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이타미 준의 건축 세계
  • 임지영 기자
  • 호수 622
  • 승인 2019.08.2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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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이자, 경계를 초월한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충돌로 벌어지는 찬란한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영화사 진진 제공이타미 준이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일대의 물, 바람, 돌을 테마로 삼아 건축한 수풍석 박물관 중 ‘수 박물관’ 내부.

2006년, 정다운 감독(44)과 김종신 프로듀서(44) 부부가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각각 케임브리지 대학 건축대학원과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건축영상과 영화연출을 공부한 뒤였다. 김 프로듀서의 고향 제주도를 찾았다. 아버지가 가볼 데가 있다며 두 사람을 이끌었다. 도착한 곳은 수풍석 박물관.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일대의 물, 바람, 돌을 테마로 삼은 건축물이었다. 미술품이 아니라 자연 자체를 수집해놓은 체험 공간이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위로를 받았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지만 침잠하지 않게 했다. 인간이 약하고 고독한 존재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시선은 따뜻한 사람이 만들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타미 준의 예술세계와 교감한 순간이었다.

일본인인 줄 알았던 건축가 이타미 준은 재일 한국인이었다. 제주도에서 받은 감정이 더 잘 이해되었다. 경계인의 감수성이지만, 현대인이 가진 본질적인 감성과도 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 용기를 못 내다가 2011년 그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파트너 건축가였던 이타미 준의 딸 유이화씨를 찾아갔고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개봉까지 8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이타미 준의 바다>(8월15일 개봉)에는 부부의 아들이 나온다. 다섯 살 때 출연한 아이는 열한 살 때 한 번 더 등장한다. 부부는 그사이 건축 전문 영화영상 제작사 ‘기린그림’을 설립했고, 첫째와 터울이 좀 나는 둘째 아들은 17개월이 되었다.

ⓒ영화사 진진 제공이타미 준은 일본에서는 조센징이고, 한국에서는 일본인 대우를 받은 이방인이었다.

 

이타미 준의 본명은 유동룡이다. 대한민국 국적이지만 일본에 살았던 재일 한국인이다.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나 시즈오카현 시미즈에서 자랐다. 일본어에는 그의 이름에 쓰이는 ‘유(庾)’자가 없었다. 절친한 음악가 길옥윤의 예명 요시야 준에서 준을, 생애 처음 이용한 공항의 이름 이타미 공항에서 이타미를 따왔다. 국적을 떠나 국제인으로 살겠다는 의지였다. 1964년 무사시 공업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4년 뒤 이타미 준 건축연구소를 설립했다. 2003년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고 프랑스 예술문화 훈장 ‘슈발리에’를 수상했다. 2006년 한국에서 ‘김수근문화상’을, 2010년엔 일본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무라노도고상’을 받았다. 외국 국적의 건축가로는 최초였다.

영화에는 유독 바다와 숲이 많이 나온다. 자연을 간접 체험하는 느낌이다. 이타미 준이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위로 두 명의 형이 일찍 죽자 그의 부모는 몸이 약한 이타미 준을 위해 공기 좋은 시미즈에 정착했다. ‘부두에서 보는 검고 거친 바다와 하얀 후지산이 대조를 이루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다운 감독은 시미즈에 갔을 때 깜짝 놀랐다. 산과 바다, 귤밭이 펼쳐져 있고 녹차가 유명했다. 제주도와 비슷했다. 이타미 준도 제주도에 갔을 때 고향에 온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을 제주에서 보낼 작정이었지만 이루지 못했다. 정 감독은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로서 건축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과 무한한 자연의 조화와 충돌,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찬란한 아름다움을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2016년 가을, 촬영팀은 일본에 20일 정도 머물렀다. 도쿄로 들어가 오사카로 나오는 동안 이타미 준의 건축물을 영상에 담았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건축물은 두 나라의 차이만큼 달랐다. 일본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건축물이 들어선 곳의 지역적 특성과 역사, 사람을 반영한 결과다. 1972년 지어진 온양민속박물관은 충청도의 돌담과 한옥에서 영감을 받아 그 지역 황토를 활용했다. 1991년 홋카이도에 만든 ‘석채의 교회’는 겨울 한파와 풍경에 지지 않고 견디는 건물을 짓기 위해 돌을 쌓았다. 1998년 도쿄에 ‘먹의 공간’을 만들 때는 원래 있던 벚나무 두 그루를 벨 수 없어서 설계를 변경했다. 생전 그는 ‘그 땅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이의 삶이 융합한 집을 짓는 것이 꿈이고 철학’이라고 말했다.

이타미 준은 귀화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족보만은 지니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이고 한국에선 일본인 대우를 받는 이방인’이었다. 일정 기간마다 외국인 등록을 위해 열 손가락의 지문을 날인해야 했다. 한국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아서 도자기, 민화 등을 수집하고 관련 책을 발간했다. 2002년 딸 유이화 건축가가 이타미준건축연구소 서울사무소를 열었다. 경계인이자, 경계를 초월한 건축가였다. 일본의 손지와 한국의 창호를 반반 섞어 창문을 만들기도 했다. 온양민속박물관을 만들 때는 한국의 미를 추구했으나 ‘일본의 선’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시사IN 조남진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연출한 정다운 감독(오른쪽)과 김종신 프로듀서 부부.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건축 추구

김종신 프로듀서가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건축물은 40여 년 전 만들어진 도쿄 식당 ‘주주’다. 70대의 재일 한국인 손영도 사장이 당시 기억을 들려주었다. 이타미 준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재일 한국인이라 취업이 쉽지 않았던 과거를 회상했다. ‘열외 취급’ 받은 경험이 역설적으로 힘이 됐다며 동네 커피숍이나 레스토랑 설계부터 시작해 실력을 쌓았다고 했다. 그때 만든 공간 중 하나다. 의자 하나, 기둥 하나에 심혈을 기울였고 간판 글씨를 직접 써주기도 했다. 김 프로듀서는 “조그만 불고기집(식당) 주인을 위해 이렇게까지 애썼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게 바로 건축가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싶었다”라고 말했다. 정 감독 역시 건축가가 누군가의 인생에 터전을 만들어주는 존재라는 걸 감동적으로 실감했다. 7개월 전 예비 취재차 찾았을 때보다 부쩍 늙고 지친 기색의 손 사장을 보고 정 감독은 30분간 통곡했다. 건물이 오래되어, 주주는 곧 사라진다.

이타미 준은 흙, 돌, 나무 등 원초적 소재로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건축을 추구했다. 저서 <돌과 바람의 소리>(2004)에서도 이 같은 재료가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며 뛰어난 내구성과 따스함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영화에도 그가 요코하마 강 운하에 가라앉은 목조를 인양해 재료로 쓰거나 혜화동 소재의 서울대 철거 당시 벽돌을 가져와 건축 자재로 썼다는 증언이 나온다. 건축의 시간성을 중시했다는 의미다. 채석장을 찾았고 보통은 돌을 다듬어 쓰는데, 거친 면을 그대로 썼다. 정 감독은 도쿄 한복판, 돌을 쌓아 올린 ‘M 빌딩’을 보며 자연에서 온 물성이 주는 근원적 따뜻함의 정서와 야성미를 느꼈다.

절정의 이력을 만든 바탕에는 재일 한국인 사업가인 건축주 김홍주와의 인연이 있다. 대표작인 ‘제주 프로젝트-핀크스 리조트’가 시작되었다. 1998년 핀크스 퍼블릭 골프클럽 하우스를 시작으로 포도호텔, 수풍석 박물관, 두손지중 박물관, 비오토피아 주택단지까지 완성되는 데 11년이 걸렸다. 제약 없이 마음껏 설계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행운이었다. 특히 제주의 민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포도호텔(2001)은 오름을 비롯해 제주의 풍광을 담아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영화에는 많은 설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건축계에서 이타미 준의 위치랄지 그의 건축 기법에 대해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다. ‘훌륭한 건축가의 훌륭한 삶’을 그리려던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이 공간에서 받은 느낌을 잘 전달하고 싶었다. 영화와 건축은 닮아 있다. 시간과 공간의 예술이고 그 안에 삶을 담는다는 점이 그렇다. 특히 다큐멘터리는 시간성의 매력이 있었다. 제작비 문제로 지연되는 동안 영화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성장했다. 이타미 준이라는 건축가가 살면서 뿌려놓은 씨앗이 꽃피우는 걸 목격하는 과정이었다. 그의 딸과 글을 통해, 영향받은 제자를 통해 건축가를 만났다.

“예술가에게도 위로가 되는 영화이기를…”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타미 준-바람의 조형전>을 할 때 7분짜리 영상을 의뢰받았다. 사비를 들여 30분짜리로 만들었는데 그대로 상영되었다. 세 살짜리 아기도 30분을 꼼짝 않고 지켜봤다. 치유와 위로의 감성을 사람들이 느끼고 있었다. 지난 5월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을 때 자원봉사를 하던 청년들이 감사하다며 위로를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수상보다 기뻤다. 정 감독은 “아이 둘을 키우며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지 궁리를 많이 한다. 공간이라는 게 부동산으로 연결되는 돈의 가치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보듬어주고 삶을 빚는 곳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공간이 주는 선한 가치가 전달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 프로듀서는 영화를 만드는 동안 아내 정다운 감독이 너무 즐거워 보였다. 건축 영상을 만들 때도 공간에 가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영화 제작을 결심할 당시엔 거장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그걸 극복할 즈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한 고통이 찾아왔다. 독립영화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될 당시 심사위원 표정을 기억할 정도다. 이타미 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정 감독은 위로를 많이 받았다. 양쪽에서 아웃사이더면서 오랜 시간 자기를 단련했던 그에 비하면 8년은 아무것도 아닌 듯싶다. 다른 예술가에게도 위로가 되는 영화이길 바란다. 재일 한국인 음악가 양방언이 음악을, 배우 유지태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영화 개봉과 맞물려 8월7일부터 한 달간 웅갤러리에서 이타미 준의 회화전 <심해(心海)>가 열린다. 어릴 때 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그림을 그려서 먹고살 수 있겠느냐는 아버지의 질문을 받고 진로를 바꾼다. 건축 드로잉이 아니라 본격 추상회화다. ‘건축가로 살고 있지만 어떤 때는 하염없이 그림을 그리곤 한다. 적어도 그때는 화가의 마음이다(<손의 흔적>, 2014).’ 재즈를 즐겼고, 시를 쓰고, 곽인식·이우환 같은 미술가와도 교류했다.

정다운 감독 인생 최초의 기억은 공간과 관련이 있다. 빛이 들어오는 집 안의 풍경이다. 강화도 교동도 섬에서 자라 압도적인 자연의 풍광을 경험한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강남으로 이사하며 충격을 받았다. 전혀 다른 공간이었고 그때의 경험이 강렬하다. 좋은 공간은 좋은 영향을 준다고 두 사람은 생각한다. 김 프로듀서는 “모두 건축주가 되어 좋은 공간을 갖기는 힘드니까 공공건축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이타미 준과 두 사람을 잇는 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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