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8년 7월, 독일과 프랑스 접경 지역인 스트라스부르에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그 시작은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한 여성으로부터였다. 당시 여러 기록에 따르면, 7월14일 트로페아(Troffea) 부인이 거리에 나와서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배경음악은 당연히 없었고, 그저 춤을 추었을 따름이다. 보다 못한 남편은 아내에게 그만하라고 간청했으나 그녀는 남편을 무시하고 춤을 멈추지 않았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어둠이 깔리자 허기와 피로에 지친 트로페아 부인이 쓰러졌다.
트로페아 부인은 왜 춤을 추었나
다음 날에도 그 부인은 거리에 나왔다. 사흘째 이유 없는 춤사위를 반복하니 다른 사람들도 몰려와 그녀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집단 춤’은 일주일 넘게 계속되었고 보다 못한 당국이 개입하기에 이르렀다. 트로페아 부인은 스트라스부르에서 3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성비투스 성당으로 보내졌다. 치료 명목이었다.
어째서 성비투스일까? 성비투스는 시칠리아 출신으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성인이다. 아버지 명을 어기고 크리스트교 신앙을 고수하다가 끓는 물에 들어가는 등 온갖 고문을 당하지만 천사가 비투스를 납치하여, 고향으로 데려갔다는 ‘설’이 있다. 그가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사망한 때는 1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물론 성비투스의 초상화를 보면 어른과 같은 모습이다. 르네상스 시기는 어린이 얼굴도 어른의 지혜가 깃들었다 하여 어른 모습으로 그렸다.
가톨릭교회는 성인의 유골이나 유품을 최대한 널리 퍼뜨리는 전통이 있다. 일종의 ‘핫스팟’을 여기저기 설치하는 개념이다. 비투스의 유골 역시 유럽 각지로 보내졌다. 그리고 히스테리 관련 병에 걸린 이들이 비투스 기념 성당에 가면 치료가 되더라는 ‘전설’이 만들어졌다. 치료가 끝나면 감사의 의미로 춤을 췄다.
춤을 추던 트로페아 부인도 성당에 가면서 치료가 됐다. 이제 이 춤은 ‘비투스의 춤’이라 불린다. 트로페아 부인에게 전염된 상태로 춤을 추는 이들은 여전히 많았고, 춤추는 장소를 따로 만들어주면 스스로 지치지 않겠는가 하는 발상도 나와서 당국은 춤추는 홀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춤은 점점 더 전염됐다. 기록에 따르면 한 달 사이 400명이 전염됐다. 당국은 댄스홀을 폐쇄하고 결혼식 같은 예외적인 행사 외에는 아예 춤을 금지했다. 병세가 심각한 이들을 골라 트로페아 부인처럼 비투스 성당으로 보내기도 했다. 표시를 위해 손에 작은 십자가를 쥐게 하고 빨간 신발을 신겼다.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가 여기서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트라스부르의 춤 전염은 한 달 정도 지속되었다고 한다.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진짜로 남편에게 불만이 많아서 그랬을까? 춤에 동참한 이들 중에는 여자들이 많아서 그런 소문도 돌았다. 중세 유럽의 명의 파라셀수스는 춤 전염병을 조사한 이후 음탕한 욕망과 상상, 신체적인 발작을 주된 이유로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곡물의 곰팡이 때문에 발작이 생겼고 그 발작을 없애기 위해 춤을 췄다고도 하는데, 이 가설은 며칠 이상 지속됐던 춤 전염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저조한 수확, 불안한 정치, 매독의 출현 등 여러 정치·사회적 문제가 발작적인 춤으로 이어졌다는 게 ‘정설’이긴 하다. 비슷한 현상이 1960년대 탄자니아에서도 있었다고 하는데, 현대의 사례를 들자면 ‘레이브 파티’가 아닐까 싶다. 물론 최근 개봉한 영화 〈미드소마〉(2019)에 나오는, 모두가 쓰러지고 한 명만 남을 때까지 추는 춤도 이 ‘전설의 춤바람’의 명맥을 잇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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