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조
북한은 지금 초조해한다. 갈 길은 먼데 앞으로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으로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그런 조짐은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도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한 달이 지났지만 선거 기간 중과 당선 후 밝힌 정책 공약에 담긴 강력하고 직접적인(tough & direct) 대화 의지가 언제 가시화할지 불투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남한에 대해서는 지난 1월17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에서 대남 전면대결 태세 진입과 NLL이 아닌 북한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서해해상분계선 고수 방침을 천명했다. 이어 1월3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에서는 남북 간에 합의한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된 모든 합의의 무효화를 선언하고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에 있는 서해해상경계선에 관한 조항을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북한은 무력 행사를 제외하고 말로 할 수 있는 가장 강경한 조처를 취한 셈이다. 무력 충돌을 감행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1월21일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왕자루이의 북한 방문을 수용했다. 왕자루이의 방북은 전례에 비추어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국제사회의 눈길을 끌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왕 부장과의 면담에서 자신의 건재를 내외에 과시하고 북한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힘쓰고 있으며 중국과 협력하기를 원하고, 6자회담이 진척되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하는 계기로 활용했다. 미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즉각 좋은 일이라며 환영하고 대화 재개 의지를 밝혔다. 아울러 2월 들어 대포동 2호로 추정되는 미사일 이동 동향을 한·미 정보 당국에서 포착했고, 같은 시기 미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 방북단의 방북이 성사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북한 동향은 미국과의 협상을 앞당기기 위해 계획된 수순에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북한은 1998년 김정일 위원장이 국방위원장으로 전면 통치를 시작한 이래 일관되게 체제 생존 전략을 추진했다. 이를 위한 최우선 과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었다. 나아가 북·미 관계 개선의 여건 조성을 위해 남북 관계와 북·중 관계를 적절히 활용했다. 10년이 지났지만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으로 결실을 보지 못한 북·미 관계 정상화를 오바마 행정부에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달성해야 하는 강박관념이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의 직접적이고 포괄적인 협상을 즉각 개시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남북 간 긴장 고조 분위기 조성,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왕자루이 방북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유대 과시, 김정남의 공개적 후계 문제 관련 발언,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준비, 그리고 미국의 전직 고위 관리 등으로 구성된 민간 방북단 초청이 그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북한, ‘통미봉남’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알아

연초부터 북한이 보이는 이러한 적극 공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서해상에서의 무력 충돌을 불사하더라도 무시와 방관 정책을 지속해나갈 것인가.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가 정치·경제 면에서 깊어지는 것을 방치할 것인가. 북한이 꺼내 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도록 내버려 둘 텐가. 핵에 더하여 미사일 문제를 제기해 대미 협상을 포괄적이고 신속하게 매듭지으려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텐가.

우리는 북한의 이러한 행동을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적 유연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는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대화 창구는 열려 있어야 한다.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갖게 되는 상황을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 된다. 무시와 방관은 북한 강경파의 입장을 강화해 남북 관계의 위험선(red line)을 넘게 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통미통남(通美通南)이 바람직하다. 북한도 과거 경험에 비추어 통미봉남(通美封南)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최근 북한은 말은 험하게 하지만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정책 변화를 일관되게 촉구하고 있다. 대화를 하되 김정일 위원장의 체면은 고려해달라는 북한식 반어법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미봉남을 걱정해 봉북봉미(封北封美)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남북 대화의 재개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

기자명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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