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총’ 복각 프로젝트를 아십니까?
  • 정리·차형석 기자
  • 호수 622
  • 승인 2019.08.2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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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의거에 쓰인 안중근 의사의 총을 찾아 나선 이들이 <시사인싸>에 출연했다. 이들은 실제 거사에 사용된 총(M1900)이 어디에도 없음을 확인하고 총을 복각하기로 결심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제공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모습을 상상한 그림. 박영선 화백 작품.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 안중근 의사의 총을 찾아 나선 세 명(이성주·강준환·이영상)이 내건 프로젝트 이름이다. 출발선에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2018년 봄, 중국 하얼빈에 있는 안중근기념관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전시된 안 의사의 총은 실제 거사에 쓰인 총(M1900)과 상관없는 총(브라우닝 하이파워)이었다. 이들은 서울 중구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 전쟁기념관 등을 방문했다. 어디에도 M1900 실총은 없었다. 관련 영상 자료를 뒤졌다. 북한 영화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까지 봤다. 그 영화에도 다른 총(리볼버)이 등장했다. 군사 분야 마니아인 이들은 결심했다. ‘안중근 의사의 총을 찾아 복각하고 이를 기념관에 기증하자.’

이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는 ‘펜더’ 이성주씨와 박현복 감독이 <시사인싸> 제104회에 출연했다. 이성주씨는 군사 분야 전문가이자 역사 작가로 유명하다. 2003년 2월 취임을 이틀 앞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면서 “‘펜더’라는 사람이 쓴 군사 또는 무기체계 등에 대한 보고서는 굉장히 수준 높은 것이어서 자주 본다”라고 언급했다. 당시 화제가 되었다. 현재는 유튜브 채널 ‘건들건들’에서 총기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여기에서 건은 총을 뜻하는 gun이다).

‘안중근 총 복각 프로젝트’를 영상에 담고 있는 박현복 감독은 소설가 장강명이 쓴 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의 실제 인물이다. 2012년 6월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제작사가 이벤트를 열었다. 프랑스·미국·일본·중국 네 나라의 특정한 장소에 일정 기간 에반게리온 스탬프를 비치해두고, 이 도장을 찍은 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행사였다. 박현복씨와 그의 친구 이종호씨가 네 나라에서 도장을 다 찍었다. 전 세계에서 유일했다. 파리에 가서 도장 찍고 관광도 하지 않고 바로 귀국하는 여행 ‘에바로드’를 다큐멘터리로 찍었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장강명씨가 이들을 취재했고, 나중에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쓴 것이다. 박현복 감독은 ‘안중근 총 복각 프로젝트’를 다큐로 만들어 유튜브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사회자 차형석 기자, 디지털콘텐츠팀 인턴 강보배씨와 이성주·박현복씨가 한 시간 동안 나눈 내용을 정리했다(이성주·박현복씨의 말을 구별하지 않고 답으로 재구성했다).

ⓒ시사IN 조남진‘잃어버린 총을 찾아서’에 참여한 이성주씨(맨 오른쪽), 박현복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시사인싸>에 출연했다.

 

안중근 의사의 실제 총은 어디에 있나?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가 있었다. 당시 공판 기록을 보면 M1900이 증거품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그 총이 사라졌다. 일본 측은 ‘관동대지진 때 분실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안중근 의사가 ‘독립의 아이콘’으로 떠오를까 봐 안 의사에 관한 흔적을 싹 지운다. 유해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실세 장관과 회담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기록 필름이 남아 있었다. 미국에서 이 필름이 공개되었다. 그 후 일본 쪽에서 필름을 구입해갔고, ‘총격 장면’만 잘라내 공개했다. 그 영상도 일본 어디엔가 있을 텐데….

M1900은 어떤 총인가?

총기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할 수 있는 존 브라우닝이 설계했다. 벨기에 총기 회사 FN 사에서 1900년에 생산한 자동 권총이다. 그 총을 모태로 연발 가능한 자동 권총이 발전했다고 보면 된다. 하얼빈 안중근기념관에 있는 브라우닝 하이파워는 M1935다. 1935년에 생산한 총으로 하얼빈 의거 훨씬 이후의 총이다. 한국에서는 M1900을 볼 수가 없다. 모형 총기도 없다. 장난감 총으로도 안 찍어낸다. 그게 참 의아했다.

일본에서는 모형 총이 생산되지 않나?

일본 쪽을 알아보았다. 일본은 전 세계 모형 총기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M1900은 없고, 1910년에 생산한 M1910은 있었다. M1910이 있는데, 왜 M1900은 없냐고 했더니 ‘왜 그거를 만드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자기 나라의 영웅을 죽게 만든 ‘흉총(흉한 총)’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일본에 모형 총이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미국에서 실제 총을 빌려 실리콘밸리에서 3D 스캔을 하고 복각하자고 했다. 당시에 70만 정가량 생산했으니 구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렌털 비용이 비쌌다. 1만 달러를 부르는 곳도 있었다. 또 분해하면 안 된다는 등 조건이 까다로웠다. 분해해야 설계도면을 만들 수 있는데…. 그래서 우리가 총을 사자고 방향을 바꾸었다.

총을 어디에서 구입하나?

미국에 있는 지인들을 수소문했다. 그 사람들에게 해외 총기 경매 사이트 링크를 보내 입찰을 부탁했다. M1900 매물이 나오면 바로바로 인터넷 주소 링크를 보냈다. 그런데 미국에 있는 한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총, 샀다’고.

미국에서 총을 사려면 절차는?

총을 구입하려면 시민권 혹은 영주권이 있어야 한다. 총기 라이선스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딜러라고 총기 매매 보증인을 거쳐야 구입할 수 있다. 이번에 총 경매에 참가하신 분은 총기 라이선스가 없었다. 라이선스 따는 시간이 필요했다. 왜 이 총을 사려고 하는지, 이 총을 한국의 전쟁기념관에 기증하려 한다고 설명하는 메일을 총기 판매자·총기 딜러에게 보냈다. 그들이 우리 사연을 듣고 ‘명예로운 일’이라는 답변을 보내왔고, 그 기간을 기다려주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지인에게 총이 도착했는데, 그다음은?

그러고 나서 지옥이 열렸다(웃음). 그 총을 한국에 들여오는 게 큰일이었다. 국방부 산하 전쟁기념관 측과 협의를 했다. 전쟁기념관에 유물로 기증하는 조건으로 총기를 들여오기로 했다. 국내에 총을 들여오려면 경찰청장의 수입필증이 필요하다. 국방부, 경찰청에서는 취지에 공감해주었다. 민간인이 총을 사들여 전쟁기념관에 기증하는 일은 처음이라고 했다. 수입필증 받는 데 일주일가량 걸리고, 국내에 들여오는 데 40~60일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얼빈 의거’를 재연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던데.

안중근 의사가 명사수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기록을 검토해보니 6초 동안 7발을 발사했다. M1900이 반동이 적어서 그게 가능했던 것이다. 리볼버였다면 하얼빈 의거가 불가능했을 거라고 본다. 하얼빈 의거 재연이 가능할까? 사격 전문가, 경호 전문가, ‘안중근’ 연구 역사학자 등을 만나 자문했다. 여태 아무도 하얼빈 의거 재연을 안 했다. 처음으로 해보고 싶었다. 그 재연 때문에 국내에 총을 들여오는 게 더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총신에 구멍을 내고 공이를 없애는 ‘불용화 처리’를 하면, 발사가 안 되기 때문에 국내 반입이 쉬워진다. 하지만 재연을 꼭 하고 싶었기에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재연은 어떻게 하나?

하얼빈에 가서 하면 제일 좋은데, 그건 불가능하고. 군부대 사격장에서 하려고 협조를 구하는 중이다. 기록을 검토해 거리, 사람 위치 등을 고증했다.

하얼빈 의거일인 10월26일까지 계획은?

실제 총은 전쟁기념관에, 복각한 총은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하려 한다. 복각은 CNC 가공, 산화제 표면처리 등의 과정을 거친다. 그 준비는 다 해놓았다. 이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한 여러 전문가가 결합했다. 전혀 연관이 없는 분야의 전문가가 하나둘 모여 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또 군부대 사격장에서 재연하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할 예정이다.

박현복 감독은 어떻게 이 프로젝트를 영상으로 담게 되었나?

40대 아저씨 세 명이 의미가 있든 없든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웃음). 몇 년 전 ‘에바 로드’를 해봐서 어떤 마음인지 제가 잘 아니까 촬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이라고 하면 ‘불법 아니야?’ 하는 안 좋은 이미지가 떠오를 수 있다. 총을 소재로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봐주었으면 좋겠다. 하얼빈 의거가 없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텐데, 그에 대한 고증은 너무 빈약하다. 올해가 하얼빈 의거 110주년이고, 내년 3월이면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해서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성주씨는 왜 이 프로젝트를 하는 것인가?

재미있으니까(웃음).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동상에는 고증 논란이 따라다닌다. 이순신 장군 동상의 갑옷은 조선군 갑옷이 아니라 중국식 갑옷이고, 오른손에 들고 있는 칼은 일본도라는 말이 있다. 게다가 칼집째 오른손으로 들고 있다. 오른손에 칼을 들었다는 건 패장이 항복을 의미하는 거다. 유물이나 고증을 통해 후손들이 의미를 되새기는 것인데…. 저도 안중근 의사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안 의사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 당대 사람들에게 어떤 시그널을 보냈다. 총을 통해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좇아가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안 보이던 게 보이는 거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팟빵·팟티·아이튠스 팟캐스트에서 <시사인싸>를 검색하면 들을 수 있습니다(제1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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