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철’ 홍보과의 기가 막힌 선전전
  • 고재열 기자
  • 호수 621
  • 승인 2019.08.13 12: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표현 중에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 당이 집권했던 기간을 깎아내려 헐뜯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 말이 딱 들어맞는 나라가 있다.

만주사변 다음 해인 1932년, 일본이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선통제)를 황제(강덕제)로 세운 만주국이 그렇다. 이 괴뢰국은 1945년 8월18일 소련군의 진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질 때까지 13년 동안 존속했다.

당시 일본의 적극적인 만주 개발로 일본인은 물론이고 조선인까지 이주 행렬에 동참했다. 만주 이주 열기는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방불케 할 만큼 뜨거워서 일본인 50만명 이상과 조선인 100만명 이상이 이주했다. 통치는 일본 관동군이 주도했다.
〈비주얼 미디어로 보는 만주국〉
기시 도시히코 지음
전경선 옮김
소명출판 펴냄

관동군과 함께 만주국에 영향을 끼친 집단이 있다. 바로 1906년 설립된 일본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이다. 이 만철은 이듬해 산하 연구기관으로 만철 조사부를 설치한다. 일본 최고의 싱크탱크로 불린 만철 조사부는 중국 동북지방에 관한 기초 조사와 연구를 실시해 일본의 중국 본토 진출을 도왔다. 전후 만철 조사부 출신들이 일본 정·재계와 학계를 주도했다.

만철 조사부와 함께 주목해야 할 곳이 있다. 홍보과다. 무려 100여 명에 이르는 담당자를 두었는데 일본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만주국의 홍보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일을 이들이 주도했다. 만철 홍보과는 포스터나 전단, 기념우표나 기념 그림엽서 등 ‘이페머럴 미디어(Ephemeral Media:복제된 일시적인 매체)’를 적극 활용했다. 이 꼭두각시놀음의 주인공은 단연 ‘푸이’다. 그를 중심으로 ‘대만주 제국 만세’ ‘일만 친선’ ‘공존공영’ ‘국운 비등’ 등 상찬을 늘어놓는다. 이들의 선전전은 단순히 체제 선전에 그친 것이 아니라 만주를 홍보해 서양인들의 만주 관광까지 이끌어냈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모습이 겹쳐 섬뜩하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