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선 한국의 홍콩인들
  • 김영화 기자
  • 호수 623
  • 승인 2019.08.2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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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대입구와 동대문 등에서 재한 홍콩인들의 홍콩 지지 시위가 열리고 있다. 해외에서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이들이 홍콩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
ⓒ시사IN 윤무영8월13일 서울 종각 앞에서 진문원, 종효분, 하자준 씨(왼쪽부터)가 오른쪽 눈을 가리는 포즈를 취하며 홍콩 경찰의 무력 진압을 규탄하고 있다.

 

“한쪽 눈을 가리고 서 있어도 되나요?” 카메라 앞에 선 종효분씨(32)가 물었다. 8월11일 홍콩에서 현지 경찰이 쏜 ‘빈백건(bean bag gun·알갱이가 든 주머니탄)’ 탄환에 맞아 한 여성의 오른쪽 눈이 실명 위기에 처했다. 홍콩 시민들은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기 위해 안대나 붕대로 한쪽 눈을 가렸다. 하자준씨(33)와 진문원씨(22·가명)도 오른쪽 눈을 가렸다. 세 사람은 홍콩인이고 현재 한국에 산다.

6월9일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이하 송환법)에 반대하기 위해 홍콩 시민 100만여 명이 모인 이후 8월15일 현재 10주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세 사람도 그날 이후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달고 산다. 홍콩 상황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사진과 영상 속 홍콩은 평소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세 사람에게도 마음의 빚이 쌓여갔다. 유학생 진문원씨는 “저보다 어린 학생들이 체포되고 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무기력했어요”라고 말했다. 케이팝을 좋아하고 정치가를 꿈꾸는 그는 3년 전 한국에 왔다. 학사 일정 때문에 당장 홍콩으로 갈 수는 없었다.

6월11일부터 7월27일까지 서울 홍대입구와 동대문 등지에서  ‘홍콩 지지’ 시위가 아홉 차례 열렸다. ‘반송중(反送中·중국 송환 반대)’이라는 피켓을 든 채 침묵시위를 하거나, 송환법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매번 주최자가 달랐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중심으로 모인 재한 홍콩인들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이끌었다. 통번역부터 디자인, 배너 제작, 홍보, 집회 신청까지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국제부 간사로 일하는 종효분씨도 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한국 생활 7년째다.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후 지난해 한국에 들어온 하자준씨도 피켓을 만들고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각 나라에 홍콩의 상황을 알리고 지지를 얻으면, 홍콩 정부에도 분명 압박이 될 거예요.”

ⓒ장진영8월11일 홍콩 침사추이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6월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 100여 명이 모였다. 그간의 집회 중 최대 규모였다. 이날 송환법 반대 서명운동에 한국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 4000여 명이 동참했다. 7월21일 시위대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이 가해졌던 ‘백색 테러’가 발생한 다음 날 서울 홍대입구역에서 종효분씨는 예정에 없던 1인 시위를 했다. 퇴근 시간에 ‘7월21일 홍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었다.

이들이 거리에 나오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해외에서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하는 진문원씨는 캠퍼스에서 늘 조심스러웠다. 유학생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다. 홍콩 유학생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기 어려운 환경이다. 한번은 출신을 묻는 교수의 질문에 홍콩에서 왔다고 대답했다가 바로 야유와 비난 세례를 받았다. 뒤에서 누군가가 “홍콩은 중국이다”라고 크게 외쳤다. “홍콩에서 왔다고 말하면 공격을 받아요. 제 친구도 그게 싫어서 ‘중국 홍콩’에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장진영8월10일 시위대가 도심을 향해 행진하자 경찰이 최루탄을 쏘고 있다

 

집회 현장에서 중국인과 부딪치기도

6월15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반송중’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던 하자준씨 앞으로 중국인 3명이 다가왔다. 이들은 “외국까지 나와서 왜 우리(중국인)를 부끄럽게 만드느냐”라고 물었다. “중국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말하라”며 언성을 높였다. 위협을 느낀 하씨가 경찰을 불렀다. 지난 6월 서강대에서는 홍콩 시위의 배경을 설명하는 포스터가 교내 게시판에 붙자 중국인 유학생들이 이를 회수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진문원씨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우리는 중국에 저항하는 게 아니에요. 중국 정부가 홍콩과 약속했던 일국양제, 표현의 자유, 인권을 위해 싸우는 겁니다.” 2017년 기준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은 모두 218만498명이다. 이 중 재한 중국인은 33만8345명이고 홍콩인은 1만3303명이다.

ⓒ장진영8월11일 홍콩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한 여성이 송환법 반대 선전물을 펼쳐놓고 있다.

재한 홍콩인들의 구심점은 SNS였다. 홍콩 상황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관련 채널도 만들었다. 진문원씨는 지난 6월 ‘재한 홍콩유학생’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홍콩 시위와 관련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번역해 올렸다. 한국 언론이 다루는 홍콩 시위는 ‘폭력 발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지난 10주 동안 그런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뉴스를 통해 알기 어려운 뒷이야기를 올렸다. 시위가 끝난 뒤 홍콩의 일부 지하철역에는 여러 색의 옷들이 쌓인다. 시위대의 드레스코드인 까만색 옷이 공격의 대상이 되자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동 기록이 남는 개인 교통카드를 쓰지 못하는 시위대를 위해 역마다 탑승 티켓과 동전들이 놓여 있다. 그런 소식들을 알렸다. 시위가 격해지면서 관련 뉴스에 시위대를 비난하는 댓글이 많아졌다. “어린 학생들이 무작정 나와서 사회질서를 흩뜨리고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진씨는 보여주고 싶었다.

8월12일 시위대가 공항을 점거하면서 홍콩 공항이 폐쇄되고 항공편이 취소됐다. 한국인 관광객의 발이 묶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진문원씨는 ‘홍콩 사람으로서 대신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카드 뉴스를 만들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홍콩 경찰이 그간 얼마나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했는지, 정부는 시위대의 목소리를 어떻게 묵살해왔는지 10주간의 이야기를 간추렸다. 응원의 메시지가 많이 달렸다.

종효분씨는 1인 시위 때 든 플래카드에 붙었던 포스트잇 한 장을 기억했다. ‘主權在民(주권재민)’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한국의 탄핵 촛불집회 때 많이 봤던 말이었다. “완전한 직선제가 아닌 홍콩에서 주권재민이라는 말은 낯설거든요. 저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언젠가 홍콩에 돌아가 시내 곳곳에 마련된 ‘존 레논 벽’에 이 메시지를 붙여둘 참이다. 존 레논 벽은 시위를 지지하는 쪽지가 가득 붙어 있는 벽이다.

중국군의 투입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진문원씨는 8월17일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어버릴 것 같아서요.” 하자준씨와 종효분씨는 남기로 했다. 이곳에서 할 일이 있었다. 시위 현장에 헬멧과 마스크 등 시위 장비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씨는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헬멧과 마스크를 담았다. 타이완 등 주변 국가에 있는 홍콩인들이 홍콩 시위대에 보호장비를 보내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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