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만난 안세홍 사진가. 손에 든 것은 2015년 〈표현의 부자유전〉 팸플릿이다.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가 8월1일 개막한 지 사흘 만에 중단되었다. 공공시설 등에서 전시를 거부당하거나 철거된 작품을 모아 표현의 자유를 생각해보게 하는 전시였다. 작품 중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표현한 ‘평화의 소녀상’, 불타고 남은 쇼와 일왕 이미지를 담은 ‘태워져야 하는 그림’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최 측은 8월3일 안전 문제로 전시를 중지한다고 밝혔다. 사흘 동안 3000건에 가까운 항의 전화나 메일, 팩스가 쇄도해 사무국이 마비되었으며, 팩스 중에는 ‘(전시를) 철거하지 않으면 휘발유 통을 들고 와 방해하겠다’는 협박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항의 중 50%가 소녀상, 40%는 쇼와 일왕 관련 작품을 겨냥했다.

이번 사건이 일본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침해이자 사실상 검열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인들이 전시 내용을 언급한 직후 중지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개막 이틀째인 8월2일, 예술제 실행위원회의 회장 대행을 맡은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이 전시를 둘러본 뒤 “일본인의 마음을 짓밟는 행위”라며 전시 중지를 요구하는 항의문을 예술제 실행위원회 회장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에게 제출했다. 전시 중지를 요구한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은 ‘위안부’ 강제동원과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인물이다. 같은 날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되고 있는 것에 대해 “(예술제에 대한) 보조금 교부를 결정할 때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정밀 조사해서 적절히 대응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예술제는 문화청 보조금으로 운영되는데, 행사가 완료된 뒤에 지불되는 구조다. 스가 장관은 “심사 시점에는 구체적인 전시 내용의 기재가 없었다”라며 전시 내용에 따라 ‘보조금 교부 제한’을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재차 피력했다.

지난 20년간 한국뿐 아니라 중국 등지에 남겨진 ‘위안부’ 피해자 140여 명을 카메라에 담아온 안세홍 사진가는 이번 전시에 ‘위안부’ 피해자 사진 8점을 출품했다. 그는 현장에서 이번 사태를 지켜보았다. 안세홍 사진가는 7년 전인 2012년에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그해 6~7월 니콘이 운영하는 도쿄 신주쿠 니콘 살롱에서 ‘위안부’ 피해자 사진을 전시하기로 했는데, 주최 측으로부터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안세홍 사진가는 전시 중지 결정이 계약 위반이라며 니콘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2015년 12월 도쿄 지방법원은 니콘 측이 안씨에게 110만 엔(약 1254만원)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계약 후의 일방적인 중지는 ‘표현 활동의 기회를 잃게 하는 결과가 되어,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신의칙 위반’이라고 재판부는 판결했다. 소송에서 니콘 측은 ‘항의가 쇄도해 안전 확보가 어려워졌다’고 주장했지만, 판결은 ‘현실적인 위험이 생겼다고는 할 수 없다’고 봤다. ‘계약 상대와 성실히 협의해 경찰에 지원을 요청하는 등 노력을 해야 했는데 일방적으로 중지한 것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도 했다. 양측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확정되었다.

바로 이 ‘니콘 사태’를 계기로 탄생한 것이 ‘표현의 부자유전’이다. 안씨의 재판을 지원하는 시민들이 실행위원회를 꾸려 2015년 도쿄의 갤러리에서 처음 개최했다. 재판 진행 과정에서 전시가 허용되지 않은 작품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이번 전시는 속편에 해당하기에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라는 이름이 붙었다. “표현의 자유를 생각해보자는 전시였는데, 전시가 아니라 퍼포먼스가 되어버렸다”라고 말하는 안세홍 사진가를 8월7일 만났다.

ⓒ이두희8월2일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왼쪽)이 방문한 뒤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전시가 중단됐다.

 

어떻게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나?

지난해 (이번 예술제를 총괄하는) 쓰다 다이스케 예술감독이 ‘표현의 부자유전’ 실행위원회 쪽에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상황을 생각해보는 기획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실행위원회가 올해 1월 작가를 모으고 있다며 내게 연락했다.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전시를 2~3주 앞두고 오무라 아이치현 지사가 소녀상 전시를 할 것인지 이야길 꺼냈다고 했다. 주최 측은 전시는 하되 사진 촬영은 불허하는 안을 제안했고 우리는 반대했다. 결국 전시는 하고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도 허용하되 SNS에 올리지는 못하게 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전시가 시작되고 분위기는 어땠나?

7월31일 기자와 초청 관객에게 먼저 공개했다. 기사가 나가자 8월1일부터 주최 측에 항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쓰다 예술감독이 ‘전화가 많이 와서 대응이 힘들다’고 말했다. 우익으로 추정되는 관람객 몇 명이 와서 작품 주변을 배회하고, 사진을 찍으며 (소녀상에게) 꿀밤을 때리는 듯한 이상한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아사히 신문〉 8월4일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관람객이 작품을 조용히 감상했다. 소녀상 머리 부위에 종이봉투를 씌우는 남성도 있었는데, 다른 관람객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화를 내 종이봉투를 벗겼다.”).

8월2일 나고야 시장의 전시 중지 요구와 관방장관의 교부금 검토 발언이 나왔다.

나고야 시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 바로 (언론사에) ‘보도지침’이 내려왔다.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전시실에는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며, 관람객 인터뷰도 자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이면 스태프가 와서 제지한다. 게다가 모든 전시장에서 30분 이상 취재를 못하게 했다. 스태프를 동반해야만 취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8월3일 아이치현 지사가 전시 중단을 발표했는데 기사를 보고 알았다. 그날 저녁 7시 쓰다 예술감독이 기자회견을 했는데, 우리에게는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심지어 기자회견장에도 못 들어가게 했다. 의견 수렴이 전혀 없었다.

쓰다 예술감독은 나고야 시장이나 관방장관의 발언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데?

두 정치인의 발언을 보고 ‘검열이 작동해 전시를 중지시키려 하는구나’ 직감했다. 시장뿐 아니라 관방장관이 현 차원의 행사에 그런 발언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압박이다.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협박은 범죄 아닌가. 경찰이 범인을 잡아 처벌하고, 전시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어야 했다. 전시를 중지시키고 전시장을 폐쇄해버린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쓰다 예술감독과 협의해 전시 중단을 결정한 오무라 아이치현 지사는 8월5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에게 전시 중지를 요구했던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에 대해 “공권력을 가진 쪽에서 ‘이 내용은 좋고, 이 내용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헌법 제21조가 금지하는 ‘검열’이라고 해석되어도 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쓰다 예술감독은 항의 전화에 응대하는 직원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우리도 기획 단계에서 우익 추정 세력이 전화나 팩스, 이메일로 협박을 할 거라고 예상했다. 대응 방법을 구체적으로 주최 측에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 제안이 제대로 실행됐는지 모르겠다. 또한 사무국에 걸려오는 전화 중에는 전시를 지지하는 전화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니콘 사건을 예로 들면 전시회 찬반 전화의 비율이 7대 3 정도였다. (주최 측은) 반대하는 의견만 받아들이지 찬성하는 의견은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

ⓒ안세홍전시가 중단된 이후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선?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안전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주최 측의 대응이 거의 없었다. 경비가 한 명 있었는데 인력을 더 충원할 수 있었다. 다른 여러 방법도 있었다고 본다. 더 이상 인력을 지원할 수 없다고 딱 자르더라.

‘세금을 지원받는다면 행정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나?

당연히 전시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세금을 쓰더라도 소통의 장을 만들어 풀어가는 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보기 싫다고 해서 치워버리는 것 자체가 이미 정치적으로 편향적이다. 결과적으로 입맛에 안 맞는 것만 없애니까! 이번 전시 작품의 주제를 보면 성노예(‘위안부’)뿐 아니라 일왕 문제, 오키나와 미군 문제, 후쿠시마, 헌법 제9조, 재일 조선인 등 그들이 보기 싫어하는 것들이 모여 있다. 이번 전시 중단에 따라 (바깥의 사람들이) 전시장 입구 안쪽에 있는 것(전시물)들을 보지 못하게 장벽이 세워졌다. 전시를 하려고 했는데, 퍼포먼스가 되어버렸다.

7년 전 니콘 사태의 당사자다.

전시하기 전에 사진 촬영이 안 된다고 할 때부터 ‘이거 니콘 때랑 똑같은데’ 하는 기시감이 들었다(니콘 사태 당시 안씨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도쿄 지방법원이 이를 인용해 전시를 예정대로 개최했다). 그때도 전시장 안에서 사진 촬영이나 언론 취재를 못하게 했다. 니콘 측 변호사와 직원이 상주하며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팸플릿을 팔거나 나눠주지도 못하게 했다. 이번에도 비슷하지만, 그때보다 어떤 면에서 더 치밀하다고 생각한다. 니콘 측은 좀 무모했다. 중지 결정을 하면 내가 저항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듯하다. 이번에는 전시를 결정한 걸 번복할 수 없으니까 중지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고 의심된다.

그때도 ‘표현의 자유 대 안전’이 문제가 됐다.

재판 과정에서 니콘 사장이 ‘표현의 자유보다는 안전이 우선이다’라고 전시 중지를 결정한 것이 밝혀졌다. 사장을 불러 증인신문도 했다. 일본 내에서도 대기업이 관계된 큰 사건이었다. 결국 사기업이지만 표현의 자유로서 전시장은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이번 일이 한·일 관계가 악화된 국면에서 일어났는데, 일본 시민들이 연대하고 있나?

일본 시민들이 같이 ‘해주는’ 게 아니라 일본 시민들의 문제다. 우리는 소녀상이 걸려 있어서 한·일 관계로 보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이번 일을 자신들의 문제라고 판단한다. 작품이란 거기에 갖다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 공간에 관객이 있어야 비로소 작품이 된다. 그러한 소통의 장을 막는 일은 시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전시장이 폐쇄되고 그 과정에 정치인들이 관여하는 걸 보며 자신들의 사회가 곪아 터져가는 모습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고야뿐 아니라 도쿄, 오사카에서 온 시민들이 매일 오전 10시에 전시장 앞 정문에서 피케팅을 하고, 작품이 강제 철거되지 않게 교대로 지키고 있다. 일본 사회에 또 하나의 오점을 남기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일본 시민들이 행동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니콘 사태 때보다 더 빨리 움직이고 있다. 경험이 있으니까. 한국의 시민들도 한·일 관계를 넘어 ‘표현의 자유’ 문제로 이번 일에 연대하는 게 필요하다. ‘위안부’ 문제의 시급한 해결을 위해서라도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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