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이 딱 떨어지는 세월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감각은 제각기 다르다. 삶이 그리는 궤적에 따라 10년은 누군가에겐 엊그제라 해도 믿을 눈 깜짝할 순간, 누군가에겐 끝을 장담할 수 없었던 영겁의 시간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아이돌에게 10년이란 어떤 시간일까. 그것은 하나의 세계가 창조되었다가 모두 파괴되고도 한참이나 자욱한 먼지바람이 맴도는, 그런 시간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효민의 10년은 가장 길고 복잡하며 험난한 축에 속했다. 2009년 그룹 티아라의 리드 보컬로 데뷔한 이후 그와 그룹이 보낸 시간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시작은 수월했다. 데뷔하던 해 ‘보핍보핍(Bo Peep Bo Peep, 2009)’이 터지며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모았다. 때마침 문화계 전반에 불어온 복고 열풍과 맞물리며 이들은 ‘롤리폴리(Roly-Poly, 2011)’, ‘러비더비(Lovey-Dovey, 2012)’ 같은 히트곡을 연이어 발표했다. 중요한 건 단지 차트 1위가 아니었다. 작곡가 ‘신사동 호랭이’와 티아라가 함께 만들어낸 ‘케이팝’과 ‘뽕기’의 신묘한 만남은 이후에도 케이팝 역사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시사IN 양한모

영광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룹으로서 인기가 절정에 치달은 2012년, 멤버들 간의 불화설이 대두되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집단 따돌림 문제와 결합되며 루머는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여느 아이돌 기획사들이 그렇듯 쉬쉬하며 늑장 대응하는 사이 부정적 여론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논란의 중심에 있던 멤버가 팀을 떠났다. 이러한 극단적 조치에도 여론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멤버 간 유대관계를 몰입의 가장 큰 동력으로 삼는 아이돌 팬 활동의 특성에, 이들이 갖은 추측과 논란에 따른 비난에 노출되기 쉬운 여성 아이돌이라는 사실까지 더해졌다. 결국 티아라는 주요 활동 영역을 중국으로 변경하는 방법을 택했다.

티아라가 ‘내 이름은’으로 다시 국내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한 건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7년이었다. 그러나 여론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수년째 알 수 없는 침묵과 의혹과 책임 전가가 서로를 돌려 막는 사이 분명한 건 단 하나, 노래하고 춤추고자 하는 효민의 의지뿐이었다.

그룹과는 별개로 2014년부터 시작된 솔로 활동은 미니 앨범 〈메이크업(Make Up)〉(2014), 〈스케치(Sketch)〉(2016)의 발매로 이어졌다. 특히 〈스케치〉는 안무의 선정성 논란과 상관없이 몽환적인 콘셉트와 사운드를 수려하게 구현해낸 수작이었다. 소속사와 결별한 후 홀로서기를 시작한 2018년부터는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싱글 ‘망고(Mango)’와 ‘으음으음(U Um U Um)’ 발매 후 3년 만의 미니 앨범 〈얼루어(Allure)〉(2019)가 완성되었다. 지난 앨범들과는 노력도, 의미도 달랐다. 작곡가부터 유통사까지 효민이 직접 발 벗고 나서서 만나고 조율해 만든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앨범을 발매할 무렵 한 인터뷰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것을 겪었다. 그만큼 확실히 단단해졌다”라고 했던 효민의 말은 그래서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10년은 많은 것을 사라지게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기도 하는 시간이다. 전에 없이 단단해진 효민은 지금까지 그를 둘러싸고 있던 어떤 것보다 명쾌하다. 유튜브 콘텐츠 ‘문명특급’에 출연해 자신을 ‘뽕통령’이라 부르고, 팬들을 향해 “이제는 티아라의 음악을 숨어서 듣지 말라”고 말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