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죽어간 자리 변명만 넘쳐났다
  • 김영화 기자
  • 호수 622
  • 승인 2019.08.2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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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저류배수시설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3명이 폭우를 피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허술한 안전관리 체계가 드러났지만 발주처와 운영 주체, 시공사, 하청업체 모두 말이 달랐다.
ⓒ시사IN 신선영서울 양천구청에 마련된 미얀마 출신 노동자의 분향소.

 

7월31일은 장마가 끝날 무렵이었다. 이날 서울 양천구에 폭우가 내렸다. 호우주의보(3시간 강우량이 60㎜ 이상 예상되거나 12시간 강우량이 110㎜ 이상 예상될 때 발령)가 내려진 지 10분 만에 목동 빗물저류배수시설의 수문자동화 시스템이 가동됐다. 수문이 열렸고, 빗물저류배수시설 터널에 있던 작업자 2명인 하청업체 직원 구 아무개씨(65)와 미얀마 출신 M 씨(23)에게는 이 사실이 전달되지 않았다. 터널 안으로 약 6만t의 빗물이 쏟아져 내렸고, 수심은 4m 안팎으로 급상승했다. 이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들어간 현대건설 직원 안 아무개씨(29)까지 3명의 노동자는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들이 사망하고 나서야 허술한 안전관리 체계가 속속 드러났다. 발주처(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와 운영 주체(양천구청), 시공사(현대건설), 하청업체(한유건설)가 모두 말이 달랐다. 책임 소재를 두고 관련 기관 사이 공방이 이어졌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걸까.

7월31일 오전 7시10분  하청업체 한유건설 작업자 2명 터널에 진입
땡볕을 피해 작업을 일찍 시작하려고 현장 직원들은 이날 오전 7시까지 출근했다. 하청업체 한유건설 직원 구씨와 M 씨가 40m 길이의 유지관리수직구를 통해 터널 내부에 진입한 것은 오전 7시10분께. 유지관리수직구는 작업자들이 터널로 들어가기 위해 드나드는 통로다. 6월30일자로 배수터널 공사 자체는 마무리됐지만, 배수터널 내부로 차량이 진입할 수 있게 하는 카 리프트 설치를 위해 12월15일까지 기한이 연장된 상태였다.

오전 7시30분  호우주의보 발령
이날 오전 5시40분에는 ‘아침 9시까지 서울·인천·경기도에는 돌풍과 천둥 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20㎜ 이상의 강한 비가 온다’는 기상청 예보가 있었다. 오전 7시에는 인천과 경기 북부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된 상태였다. 구씨와 M 씨가 터널로 들어가던 시각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무 지시가 내려졌다. 현대건설 측은 공사 현장의 전반적인 책임은 현장소장에게 있지만, 구체적인 업무 지시는 하청업체 한유건설 소관이라고 주장했다. 오전 7시20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10분 뒤 폭우로 바뀌어 퍼부었다.

오전 7시31분  양천구청 치수과 직원, 현장 직원에게 전화로 연락 시도했으나 받지 않음

오전 7시38분  양천구청 치수과 직원, 현대건설 직원과 전화로 연락
터널 내 수위가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양천구청 치수과 직원이 종합상황제어실(제어실)에 수문자동화 시스템이 작동하는지 확인해보라는 연락을 취한 건 오전 7시31분이었다. 수문자동화 시스템은 지난해 8월28일 폭우로 주택가에 침수 피해를 안긴 ‘신월동 침수 사건’ 이후 도입됐다. 당시 비가 내리던 저녁 8시쯤 빗물저류배수시설 현장에 수문을 수동으로 개방할 인력이 없어서 침수 피해가 컸다.

서울시는 지난 7월1일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 인수·인계를 위한 합동운영’이라는 공문을 양천구청에 보냈다. 운영상 문제점을 도출하고 원인을 신속히 파악하기 위해 양천구청 치수과 직원 2명을 제어실에 ‘상주’하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와 시공사(현대건설), 감리단이 이에 협조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제어실에는 이번에도 상주 직원이 없었다. 구청 직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상주’하기 때문에 사고 당시에는 출근 전이었다. 양천구청 치수과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근무시간에 한해서 상주하는 것으로 본다. 비상재해 상황이 발령 났을 때는 단계에 따라 24시간 상주해야 하지만 당시에는 비상재해 상황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그래픽

 

오전 7시40분  ‘저지수직구 1’ 개방

오전 7시44분  ‘고지수직구’ 개방
수문자동화 시스템에서 수문이 열리는 수위 기준은 70%이지만 그날 ‘저지수직구 1’은 50%, ‘고지수직구’는 60%에 맞춰 수문이 열리게 설정되어 있었다. 호우주의보가 발령된 지 10분 만에 수문이 차례로 열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터널 내 작업자들에게 이를 알릴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미 터널 내부는 공사를 완료한 상황이라 통신기가 제거된 상태였다. 현대건설 측은 “배수터널은 물을 받아두는 현장이라 중계기를 떼어내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유지관리를 위해 하청업체 직원들이 터널 내부에서 작업을 해왔다. 합동운영 주체들인 서울시, 양천구, 시공사, 감리단 중 누구도 비상벨과 통신기 구축을 요구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구씨와 M 씨는 휴대전화와 무전기만 챙겨 들어갔지만 거리가 멀어져 통신이 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양천구청 측은 7월28일 서울시, 현대건설, 하청업체 임원 등이 참여한 카카오톡 방에 수문 개폐 기준을 변경해 시운전하겠다는 내용을 고지했다고 주장했다. 현장 직원들이 이를 파악하고 있었는지 여부는 수사 중이다.

오전 7시50분  현대건설 직원 안씨, 작업자들 대피시키기 위해 터널 진입
자동으로 한 번 열린 수문은 다 열릴 때까지 닫을 수 없었다. 다급했지만 현장 작업자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오전 7시50분 현대건설 공사팀 소속 직원 안씨가 작업자들을 대피시키려 유지관리수직구(작업자 이동통로)를 통해 터널에 들어갔다. 7월28일 시운전 당시 빗물 유입수가 유지관리수직구까지 도달하는 데 49분가량 소요됐지만 이날은 2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당시 유지관리수직구 인근 수위가 3.9m로 차올랐다. 미리 들어갔던 구씨와 M 씨, 그리고 이들에게 위기 상황을 알리러 들어간 안씨는 쏟아지는 물을 피하지 못하고 고립됐다.

이에 앞서 오전 7시38분 양천구청 치수과 직원한테 연락을 받은 현대건설 직원 ㄱ씨는 터널에서 작업 중인 직원들 때문에 수문이 열리지 않게 하려고 제어실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이 직원은 제어실 문 비밀번호를 알지 못했다.

오전 8시26분  양천소방서 출동

오전 9시55분  구씨 심정지 상태로 발견

8월1일 오전 5시42분  M 씨 시신 수습

오전 5시47분  안씨 시신 수습
신고를 받은 소방 당국은 7월31일 오전 8시32분 현장에 도착해 수색 작업을 벌였다. 약 1시간30분 만에 한유건설 직원 구씨는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구반장’이라 불린 그는 건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 동이 트고 나서 한유건설 직원 M 씨와 현대건설 직원 안씨의 시신이 수습됐다.

8월2일 구씨의 장례가, 8월4일 안씨의 장례가 치러졌다. 8월4일 경찰은 시공사 관계자 2명, 감리단·협력업체 관계자 각 1명 등 4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사고 발생 5일 만인 8월5일 M 씨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양천구청에 마련됐다. 안씨 아버지가 양천구청 측에 M 씨를 조문할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M 씨의 지인과 미얀마 노동자단체, 미얀마 대사 등 그를 추모하는 발걸음이 사흘간 이어졌다. 안씨 아버지도 양천구청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았다. “우리 아들보다 어린 23살이더라고요. 우리 아들이 구하러 간 것이기도 하고, 같은 부모 입장에서 예를 갖추고 추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니까요.” M 씨 시신은 8월6일 저녁 미얀마 양곤에 있는 가족의 품으로 인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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