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언론장악 7대 악법’ 개정에 맞선 ‘언론 총파업’이 지난해 12월26일부터 계속되고 있다.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을 통해 조·중·동 등 신문사와 재벌의 방송사 소유를 가능하게 하는 이번 미디어관계법 개정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방송사다. 그래서 방송사 노조가 ‘언론 총파업’의 주축을 이룬다.

MBC 노조가 전면 파업에 나섰고 SBS 노조도 창사 이래 최초로 파업에 들어갔다. CBS와 EBS는 1박2일 동조 파업을 했으며 KBS 노조도 파업 참가를 논의 중이다.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언론 노동자는 자신들의 파업 소식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방송사 노조의 이번 파업은 2년 전 ‘〈시사저널〉 파업’을 경험한 〈시사IN〉 기자들에게는 남다른 감회를 준다. 그때 〈시사IN〉 기자들이 주장했던 것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었다. 2년 뒤 방송사 노조는 여기에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주장을 하나 더 보태서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후퇴했다는 징표다.

〈시사IN〉은, 마이크를 놓고 카메라를 놓고 편집기를 놓고 언론 자유를 위해 파업을 벌이는 방송 노동자들에게 멍석을 깔아주기로 했다. CBS EBS KBS MBC SBS YTN 등 파업에 동참하거나, 파업을 논의 중이거나, 파업에 준하는 투쟁을 벌이는 6개사 언론 노동자에게 지면을 제공하기로 했다. 자체 기사를 내보내는 대신 지면을 제공하는 것은 이들의 파업에 동조하는 일종의 ‘지면 파업’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방송 노동자 6명이 보낸 글은 모두 편지글 형식이다. CBS 정혜윤 PD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EBS 김진혁 PD는 조·중·동 사장에게, KBS 황응구 PD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MBC 이춘근 PD는 동료인 〈무한도전〉 김태호 PD에게, SBS 윤창현 기자는 시청자에게, YTN 황혜경 기자는 촛불 시민에게 편지를 보냈다.

 


ⓒ시사IN 안희태
EBS 노조의 김진혁 PD.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언젠가 정권이 바뀌어 이른바 ‘좌빨(좌파 빨갱이)’들이 정권을 잡았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좌빨’들이 보기에 조·중·동은 너무나 ‘편향’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편향된 조·중·동을 바로잡기 위해서 ‘신문법’을 개정합니다. 개정된 신문법에 따르면 한겨레와 경향신문과 오마이뉴스(한·경·오)가 대기업과 손을 잡고 조·중·동을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한마디로 넘겨주는 것이죠.

자, 상황은 더욱 흥미로워집니다. 조선일보 사장으로 진중권씨가 선임됩니다. 중앙일보는 거의 매일 ‘노무현 정권의 업적’을 특집 기사로 2면에 걸쳐 싣습니다. 동아일보는 한술 더 떠 뉴라이트 간부의 망언으로 정신적 상처를 입은 이들이 최근 정신과 상담을 받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보상을 요구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사설을 씁니다.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조·중·동 기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옵니다.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언론사, 그 하수인 노릇을 하는 기자로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파업을 합니다.

그러자 조선일보에서는 자사의 기자 수십 명을 징계하고 그 중 6명 정도를 해직시킵니다. 중앙일보는 파업을 주동한 사회부 기자들을 과학부로 인사 이동시켜버립니다. 동아일보는 사옥에 경찰 투입을 요청해 데스크를 점거하고 농성을 하던 기자들을 무력으로 끌어냅니다. 그 과정에서 매일 아침 인사하던 경비원 아저씨에게 두들겨 맞은 기자 한 명은 실신합니다.

만약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편향된 조·중·동을 바로잡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 정당성을 떠나 그냥 잠깐 떠올려만 보세요. 이런 일이 상상이나 되십니까?

‘언론의 정권파 언론화’ 막으려고 총파업

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러한 상상 자체가 매우 언짢습니다. 그건 제가 조·중·동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조·중·동이든 한·경·오든 MBC든 KBS든 여타 그 어느 언론사든 상관없이 정권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언론사를 없애거나 그 반대편에게 넘겨주는 것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상식 이하의 말도 안 되는 짓이죠.

따라서 만약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되고, 조·중·동 기자들이 파업을 해서 거리로 뛰쳐나온다면 저는 그 누구보다 그들을 지지할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그들과 ‘논조’와 ‘시각’을 가지고 다투고 싸울지라도 저는 한겨레 같은 조선일보, 경향신문 같은 중앙일보, 오마이뉴스 같은 동아일보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모든 정권은 스스로에게 유리한 언론을 원합니다. 좌파 정권이든 우파 정권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그 속내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사를 통째로 빼앗아서 그 반대편에게 주는 몰상식한 짓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짓을 한 정권은 오직 독재정권뿐이었죠.

독재정권이 그런 짓을 했던 것은 ‘편향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좌든 우든 상관없이 자기 입맛에 맞는 언론사를 만들면 그뿐이었죠. 따라서 독재정권 아래 길들여진 언론은 시간이 지나 정권이 바뀌면, 다시 새로운 정권을 위해 충성을 다하게 됩니다. 어제는 우파 언론이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좌파 언론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좌도 우도 아닌 ‘정권파’ 언론이 되는 것이죠.

언론 총파업은 언론이 ‘정권파’ 언론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단지 현 정권에 대한 저항이 아닌 거죠. 앞으로 있을 모든 권력에 대한 저항, 언론이 그 모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저항, 권력의 시녀였던 독재 시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저항입니다.

그러니 언론 총파업은 조·중·동의 MBC만 막기 위함이 아니라, 진중권의 조선일보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때요, 편향되어 있지 않고 공평하죠?

기자명 EBS 김진혁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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