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옆에 선 노동자의 외침
  • 박희정 (인권 기록활동가)
  • 호수 622
  • 승인 2019.08.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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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이었다. 노동절로 법정 공휴일이었지만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평소처럼 분주했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오렌지빛의 거대한 800t급 골리앗크레인과 32t급 지브크레인 역시 쉬지 않았다. 북해에 정박해 석유를 퍼 올릴 해양플랜트 ‘마틴 링게’ 모듈의 건조 공정이 예정보다 훨씬 뒤졌기 때문이다.

휴식 시간을 7분 앞둔 시각에 사고가 일어났다. 오후 2시53분,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지브크레인의 붐대와 와이어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레일을 따라 직선으로 이동하던 골리앗크레인이 정지해 있던 지브크레인을 보지 못하고 밀어버렸다. 추락한 붐대와 와이어가 덮친 곳은 하필 노동자들의 휴게 공간이었다. 노동자 여섯 명이 목숨을 잃고 스물다섯 명이 다쳤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윤현지 그림

 

조선소에서 전기포설 작업을 하던 박철희씨(49)는 그 사고로 동생을 잃었다. 불과 한두 걸음 차이가 두 사람의 운명을 갈랐다. 박철희씨는 그날 이후 사고 당시의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며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심각해 일은커녕 일상생활도 엉망이 되었다. 어쩌다 길에서 크레인 비슷한 것만 보아도 몸이 덜덜 떨렸다.

사망자 중에는 김형태씨(가명·47)의 형도 있었다. 김형태씨 또한 형과 우애가 끈끈했다. 박철희씨 형제처럼 김형태씨 형제도 두 살 터울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함께 일했다. 박철희씨가 동생의 소개로 조선소에 온 것처럼, 김형태씨의 형도 김씨 소개로 조선소에 왔다. 비슷한 사연을 지닌 두 사람은 ‘유가족’이자 ‘사고 생존자’였다.

두 사람이 마주앉은 날은 지난 6월26일,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참사 피해 노동자들의 구술 기록집 <나, 조선소 노동자>(코난북스)의 국회 북콘서트가 열리던 날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을 조심스럽게 주선한 사람은 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 피해자들을 꾸준히 지원해온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이은주 국장이었다. 이 국장이 주목한 것은 두 사람이 가진 ‘죄책감’이었다. 박씨도, 김씨도 형제를 구하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고 자책하며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형이 사고 난 게, 사망한 게 ‘네 잘못이 아니다. 형 좋은 데 갔을 거다.’ 그 말이 듣고 싶어요.”

그러나 위로와 애도는 참사의 진실이 규명되고 정의가 실현되기 전에는 미완의 상태일 수밖에 없다. ‘왜 하필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그때 내가 하루 쉬자고 할걸’ ‘왜 조선소로 오라고 해서’ 참사 피해자인 두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을 책망하고 있을 때, 정말 책망받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5월7일 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에 대한 1심 선고에서 삼성중공업은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사고 책임은 현장 노동자의 과실로 남겨졌다.

사고 당일의 참담한 현장은 살아온 노동자들의 몸에 파편처럼 흩어져 새겨 있다. 노동자 수백명이 크레인 사고의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노동자는 단 14명뿐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사고 당일 출근한 노동자 1623명 중 90%가 비정규직이었다. 다치고 죽어간 노동자 모두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 얼마 전에 추락사로 돌아가신 분이 있어요. 며칠 전에도 사고가 있었고요. 조선소는 추락 사고가 엄청나게 잦거든요. 제가 2013년 대우조선소에서 입사 교육을 받는 날 사망자가 한 명 있었어요. 갓 대학에 입학한 알바생이었는데 출근 첫날 떨어져서 사망했다고 들었어요. 사람이 죽었다는 소리가 들리면 며칠 조용하다가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식이에요. 일하다가 사망 사고를 너무 많이 접하게 돼요. 제발 사람이 안 죽었으면 좋겠어요. 하루아침에 자기 부모 형제를 영영 못 보게 되는, 그런 거잖아요.” 생계를 위해 다시 조선소로 돌아간 김형태씨가 토해낸 말은 ‘살려달라’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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