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은 ‘최고령 걸그룹’이라는 4인조 셀럽파이브에서 (리더는 아니고) ‘주장’을 맡았다. 최근 셀럽파이브의 예능 〈판 벌려:이번엔 한복판〉에서 센터(한복판) 자리를 놓고 모든 멤버가 동등하게 경쟁하기로 했기에 주장 자리는 내려놓은 상태다.

셀럽파이브는 송은이가 ‘비보TV’를 중심으로 펼치는 다양한 ‘판’의 하나다. 여성 예능인들과 함께 새로운 판을 벌려나가는 그의 기획력과 감각에 대해서는 제법 이야기가 다뤄졌다. 셀럽파이브에 한정하자면 김신영의 지분이 그 못지않다. 데뷔곡 ‘셀럽이 되고 싶어’는 원래 일본 도미오카 고교의 여학생들이 과장된 1980년대풍 의상을 걸치고 ‘칼군무’를 춘 것이 원전이었다. 이를 본 김신영이 ‘하고 싶다’고 제안하면서 팀을 구성했다. 그가 담당한 한국어 번안 가사는 부조리하다. 영문법도 논리도 시원하게 깔아뭉개며 ‘느낌적인 느낌’으로 밀어붙이는 감각적인 부조리는 분명 케이팝의 미학에 가깝다.

이는 사실 김신영의 개그 스타일과도 닮아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자식들이 보고 싶으면서도 시골에 내려올 것 없다고 하는 할머니들의 모순적인 수다를 즉흥으로 쏟아내기도 하고, 케이팝 유행가를 구성진 판소리 조로 불러재끼기도 한다. 놀라운 개인기를 펼칠 때 그는 덤덤하다. ‘이제부터 웃기겠다’는 표정이나 준비 자세조차 없다. 그렇게 터무니없는 맥락으로 넘어간다. 최소한의 공통분모만을 발목에 묶은 채 번지점프 하듯이. 양로원이라는 설정으로 EDM 디제잉을 하고, 디제이의 멘트로 밑도 끝도 없는 고사성어를 기세 좋게 외쳐대는 식이다.

ⓒ시사IN 양한모

 

그가 대뜸 시작하는 상황극이나 게임의 룰은 그래서 곧장 부조리하다. 항의하는 이도 있지만 대체로 통하지 않는다. 엄혹할 정도로 무덤덤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가 이 상황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만 하면 모두가 견뎌내지 못하고 휘말려 들어간다.

그것은 셀럽파이브의 미학이기도 하다. 엄밀히 분류하자면 아이돌을 패러디한, 혹은 아이돌에게 영감을 얻은 코미디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체력을 과도하게 소진하도록 의도된 안무도 어찌 보면 자학 개그에 가깝다. 익살스럽게 부르는 코미디송은 아니다. 차이는 (후속작 ‘셔터’는 아쉽게도 덜했지만) 웃음기 하나 없는 본격파 악곡이나 각고의 노력으로 맞춘 칼군무, 그리고 더없이 진지한 얼굴과 열창 같은 데서 온다. 태도와 완성도가 차원의 균열을 일으킨다. 보는 이들은 그 안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김신영의 개그처럼.

지난해 1월 데뷔한 셀럽파이브는 연예계에 대대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수많은 아이돌, 특히 걸그룹들이 이들의 안무를 따라 하거나 환호를 보내며 애정을 표했다. 약간 농담을 하자면 ‘걸그룹들의 걸그룹’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걸그룹을 표방하고 이를 실제로 달성해내는 ‘걸그룹에 관한 걸그룹’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 이들이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제공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형화되기 쉬운 걸그룹 세계에서 진지한 열정과 빛나는 재기를 무대에 올리고 환호받는 모습은 어쩌면 아이돌들과 우리 사회가 꼭 보고 싶은 새로운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것이 셀럽파이브와 김신영이 일으키는 또 다른 차원의 균열이다.

기자명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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