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정당이 이념과 강령 중심의 정치를 지향한다지만, 결국 정치는 사람이 한다. 두 진보 정당이 맞닥뜨린 ‘울산 북구 딜레마’를 보면서, 김창현과 조승수라는 두 이름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그래서다.

민노당 김창현 울산시당위원장과 진보신당 조승수 전 의원은 15년째 이어지는 ‘쌍둥이 경력’으로 얽힌 인연이다. 81학번으로 학번까지 같은 두 사람은 1995년 지자체 선거에서 경남도의원과 울산시의원으로 나란히 정치에 입문했다. 1997년 울산이 광역시로 확대·승격하면서 두 사람은 울산광역시의원으로 처음 한 무대에 섰다. 각각 ‘자주파’와 ‘평등파’의 젊은 기대주로 떠오르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1998년 지자체 선거에서 또 한 번 나란히 구청장에 당선하며 경쟁을 이어갔다. 이때부터 ‘동구의 김창현, 북구의 조승수’가 울산 진보 진영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먼저 한 발 앞서 나간 것은 김창현 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2003년 민노당 울산지부장(현재의 시당위원장) 선거에서 조 전 의원을 눌렀다. 현재까지 두 사람이 맞대결한 유일한 기록이다. 하지만 한 해 뒤인 2004년 조 전 의원이 북구에서 국회의원이 되면서 일거에 ‘역전’이 됐다. 조 전 의원은 권영길 의원(경남 창원을)과 함께 민노당에 둘뿐인 지역구 당선자로 이름을 날렸고, 같은 시기에 김창현 위원장은 중앙당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부인 이영순 전 의원(17대 비례대표)을 비롯한 의원단의 활동을 뒷받침했다.

자주파와 평등파의 대표 주자로 성장한 두 사람은 2007년 민노당 분당 국면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조 전 의원이 ‘자주파 종북주의 청산’을 주장하며 선도탈당 대열을 이끌었고, 자주파의 리더 격이던 김 위원장이 이를 반박하고 나서면서 감정의 골까지 깊어졌다.

그러던 두 사람이 2009년 재·보선 국면에서 다시 마주쳤다. 4월에 재·보선이 성사된다면 조 전 의원은 진보신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상태고, 김 위원장은 직접 출마하거나 최소한 후보 결정에 핵심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다. 두 사람에게 상대방을 평가해달라고 묻자 양쪽 모두에서 뼈 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 전 의원은 김 위원장을 두고 “정치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라는, 호평인지 악평인지 모를 평가를 내렸다. 김 위원장은 아예 “조 전 의원은 별로 평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종북주의’라는 표현의 저작권자 아닌가”라고 말했다. ‘15년 앙숙’인 두 사람의 앙금 때문에라도, 울산 북구의 단일화 논의는 한층 험난할 전망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