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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폭탄 ‘재깍재깍’ 터키 사회 ‘시끌시끌’

퇴역 고위 장성, 언론인, 전 고위 관료, 교수, 노조 간부 등 각계 인사 150여 명이 정부 전복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체포된 ‘에르게네콘 사건’의 진실과 파장, 그리고 군부 쿠데타 가능성을 따져보았다.

이스탄불·남정호 편집위원 2009년 02월 10일 화요일 제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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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s=Newsis
에르도간 총리(오른쪽)는 군부의 불만이 거세지자 키리크 안보위원회 사무총장과 퇴역 장성 4명을 석방했다. 왼쪽은 바스버그 참모총장.
‘터키의 리비에라’로 불리는 에게 해 연안의 휴양 관광지 안탈야. 해변에 있는 5성급 고급 호텔 오티움의 로비 카페에 터키인이 삼삼오오 모여 에스프레소 커피와 맥주잔을 앞에 두고 나누는 대화는 주로 ‘에르게네콘 재판’ 이야기다. 요즘 앙카라·이스탄불·이즈미르 등 대도시를 포함해 전국 어느 곳에서나 들려오는 터키인의 공통 화제다.

지금 터키 사회와 정계·군부를 ‘망령’처럼 배회하는 에르게네콘 재판은 터키 사상 최대 규모의 정치 지도자, 퇴역 고위 장성, 언론인, 전 고위 관리, 교수, 노조 간부 등 각계각층 인사 150여 명이 정부 전복 구데타 모의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된 사건이다.

에르게네콘 재판이 터키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 재판이 에르도간 정부와 군부 사이에 긴장 관계를 조성하는 데다 지난해 10월부터 사건에 연루된 혐의자가 속속 추가로 검거되고 있어 가담자가 앞으로 얼마나 늘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에르게네콘(Ergenekon)이라는 단어는 552년 부민 칸이 알타이 산맥 속 깊은 계곡에 터키 당국인 게르투르크 황국을 세운 전설의 장소에서 나온 이름이자 터키의 비밀 극우 결사체 이름이다. 수도인 앙카라 근교의 에르게네콘에서 기관단총·미사일 발사기·소총·권총·수류탄·실탄 따위 대규모 무기 은닉처가 발견되면서 이 이름이 붙여졌다. 관련 혐의자 가운데 퇴역 4성 장군을 비롯해 터키 군부의 최고 안보위원회 사무총장인 턴커 키리크가 체포되면서 군부와 정부가 아연 긴장하기 시작했다.

키리크가 검찰에 체포되자 일커 바스버그 터키군 참모총장이 곧바로 타입 에르도간 총리를 찾아가 단둘이 밀담을 가진 것만 보아도 군부가 이 사건을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에르도간 총리는 곧 키리크 사무총장과 두 퇴역 4성 장군을 석방해 정부와 군부 사이에 감돌던 긴장은 다소 누그러들었지만, 정부는 아직도 군부의 강력한 영향력을 두려워한다는 인상을 남겨놓았다.

에르도간 정부가 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1969년, 1971년, 1980년 세 차례에 걸쳐 군대가 합헌 정부를 전복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후 군부 통치를 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터키가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면서 문민정부의 위상이 격상되고 군부의 세력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군은 현대 터키의 국부로 추앙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정교 분리 세속주의 건국이념에 충실하고 국가를 수호하는 기둥으로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어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대테러 총책임자까지 쿠데타 모의에 가담


에르게네콘 사건은 이미 연루자 체포가 11차에 이르고 있어 ‘11차 파고’로 불린다. 그러나 언제 ‘12차 파고’로 번질지 알 수 없다. 가장 충격인 수색 작업은 ‘10차 파고’. 올해 연초에 발견된 무기 은닉처에서 미사일 발사기·소총·수류탄을 포함한 무기가 다량 발견되면서 큰 충격을 안겨줬다. 지금까지 나온 수사 결과로는 관련자들이 총리를 비롯한 정치 지도자를 암살하고 일부 정부 기관을 공격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다음 이를 수습하기 위한 군부의 개입을 유도하는 작전을 세웠다고 파악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때 터키 경찰의 대테러부대 총책임자가 이 사건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야당인 공화인민당 간부들은 이 사건을 세속주의 지지자들에 대한 광범한 공격으로 본다. 민간인 검사가 한때 신성불가침 영역이던 군부의 퇴역 장성을 마구 잡아들이는 것을 군부도 불쾌하게 여긴다. 일부 언론은 이 사건을 집권당인 국가정의당과 케말리스트 진영 사이의 투쟁이라고 본다. 안탈야에서 만난 무사 바이살 변호사는 “에르게네콘 사건은 자칫하면 케말파와 모슬렘 간의 격렬한 반목을 깊게 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재판 결과를 염려했다.

이미 2년 전부터 시작된 에르게네콘 사건 수사가 현재 봉착 상태에 빠져 있는 이른바 ‘수수르루크 사건’과 선이 닿아 있는지 여부도 비상한 관심거리다. 야당 정치인이자 전 경찰 간부였던 한 인사가 수수르루크 부근에서 마피아 두목과 한 차에 타고 가다가 살해당한 것이 수수르루크 사건이다.

   
ⓒReuters=Newsis
‘터키 건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의 정교 분리 세속주의 건국이념을 지지하는 ‘게말리스트’들이 에르도간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에르게네콘 사건 수사가 깊이 진행되면서 국가 명의로 자행된 과거 수많은 정치 테러와 살인 사건이 밝혀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군이 관련된 것이 드러나면 자칫 군부의 동요를 가져와 터키 사회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가능성은 낮지만 군부 쿠데타로 이어지는 상황으로 번질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에르게네콘 재판이 터키 정계의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지난 1월28일 스위스의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과 이스라엘군의 가자 지구 공격을 둘러싸고 언쟁을 벌였던 에르도간 총리가 자리를 박차고 포럼장을 뛰쳐나온 것도, 이같은 미묘한 정치 상황을 초래하는 에르게네콘 재판에서 국민의 관심을 돌려보려는 ‘작전’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에르도간 총리는 다보스 포럼 후 지지자들로부터 ‘다보스의 영웅’ ‘다보스의 정복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다보스의 촌극은 국내에서는 일부 지지를 받았을지 몰라도, 오누르 외이멘 좌파 케말리스트당(CHP) 부총재를 비롯해 많은 사람에게 “터키의 국제적 이미지를 훼손했다”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에르도간 총리는 특히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에 중재자로서 탁월한 외교 역량을 발휘해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 유럽연합 회원국 지도자들에게 “터키가 ‘유럽 클럽’에 속하기에는 아직…”이라는 이미지를 던져준 꼴이다.

오래전부터 터키 사회에는 세 가지 금기 사항이 있다. ‘아르메니아 주민 학살’ ‘쿠르드 노동당(PKK)’ ‘세속주의 건국이념’에 관련된 말이다. 이제 ‘에르게네콘’이 추가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에르게네콘 재판은 터키 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방향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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