포섭 문제 등을 다루어온 책임자다.
이 사태가 바티칸과 가톨릭 교계에 남겨놓은 상처는 너무 크다. 교황의 권위 추락과 이미지 상실, 가톨릭교에 대한 신뢰감 상실, 바티칸의 교회 단체에 대한 통제력 결여, 내부 소통의 부재를 드러냈고, 추기경과 교황 측근 ‘교황 보호망’ 부재가 드러났다. 게다가 신자들의 교회 이탈을 촉진했고, 유대교와의 화해 노력을 뒷걸음질치게 했다. 그렇지만 지금이 바티칸의 위기이자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