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주다. 그렇다. ‘원 스위트 데이(One Sweet Day)’(1995)와 ‘데스파시토 (Despacito)’(2017)가 보유하던 16주 연속 1위 기록이 얼마 전 경신되었다. 주인공은 미국 출신 힙합 뮤지션 릴 나스 엑스(Lil Nas X), 곡 제목은 ‘올드 타운 로드(Old Town Road)’다. 이 곡의 가장 큰 특징은 극과 극이라 할 힙합과 컨트리를 섞은 데 있다. 즉, 흑인 뮤지션이 백인 장르인 컨트리를 시도한 셈이다.
릴 나스 엑스가 컨트리를 시도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올해 초 미국에서 화제를 모은 ‘이햐 어젠다(Yeehaw Agenda)’에 음악을 통해 참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은 ‘이햐’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 아무래도 ‘말’ 아니겠나. 맞다. 이햐 어젠다는 카우보이 문화를 동경해 이를 추종하는 유행을 뜻한다. 릴 나스 엑스는 인디 뮤지션인 동시에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이자 동영상을 잘 만드는 재주꾼으로 이미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올드 타운 로드’에 모든 능력을 졸여넣은 뒤 1인 홍보를 시작했다.
우선 게임. 그는 서부 시절을 다룬 대히트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 2〉(전 세계 판매고 2500만 장)의 영상을 활용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실제로도 그는 가사를 쓰면서 게임의 분위기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가사를 보라. “오래된 시골길로 말을 타고 가네.” 이후 그는 관련 동영상을 제작해 공개하고, 동영상 사이트 ‘틱톡’에 곡을 등록해 히트 준비를 끝마쳤다. 참고로, 틱톡은 15초짜리 영상을 직접 찍어 업로드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인데 해외뿐 아니라 우리나라 10대, 20대에게도 최고 인기라고 보면 된다.
결과는 그의 예상대로였다. 지난 3월 틱톡 기반으로 일반인이 ‘올드 타운 로드’를 배경 삼아 카우보이 춤을 추는 ‘이햐 챌린지’가 들불처럼 번졌다. 일찍이 리처드 도킨스가 정의한 밈(meme) 효과가 본격 가동된 것이다. 결국 ‘올드 타운 로드’는 4월13일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아직 안 끝났다. 원곡만으로도 1위를 찍었는데 컨트리의 전설 빌리 레이 사이러스(Billy Ray Cyrus)가 피처링으로 합세, 더 큰 힘을 실어준 것이다.
BTS의 RM과 함께한 리믹스 버전 공개
빌보드는 유사성이 인정될 경우 다른 곡일지라도 합산해 집계하는 방식을 취한다. 즉, ‘올드 타운 로드’ 원곡이든 리믹스든 차트에서는 하나로 표기가 된다. 영민한 릴 나스 엑스는 이 점을 파고들어 디제이 디플로(Diplo), 방탄소년단(BTS)의 RM과 함께한 리믹스 버전도 연이어 공개했다. 게다가 RM과의 버전은 제목을 ‘서울 타운 로드(Seoul Town Road)’로 스윽 바꿔 미국 외 시장에서의 반응도 노렸다. 밈에서 또 다른 밈을 창조해 히트의 연장을 일궈낸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밈은 다수가 향유하는 게임 문화다. 릴 나스 엑스는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을 넘어 곡 자체를 게임화하며 거대한 주목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연이은 리믹스 버전 발표 역시 곡을 원료로 하여 ‘밈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던져준다. 이렇듯 릴 나스 엑스가 스타가 된 데에는 기존과 완전히 다른 히트 공식이 적용됐다. 그러니까 스트리밍·동영상 시대의 밈은 일종의 살아 있는 생물이다. 사후 분석은 가능해도 사전 예측하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시대의 주인공은 거대 음반사도 아니요, 평론가는 더더욱 아니다. 게임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 뛰어드는 바로 여러분, 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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