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별하지 않는다고 믿는 이들에게
  • 임지영 기자
  • 호수 623
  • 승인 2019.08.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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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교수(사진)의 첫 단독 저서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다. 한 달 만에 6쇄를 찍었다. 책은 차별과 평등에 관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시사IN 조남진김지혜 교수의 첫 단독 저서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다. 한 달 만에 6쇄를 찍었다. 책은 차별과 평등에 관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고등학생 때였다. 입시를 준비하던 겨울,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따뜻한 교실에 모였다. 난로가 있었다. 김지혜 교수(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상한 마음이 들어 교실을 나왔는데 교사가 왜 안 들어가느냐고 물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감각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한참 뒤, 홈리스 아동들을 만났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0년 넘게 가족과 학교를 벗어나 중첩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들이 나보다 인생을 열심히 살지 않은 건가?’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무력감을 느꼈다. 사회가 바뀌어야 하는데 왜 사람더러 바뀌라고 할까? 인권과 차별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 시점이 언제인지 묻자 김 교수가 정확히는 모르겠다며 학창 시절의 기억을 들려주었다.

얼핏 보면 튀는 이력이다. 대학에서 계산통계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학으로 석·박사를 받은 뒤 미국에서 로스쿨 학위를 받았다. 서울특별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에 몸담았고 헌법재판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강릉원주대 교수로 임용된 지는 5년 정도 되었다. 그로서는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이력이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통계는 적성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2학기 때 사회복지학개론을 들었다. 사회 이슈를 다루는 게 재밌어서 부전공을 신청했다.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장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동상담치료센터에 들어갔다. 현장에서 의문이 들면 연구를, 연구를 하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현장을 찾았다. 제도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로스쿨에 갔다. ‘법을 바꾸는 도구’라 헌법을 공부했다. 좁은 영역이지만 끊임없이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경험이었다.

그의 첫 단독 저서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다. 7월17일 출간된 후 한 달 만에 6쇄, 1만4000부를 찍었다. 당황스럽다. 그는 이유가 뭔지 오히려 묻고 싶다고 했다. 쓸 때는 소수자 관련 이슈이기도 하고 무거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차별이 본인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삶 속에서 차별을 받기도 하고 하기도 한다면 안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다. 우리 안에 쌓아온 정의감, 거기에 평등과 차별도 중요한 의제로 놓여 있는데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본인을 포함해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에 관해 그는 이야기한다.

김지혜 교수가 서문에 언급한 ‘결정장애’ 예시가 공감을 샀다. ‘차별 선동’에 관한 주제로 논문을 썼던 그는 어느 날 전문가 자격으로 혐오 표현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해 ‘결정장애’란 말을 썼다. 참석자 중 한 명이 왜 그 단어를 썼느냐고 물었다.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을 의미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연결되었다. 충격을 받았고 부끄러웠다. 동시에 저항하는 마음도 생겼다. 좀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소수자 집단을 향한 모욕적인 말들을 수집했다. 이주민에게 “한국인 다 되었네요”라거나 장애인을 향해 “희망을 가지세요”라고 말하는 건 모욕이 될 수 있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학자들은 ‘평범한 사람이 가진 특권’을 발견했다. 일부가 가진 권력만 특권이 아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시외버스를 타는 일도 특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등이라는 대원칙에 동의하고 차별에 반대하지만 특권을 가진 집단은 차별을 덜 인식한다. ‘국가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쳐왔지만 주류로서의 특권을 인식하지 못해 차별적 태도를 보이는 진보 정치인’이 대표적이다. 그의 수업 중 한 학생이 말했다. ‘장애인이 버스를 타면 시간이 더 걸리니까 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비장애인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공정성’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다.

서는 자리에 따라 다수자가 되기도 하고 소수자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예멘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슬람의 성차별적 문화를 지적했다. 여성에 대한 성범죄 가능성이 높다는 예견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여성은 약자였다. 하지만 김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당시 한국인 여성은 소수자 집단인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주류 집단인 국민으로서 권력을 행사했다. 그런 와중에 45명의 여성 예멘 난민은 지워졌다. “약자의 처지에서 다른 소수자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 그동안 많은 공포와 싸워온 측면에서 이해가 간다. 그 공포가 난민의 처지에서 겪는 또 다른 공포와 연결되지 않은 건 여러 소수자의 처지를 교차해서 보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책의 제목 후보 중 하나는 ‘웃자고 하는 말에 왜 그래?’였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유머나 농담의 효과를 강조한 표현이다. 흑인 분장이 대표적이다. 사회규범 때문에 잘 드러내지 못하다가 누군가 비하성 유머를 던지면 그래도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차별을 용인하게 된다. 똥남아(동남아시아인), 똥꼬충(게이), 급식충(아동·청소년), 틀딱충(노인), 맘충(엄마) 같은 말이 그렇게 탄생했다. 김지혜 교수는 강의를 할 때 스무 개 이상의 혐오 표현을 늘어놓는다. 학생들은 어떤 건 굉장히 기분이 나쁘고 어떤 건 덜 나쁘게 받아들인다. 김치녀나 맘충 같은 말엔 기분이 나쁘고 틀딱충은 그런대로 괜찮을 수 있다. 자신과 관련되어 있을수록 불쾌하다. 민감도가 다르다는 걸 인식하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도 한다.

ⓒ시사IN 신선영지난해 6월 열린 예멘 난민 반대 집회.

 

‘노키즈존’은 차별인가 아닌가

책은 차별과 평등에 관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국제결혼 중개업체의 홈페이지에 국가별 신부들의 장점을 버젓이 드러내는 행태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처럼 어떤 차별은 공정하다는 생각에 깔린 능력주의, 그걸 배우는 현장이 학교라는 점, 법에 항거하기 위해 법을 위반하는 일, 성소수자 퍼레이드 참가자에 대한 폭력을 촉구하는 성직자,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진짜 한국인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용어로 쓰이는 ‘다문화’ 등 하나하나 쉽지 않은 주제다. 책을 덮은 뒤에도 두고두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노키즈존(어린이 입장을 금지하는 업소)과 관련한 반응이 연구자로서 가장 흥미로웠다. 출판사 SNS를 통해 올라간 카드뉴스에 엄청난 댓글이 달렸다. 김 교수는 책에서 1960년대, 흑인은 받지 않겠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낸 미국의 모텔 주인을 언급하며 내국인 전용 찜질방이나 노키즈존을 비판한다. 어떤 손님이 진상이라고 해서 그 집단 모두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게 정당한지 묻는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논의도 흥미롭다. 남성용, 여성용, 백인용, 유색인용, 장애인용, 남성 장애인용, 여성 장애인용 화장실이 차례로 등장했다. 트랜스젠더는 어떨까. “화장실은 익숙하지만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을 알려주는 중요한 도구다. 여성 화장실에 갈 때마다 여성임을 자각하게 된다. 전혀 다른 화장실을 기획할 수도 있다. 평등을 얘기할 때 많이 빠지는 오류인데 지금 시스템에 이슈를 끼워 맞추려고 한다.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도 버스 자체를 새로 디자인할 수 있다.”  

단행본 작업을 하며 즐거웠다. 사건 사례부터 이론까지 폭넓게 찾는 과정이었다. 특히 헌법재판소 결정문이나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 등 길지 않은 문장 속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에 용감하다는 말을 들었다. 누군가는 혐오와 차별, 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을 걱정하지만 김 교수는 평등해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소수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게 당황스러운 사람도 있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사람도 있다. 역사는 많은 논쟁 속에서 이루어졌다. 오히려 희망적으로 볼 수도 있다.”

혐오·차별은 평등해지면서 생기는 현상

왜 평등해야 할까? 불평등은 고단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불평등은 차별당하는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고 소수자의 위치에 놓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평등을 제로섬 게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평등이 이루어지면 남성에게는 불리할 거라 생각하고, 학생이 권리를 가지면 교권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김 교수는 “평등으로 나아갈 때 누군가는 전보다 나아질 게 없다. 가치를 평등에 둔다면 좋아지는 거지만 얼마나 더 유리한가에 두면 잃는 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차별금지법을 다룬다고 해 부랴부랴 챙겨 보고 있다. 일상과 관련된 넓은 범위의 법안인데 성소수자만의 이슈로 오해되고 있다. 성소수자 때문에 반대한다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게 분명하므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누군가는 사회적 합의를 말한다. ‘다수결 제도의 한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인 차별을 다수결로 해결하려는 게 의미 있을까.’

8월14일 북토크 자리에서 김지혜 교수가 처음으로 독자들을 만났다. 150여 명이 모였다. 관객들의 질문이 다양했다. 커밍아웃을 한 성소수자가 소수자로서 개인과 공공이 싸워야 할 몫의 경계에 대해 물었고, 초등학교 교사가 다문화 가정 학생의 피해 의식에 관해 질문했다. 정치적 올바름을 이행하려다 백래시를 경험한 학생회 구성원이 이런 시도가 오히려 혐오를 확산시키는 게 아닌지 물었다. 질문 자체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건 책도 마찬가지다. 관객석에서 종종 응원의 박수가 나왔다.

누군가가 물었다. “평소 ‘왜 이렇게 예민하냐, 피곤하게 사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럴 때 어떻게 마음을 다잡는지 궁금하다.” 김 교수는 취미인 클라이밍을 한다고 했다. “저 역시 순발력 있게 얘기하지 못한다. 다만 꼭 지키는 건 적어도 웃지는 말자는 것. 그게 최소한의 결심이다. 상대가 내 앞에서 그렇게 얘기하더라도 나중에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할 거라고 믿어버린다.” 그 역시 ‘결정장애’를 지적당했을 때 바로 이해된 게 아니다. 일주일 걸렸다. 눈앞에서 반성하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대화는 아니다. 그는 강조한다.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없다고.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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