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하나(김나연)의 집은 전쟁터다. 엄마는 매일 뾰족한 말로 아빠를 찌르고 아빠는 늘 날선 표정으로 짜증을 난사한다. 그럴 때마다 방문 닫고 몸을 숨기는 하나. 그러나 저격과 응사의 험한 언어는 언제나 너무 쉽게 방문을 넘어온다.

이럴 때 아이들은 참호를 판다. 자신만의 방공호를 만들어 숨는다. 그 안에서 잠시나마 열두 살의 여름을 되찾는다. 내 편이 없는 집에서 필사적으로 자기편을 만들어낸다. 누구에게는 책이, 누구에게는 혼자 하는 상상이, 그리고 또 누구에게는 곁에 있는 친구가 바로 그 참호다. 믿고 의지할 내 편이다.

열 살 유미(김시아)와 일곱 살 유진(주예림). 하나가 운 좋게 찾아낸 참호. 세상에서 하나뿐인 하나 편. 그들을 처음 만난 건 마트였다. 엄마 대신 장보러 나온 하나가 엄마 없이 시식 코너를 서성이는 자매를 보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골목을 혼자 걷는 아까 그 꼬마랑 마주쳤다. “얘! 너 왜 혼자 있어? 언니랑 같이 온 거 아니었어?” “응. 근데 갑자기 언니를 잃어버렸어.”


그렇게 시작된 여름이었다. 언니 대신 언니가 되어 아이를 보살핀 반나절. 며칠 뒤, 동네에서 다시 마주친 유미는 황급히 하나를 잡아끌어 집으로 데려간다. 끙끙 앓고 있는 동생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언니 앞에서 하나가 유진이의 작은 손끝을 바늘로 따준다. 손톱 밑에 이슬처럼 맺힌 검은 피. 꺼억, 아이가 토해낸 트림. 까르르, 다 같이 웃는 아이들.

하나는 엄마 아빠가 이혼할까 봐 겁난다고 했다. 유미는 엄마 아빠가 또 이사를 가자고 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우리 집은 진짜 왜 이러지?(유미)” “우리 집도 진짜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하나)” 이렇게 서로 마음이 통하더니, 이혼과 이사를 막아낼 작전을 짠다. 세 아이, 아니 어느새 세 자매가 되어버린 녀석들의 잊지 못할 여름방학이 깊어간다.

‘슬픈 기억’ 떠올리게 하는 ‘기쁜 영화’

3년 전 초여름, 윤가은 감독의 전작 〈우리들〉(2016)을 보고 나는 이렇게 썼다. “선이의 손톱을 예쁘게 물들인 봉숭아물처럼, 올해 본 한국 영화 가운데 내 마음을 가장 예쁘게 물들인 〈우리들〉을 보는 내내, 나는 열한 살이었다. ‘부딪히고 넘어져 깨지면서도 한 뼘 두 뼘 앞으로 나아가려던 어린 나의 발자취’를 따라 선이와 함께 걷는 90분이었다(〈시사IN〉 제457호).”

나쁜 건 ‘재탕’이라고 부르지만 좋은 건 ‘재회’라고 부른다. 〈우리 집〉은 〈우리들〉이 선물했던 그 행복한 시간과 재회하는 영화다. 이번에도 관객은, 하나였고 유미였던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어른이 곁에 없거나 있으나마나 할 때, 집이 쉼터가 아니라 전쟁터일 때, 그때마다 몸을 숨겨 한숨을 돌리던 어린 날의 참호. 모든 게 뜻대로 될 것 같았는데 결국 아무것도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던 수많은 ‘그해 여름’들. 떠오르는 게 많아서 슬픈 영화였다. 슬픈 기억이 떠오르는데도 이상하게 기쁜 영화였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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