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한국형 사이코패스, 있다? 없다?

“하나의 유령이 2009년 벽두 한국 사회를 떠돌고 있다. 사이코패스라는 유령이.” <공산당 선언>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우리 주변에 전개되고 있다. 사이코패스가 한국 사회에 과연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2009년 02월 10일 화요일 제74호
댓글 0
   
ⓒ시사IN 안희태
경찰청 범죄분석관은 연쇄살인범 강호순(머리 숙인 이)을 사이코패스로 진단했다. 사진은 2월2일 경기도 안양에서 있었던 현장 검증.
사이코패스는 이제 전 국민의 일상용어다. 겨우 5년 전만 해도 전문가 사이에서나 통용되던 심리학 용어를 이제는 초등학생도 어렵지 않게 입에 올린다. 전직 마사지사 강호순(38)이 경기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들을 연속 살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다. 경찰청 범죄분석관들로부터 강호순이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고 난 뒤로는 급기야 인터넷에 사이코패스 진단지까지 돌아다닌다.

이에 대해 전문가 사이에도 견해가 엇갈린다. 사이코패스가 존재하는지 의문일뿐더러 강호순을 타고난 사이코패스로 낙인찍어 봐야 우리 사회 범죄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한편에 있는가 하면, 이번 기회에 사이코패스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도 지금처럼 사이코패스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가 범람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논쟁점을 들여다보았다.

사이코패스는 과연 존재하는가

사이코패스 분야 연구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로버트 헤어 박사(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명예교수·심리학)는 사이코패스를 이렇게 정의한다. “냉담하고, 충동적이고, 무감각하며, 이기적인 사람들로서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끼친 피해를 자각하지 못하고 죄책감이나 후회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맺는 감정적·사회적 교감은 피상적이다. 그들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진단명:사이코패스>, 바다출판사)

비판적인 학자들 또한 사이코패스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렇지만 사이코패스에 관한 연구가 장기간 축적된 미국·영국·캐나다 등지와 한국은 사회문화적 토양이 다름에도 이들 나라의 기준을 우리 상황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본다”라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범죄심리과 강덕지 과장은 말했다.

1999~2000년 부유층 9명을 살해한 정두영, 2003~2004년 부유층 노인과 여성 20명을 살해한 유영철, 2004~2006년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정남규 등 연쇄살인범을 포함해 지난 30년간 강력 범죄자 1000여 명을 면담했다는 강 과장은 이 중 영미식 기준에 부합하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다시 말해 ‘살인 그 자체에 쾌감과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를 만난 것은 딱 두 차례였다고 말했다. 그 하나가 정남규였다. 경찰에 체포된 뒤에도 “사람을 더 죽이지 못해 안타깝다”라고 진술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이 살인귀는 사람을 죽이던 순간을 진술할 때면 마치 낚시광이 월척을 잡았을 때의 ‘손맛’을 회고할 때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목소리마저 들뜨곤 했다고 한다. 강 과장은, 그 밖에 정두영·유영철 등은 살인 그 자체를 즐겼다기보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이라고 분류했다.

최근 <살인 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을 작성 완료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박사 또한 ‘강호순은 사이코패스고, 사이코패스여서 연쇄살인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범죄를 단순화하는 것은 자칫하면 무의미한 동어반복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근 빈발하는 연쇄·연속·대량 살인에 대해 ‘묻지 마 범죄’(전문 용어로 ‘무동기 범죄’) 따위의 아리송한 딱지를 붙이는 것 또한 경계했다. 모든 범죄에는 동기가 있으며, 이를 밝혀내려고 노력할 때 범죄 예방에 필요한 단서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강호순 같은 경우도 ‘묻지 마 범죄자’라기보다 전형적인 ‘쾌락 추구형 살인범’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돈 따위의 눈에 보이는 이득은 아니지만 스릴·권력·욕정 따위 비가시적 이득을 분명히 노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이코패스 연구자들은 견해가 다르다. 사이코패스를 더 깊이 있게 알 때 범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범죄자가 사이코패스냐 아니냐에 따라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이 크게 달라진다고 이수정 교수(경기대·범죄심리학)는 말했다. “전처 사망으로 심적 충격을 받았다”라는 말을 정상인이 하면 범죄 동기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지만, 강호순 같은 사이코패스가 이런 말을 하면 ‘무언가를 은폐하기 위한 새로운 진술’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형 사이코패스는 외국과 다른가

로버트 헤어 박사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북미 지역에만 300만명 넘게 산다. 전체 인구의 1%, 곧 100명 가운데 한 명꼴이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범죄자, 그중에서도 특히 강력 범죄자가 사이코패스 비율이 높다. 미국 연쇄살인범의 90%, 폭력 사범의 50%가 사이코패스다.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하나 둘 나온다. 지난해 이수정 교수와 조은경 교수(한림대·심리학)가 전국 10여 개 중구금시설에서 수감 중인 강력 범죄자 451명을 상대로 사이코패스 진단을 벌인 결과, 15%가량이 사이코패스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한국에서의 사이코패스 연구는 이제 갓 걸음마를 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헤어 박사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범문화적으로 나타나지만 구체적 양상이나 측정 방법은 문화적 전통이나 규범, 사회적 기대 따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영국과 미국에서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은 죄수들을 상대로 비교 조사를 벌인 D. J. 쿡 박사는, 같은 사이코패스라 해도 문화권에 따라 증상이 발현되는 비율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공격성을 외부로 표출하는 문화권일수록 사이코패스 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행동 양태에도 차이가 나타난다. 이를테면 범죄분석관들에게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은 유영철·강호순을 보면 검거 이후에도 애틋한 부정을 드러냈다. 자는 데 귀찮게 군다며 갓난아이를 벽에 던져버리는가 하면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새 애인과 살고 싶어 자기 아이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외국의 사이코패스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수정 교수는 이것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시사IN 안희태
특정인을 사이코패스로 낙인찍어 봐야 우리 사회의 범죄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위는 강호순을 지켜보러 나온 시민들.
그러나 향후 5년여가 지나면 한국에서도 극단적 자기 중심성에 사로잡혀 자기 자식을 살해하는 사이코패스가 점차 늘 것이라고 이 교수는 전망했다. 보험금을 노리고 요구르트에 독극물을 넣어 딸에게 먹인 ㅂ씨 사건(2005년)은 이런 사이코패스의 등장을 알리는 전조라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정신병인가

강호순 검거 초기, 경찰은 “강씨 심리 상태는 정상이며, 설사 강씨가 사이코패스라 해도 처벌을 받는 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는 사이코패스와 정신 질환을 혼동한 데서 나온 반응으로 보인다.

사이코패스는 정신 질환자가 아니다. 헤어 박사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인식 능력이 부족하거나 현실 감각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정신병자와 다르게 극히 이성적이며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며 원인이 무엇인지 잘 인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의 행동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실행의 결과다. 장석헌 한국범죄심리학회장(순천향대 교수)은, 정신 질환자가 환상이나 환청, 부정적 스트레스 등을 겪는 가운데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달리 사이코패스는 지각 능력이 지극히 정상인 상태에서 일을 저지른다고 지적했다. 고문·살해·토막내기 같은 끔찍한 범죄를 벌일 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정신 질환과 달리 범죄자들이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는다 해서 형을 경감받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은 범죄자에게는 더 높은 형량을 선고하는 법정이 생겨나고 있다(43쪽 상자 기사 참조).

사이코패스는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헤어 박사는 이들 사이코패스가 유전적 특성을 타고난다고 주장한다. 애드리안 레인 교수(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는 사이코패스의 뇌가 정상인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들의 뇌를 단층촬영한 결과, 인간의 감정을 관장하는 전두엽 부위 대사 활동이 정상인과 달리 낮거나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유전적 요인 외에 부모의 방치·학대·잘못된 양육 태도 등 환경적 요인 또한 사이코패스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관련 연구자들은 주장한다.

이렇게 사이코패스로 태어났다 해도 구제받을 길은 있다. 가정·학교·사회 3자가 훌륭한 조력자 구실을 할 때 사이코패스는 비록 인간의 정서를 느끼지는 못해도 학습할 수는 있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문제는 이들 3자의 고리가 깨져나갈 때다. 이혼율과 독신 가구 증가율은 사이코패스 범죄 증가율과 정비례한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연쇄살인 사건이 크게 늘었다. 1960년대 초부터 급증한 이혼에 따라 깨진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10대 후반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한국 또한 2000년대부터 같은 현상을 겪고 있다. 유영철·정남규 등은 1980년대에 해체된 가정에서 자란 사이코패스라 할 수 있다.

사회구조 요인을 중시하는 범죄심리학자와 사이코패스 연구자들이 만나는 것이 이 지점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공감 능력 부족이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야말로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지 않나. 무조건 남을 짓밟고 서야 하니까. 이렇게 보자면 우리 사회 자체가 사이코패스 사회여서 강호순 같은 사생아가 출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라고 강덕지 과장은 말했다. 나아가 상대를 도구로 파악한다는 것이 사이코패스의 또 다른 특징인데, 그렇다면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쾌락의 도구로 여기는 다수의 한국 남성 또한 사이코패스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단 사이코패스 연구자들은, 범죄의 책임은 반드시 범죄자에게 물어야 한다고 선을 긋는다. 범죄 원인을 사회구조적 모순에서 찾는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다 보니 유영철 같은 파렴치범이 “부유층은 각성하고, 여자들은 몸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는 따위의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기 범죄를 정당화하는 일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동일 민족·문화권으로 살아온 결과 한국 사회는 우리 안에 우리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든 말든 우리 가운데 사이코패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이수정 교수는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