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국토부)는 2015년 11월,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부지로 성산읍을 최종 결정했다. 국토부는 제주도에 또 하나의 제주 국제공항이 필요한 근거로 2045년까지 공항 수요자가 4500만명으로 늘어나리라는 자체 예측치를 내놓았다. 하지만 제주에 제2공항을 짓는 것을 반대하는 도민들은 현 공항을 확충하는 대안을 지지하는 동시에, 국토부가 제주에 건설하려는 제2공항의 성격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한다.

국토부가 성산읍에 지으려는 제2공항의 성격을 옳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기나긴 공식 명칭을 가진, 서귀포시 강정동의 제주해군기지부터 거론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월에 착공해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2016년 2월26일 준공식을 한 제주해군기지가 처음 검토된 때는 김대중 정부 말기였다. 김대중 정부는 애초 강정이 아닌 화순에 해군기지를 지으려고 했는데, 이때 가장 급진적인 반대 주장을 편 당사자는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제주도당이었다. “화순항의 해군기지 계획은 필리핀과 오키나와 등지의 해군기지를 상실하게 될 미국이 동북아에 군사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군사 패권주의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 실현에 제주도가 이용물이 될 수는 없다(2002년 11월12일, 한나라당 제주도당 논평).”

ⓒ이지영 그림

 

노무현 정부가 최초에 입안한 제주해군기지와, 그 뒤를 이어 이 사업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의 해군기지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국회 예산안을 통과할 때 이 사업은 ‘민군복합형 기항지’로 위상이 설정되었다. 이는 민항이 중심이고, 군항은 모항이 아니라 필요할 때 임시 기항하는 형태였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 들어 군항 중심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이처럼 사업의 성격이 변질되자 노무현 정부의 의사 결정자였던 한명숙·이해찬·유시민 등이 뒤늦게 반대 의사를 밝히고 나섰으나, 내로남불일 따름이었다. 정욱식은 〈강정마을 해군기지의 가짜 안보〉(서해문집, 2012)에 이렇게 썼다. “오늘날 민주통합당은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적어도 절차적 문제의 원죄는 노무현 정부에 있었다. 1900여 명의 마을 주민 가운데 불과 87명이 모여 표결도 없이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한 시점은 참여정부 때인 2007년 4월26일이었다.”

한나라당 제주도당이 잘 짚었듯이, 제주해군기지는 아시아로의 귀환을 천명한 미국이 동아시아에 필요로 한 더 많은 기지와 연관되어 있다. 제주 인근 해역은 태평양에서 서해로 들어오는 입구이자 서해에서 서태평양으로 진출하는 출구에 해당된다. 2012년 8월에 발행된 미군 잡지 〈성조〉는 제주도가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요충지(choke point)이자 전략적 지점(strategic point)”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이 해역의 관문에 들어선 제주해군기지가 유사시에 자국의 해상 수송로를 위협하고 자국의 연안을 봉쇄할 것이라는 중국의 우려는 괜한 것이 아니다.

정욱식은 “제주해군기지는 남중국해-타이완해협-동중국해-서해로 이어지는 미·중 간 ‘갈등의 바다’의 전략적 요충지에 건설되고 있다”라면서, 제주도에 미군 항모가 기항할 수 있는 군항을 만든 것은 제주도 도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한국을 미국과 중국의 분쟁지역으로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공식 결정한 직후부터, 이어도에 관한 중국의 관할권 주장이 높아졌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 68~78쪽을 보시라.

제2공항, 군사공항으로 전용될 수도

새 공항 건설과 유지에 뒤따를 자연환경 파괴와 과잉관광 (오버투어리즘)이 불러올 주민 생활권 침해에 이르기까지, 제주도 도민이 성산읍에 제2공항을 짓는 데에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가운데는 민항 중심에서 군항으로 변질한 제주해군기지처럼 제2공항이 군사 공항으로 전용될 가능성도 있다. 제주해군기지는 공군의 엄호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광장이 되는 시간〉 윤여일 지음, 포도밭출판사 펴냄

2018년 12월19일, 자신의 고향과 집이 활주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난산리 주민 김경배씨가 제주도청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투쟁을 했다. 이것을 계기로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도민들이 제주도청 앞에 하나둘씩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사회학자 윤여일은 이렇게 세워진 천막촌을 보고 〈광장이 되는 시간〉(포도밭출판사, 2019)을 썼다. 그는 제주도청 앞의 천막촌을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갖가지 점거 투쟁과 연결시키면서, 점거 투쟁이 만들어낸 ‘대중의 힘(민주주의)’을 생각한다.

전북 새만금 간척지 개발(1998~ ), 부안 핵폐기장 건립(2003~ ),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확장(2003~ ), 경남 밀양 송전탑 설치(2008), 제주 강정해군기지(2010~ ), 경기도 두물머리 4대강 사업(2012), 경북 상주 사드 배치(2016~ ) 등, 중앙정부가 지방에서 벌인 대규모 국책사업은 지역민의 의사 수렴 과정을 생략한 해당 부처의 밀어붙이기와 자본의 이해에 따라 강행되었다. 그럴 때마다 주민들은 자신의 삶터와 일터를 점거하고 ‘국가의 테러’에 대항했다. 매우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장소를 빼앗기게 되어서야 주민들은 비로소 ‘이 장소는 누구 것인가?’라고 묻게 되며, 나아가 “무엇이 정치적 의제가 되어야 하는가. 무엇이 판단의 척도이고 누가 그것을 정하는가. 당사자는 누구인가. 주민 됨이란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점거를 통해 길러진 ‘대중의 힘’은 강정을 ‘제2의 평택’이라 부르고 밀양을 ‘제2의 강정’이라 부르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전국을 ‘제2의 ~’으로 연결하면서 그동안 중앙정치에 가려 있었던 지방민을 새로운 정치 주체로 만든다.

국토부는 올 10월께 제2공항 기본계획을 고시할 예정이다. 한번 고시된 국책사업은 부처의 자존심 때문에라도 번복하기 힘들다. 그러기 전에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2공항 유치를 재고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대체로 서울 사람들은 지방민을 도탄에 빠트리는 무리한 국책사업에 무감각하고, 육지 사람들은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국책사업에 더욱 무관심하다. 그들에게 제주도는 관광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관광지는 관광지의 모든 것이 관광의 대상이고, 그곳 주민마저 그러하다. 그들은 제주도에 환경과 안전에 대한 욕구를 가진 평범한 생활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 ‘제주도에 관광객이 늘어나 제2공항이 만들어진다는데 뭐가 불만이야?’라고 말하는 육지 사람도 있지만, 제주도민 전체가 관광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닌 데다, 대부분의 관광 수입은 육지로 간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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