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관뒀다. 이직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나왔다. 남의 돈을 받는 만큼의 짜증과 지겨움이야 당연히 있었지만 새삼스러운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퇴사를 고민하면서 퇴사는 가족 문제라는 걸 체감했다.

대부분 기혼자인 선배들은 내가 결혼도 안 하고 자녀도 없으니 한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느냐 하기도 하고, 심지어 부러워하기도 했다. 한편 아직 결혼하지 않은 후배는 빛 좋은 개살구인 회사라도, 번듯한 직장이 없으면 ‘결혼 시장’에서 밀려난다고 주장했다. 결혼을 해서 혹은 안 해서 회사를 참고 다녀야 한다면 나처럼 철없는 사람 아니고서야 회사를 때려치울 수가 없다.

ⓒ정켈 그림


한국 사회에서 안정적이고 번듯한 직업은 ‘정상적인’ 가족의 조건이다. 그런데 번듯한 직업이 한국 사회에서 특권이다 보니 ‘정상가족’ 또한 특권이 되었다. 번듯한 직업을 갖출 때까지 결혼·출산 등 가족 형성을 미룬다. 그럴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특히 서울처럼 일자리 생태계가 복잡한 도시에서는 직장을 잃어도 이런저런 일들을 전전하며 가족이 유지될 수는 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도시에서는 도시의 일자리가 통째로 없어지기 때문에 가족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흩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지금 투쟁하고 있는 거제 대우조선해양과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처한 위기다. 이들의 투쟁을 바라보는 대중의 반응은 불과 9~10년 전인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투쟁에 비하면 더없이 차갑다. 지난 10년 사이 한국 사회의 노동환경은 더 불안정해졌고, 사람들은 정리해고 위기에 처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는 ‘아직도’ 대기업 정규직인 것을 부러워한다.

회사에 있으면서 뜬금없이 학위나 전문직 자격증을 따겠다거나, 사업을 하겠다고 퇴직하는 사람들을 봤다. 그들이 떠난 뒷이야기로 ‘배우자가 돈을 잘 번다더라’ ‘원래 금수저라더라’ 하는 말들을 들었다. 부럽고 씁쓸했다. 월급 없이는 몇 달도 버티지 못할 거라는 계산에 오늘도 참아보자는 결론을 지난 몇 년간 내려왔다. 평생직장은 없다며 늘 새롭게 도전해야 한다고들 떠들지만, 도전 자체가 돈 있는 가족의 특권인 셈이다. 돈 있는 집안은 서로에게 투자하며 가족 전체의 부를 키워나가는 반면, 제때 도전하지 못하고 밀려날 때까지 버틴 노동자들은 대부분 더 안 좋은 직장으로 옮기게 된다.

20대에 정한 직업으로 평생 일할 수는 없어

프리랜서 작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사실 불안하다. 그렇지만 이나마 불안하게라도 퇴직 후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행운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부모의 헌신으로 대학을 나왔고,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고 7년2개월간 일하며 얼마간은 버틸 수 있는 돈도 모았다. 맨땅에 헤딩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부양가족이 없고, 부모도 아직 건강하고 돈도 번다. 내 허술한 도전의 발판은 이 모든 운과 특권을 긁어모은 것이다.

100세까지 사는 게 보편적인 삶이 된다면 우리는 몇 살까지 일해야 할까. 20대에 정한 직업으로 평생 일할 수는 없다. 몇 번은 쉬어가야 하고, 원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밖에 없다. 쉬면서 스스로를 가다듬고 새로운 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보편적인 노동권으로 가져올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퇴사 여부가 가족의 사정에 달려서는 안 된다.

기자명 황두영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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