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빈곤한 대중 분노의 저항

감세와 인력 구조조정을 골간으로 한 사르코지의 ‘우파식 개혁’이 광범위한 대중적 저항을 불러왔다. 사르코지와 닮은꼴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은 프랑스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파리·최현아 통신원 2009년 02월 10일 화요일 제74호
댓글 0
   
ⓒReuters=Newsis
사르코지 대통령(위)의 인기가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다. 그는 ‘말만 하는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지난 1월29일 바스티유 광장은 평상복을 입은 경찰, 슈퍼마켓 계산원, 자동차 회사 직원, 증권맨, 교사, 공무원으로 가득했다. 이들은 사르코지의 경제 위기 해법에 반대하는 파업에 참여하려고 모였다. 시위 대열은 파업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는 가게 점원에서부터 파업에 동참하기 위해 일부러 휴가를 냈다는 경찰·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했다. 특히 샐러리맨의 파업 동참은 마치 1987년 6월 항쟁 때 한국의 넥타이 부대를 연상케 했다. 시위대 가운데 ‘보통의 꿈(Reve General)’이라는 슬로건이 눈에 띄었다. 경제 위기라는 악몽 속에서 ‘보통의 꿈’은 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는 2006년 CPE(최초고용계약법)에 반대하는 시위보다 대중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06년의 경우 대학생 중심으로 일어난 시위였던 반면, 이번에는 프랑스의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년 이래 가장 중요한 시위라고 프랑스 민주노동동맹(CFDT) 위원장 프랑수아 세레크는 평했다.

20년 만에 볼 수 있었던 대중 시위, 그 배경에는 지난 20년 동안 가장 높은 실업률을 보인 최악의 경제 상황이 놓여 있다. 2008년 12월 한 달 동안 무려 4만5000명이 실업자로 전락한 기록은 20년 동안 최고치라 한다. 거기다 사르코지의 ‘서민이 빠진 경제 위기 대책’은 프랑스의 민심을 폭발시키기 충분했다.

사르코지는 지난해 12월4일 경제 회복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공적 자금 260억 유로(약 46조원)를 2년 동안 기업 구제, 소비력 촉진 등에 투자하겠다는 것. 그러나 이 대책에는 경제 위기의 근원지인 은행이나 자동차 회사 등 기업을 위한 대책은 있으나, 정작 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인 서민의 일자리 보장과 소비 촉진을 위한 계획은 미약했다. 사회당과 좌파는 현재 위기의 중점 사항인 소비 활성화와 실업 문제 대책이 소홀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공적 자금 규모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미국이나 중국이 GDP의 5%에 해당하는 금액을 투자하는 반면, 260억 유로는 프랑스 GDP의 1.3%에 지나지 않는다.

2006년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한 데에는 프랑스인들의 소비력을 촉진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되었다. 그런데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부자들의 세금 감면(자녀 유산상속 시 세금 면제)과 수만명의 공무원 감축을 시도하는 등 프랑스인의 소비 상승에 대한 기대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살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들


‘소비를 위한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듣던 사르코지가 이제는 ‘말만 하는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년 전 사르코지는 프랑스와 인도가 공동 소유한 철강회사인 아르셀로미탈을 방문했다. 당시 회사 공동 지주인 인도 측의 철수 결정으로 회사 존립이 위협받던 상황에서 사르코지는 회사를 살리겠다고 노동자에게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노조는 ‘대통령의 약속’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비문을 만들고 파업 중이다.

   
ⓒReuters=Newsis
지난 1월29일 프랑스 전역의 노동자들이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에 불만을 품고 파업을 벌였다(위).
사르코지의 이같은 행보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추락으로 이어졌다. 과반수 찬성으로 탄생했던 사르코지 정부는 취임 1년 만에 5공화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기가 낮은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아울러 사르코지의 경제 위기 대처 능력에 대한 불신은 커졌다. 프랑스 언론 뤼마니테가 기획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 가운데 62%는 사르코지 정부가 경제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얼마 전 프랑스 텔레비전에서 경제 위기를 취재한 르포타주를 본 적이 있다. 르노의 생산 감축 여파로 월급이 줄면서 네 식구의 생계를 걱정하는 한 가장의 현실은 참담했다. 삭감된 월급으로 각종 공과금, 집세를 제외하고 80유로(약 15만원)로 생활해야 하는 딸을 둔 이혼녀는 돈을 아끼기 위해 점심을 굶었다고 했다. 방송 끝에 가정부 출신 은퇴 할머니는 지금까지 이렇게 어려웠던 적이 없다며 “사람들이 언젠가 일어날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2008년 실업률 무려 11.4%


최근 프랑스의 경제 관련 수치는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감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8년 한 해 동안 실업률은 11.4%, 12월 한 달 동안 새로운 실직자 수는 4만5000여 명이다. 현재 프랑스 전체 실업자 수는 210만명에 이른다.

결국 실업의 공포와 줄어든 월급, 가벼워진 시장바구니로 요약되는 현실은 프랑스 사람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다. 파업 성공은 우파와 사르코지로 하여금 위기의식을 느끼게 했다. 사르코지는 텔레비전 담화를 통해 민심을 수습하는 한편 총리 프랑수아 필롱은 2월2일 사르코지의 경기 부양 대책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총 1000여 개 프로젝트에는 대학 도서관 건립, 대학 투자, 기념물 재건, 지중해와 유럽 문명에 관한 박물관 건축 등이 포함된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일자리 12만 개를 창출할 것이며, 1.3% 성장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투자에만 집중될 뿐 소비 촉진에 대한 방안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한편 지난 1월29일 파업 이후 8개 노조 연합에서는 진로를 놓고 고심 중이다. 현재 노조는 사르코지의 텔레비전 담화를 지켜본 뒤에 결정할 예정이다. 이번 파업의 대중적인 성공으로 노조 연합은 큰 힘을 얻었다. 반면 대안이나 메시지가 부재했다는 점은 노조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